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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K-바이오, 이젠 전문경영인 체제가 필요하다

  • 차지현 기자
  • 2026-03-12 06:00:36

[데일리팜=차지현 기자] 덴마크 제약 기업 상당수는 비영리 재단이 최대주주로서 기업을 지배하는 독특한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재단이 지주회사 형태 투자회사를 통해 계열사를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다. 이 모델은 외부 투자자의 단기 수익 요구로부터 경영진을 보호, 10년 이상 장기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재단 중심 지배구조를 갖춘 노보노디스크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탄생시켰고 2023년 유럽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 업계에서 일찍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안착한 기업이다. 유한양행은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 철학에 따라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지켜왔다. 특정 개인이나 가문이 경영권을 독점하지 않도록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으며 내부 승진을 통한 임기제 대표이사 구조를 50년 넘게 유지 중이다. 유한양행은 2024년 첫 국산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항암신약 '렉라자'를 배출했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 산업에서 기술수출 포문을 연 기업이다. 한미약품은 2015년 일라이릴리·베링거인겔하임·사노피·얀센 등과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연달아 수주하면서 국내 제약 업계 매출 1위로 우뚝 섰다. 한미약품은 1년 넘게 이어진 오너일가 간 경영권 분쟁을 겪은 뒤 지난해 설립 이래 처음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최근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경영 개입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지배구조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매출 기준 한미약품은 유한양행·녹십자·종근당·대웅제약 등에 밀리며 업계 5위로 내려앉은 상태다.

최근 바이오 업계에서는 창업자이자 대표이사를 맡아온 인물의 유고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경영 승계 준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진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경영 공백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상황 직후 기업은 대체로 경영 공백은 없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기존 경영진을 중심으로 R&D와 사업을 예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예상치 못한 리더십 공백을 조직이 버텨낼 수 있을까.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가운데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너 중심 경영은 장기 투자나 전략적 결단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한 신약개발 업종에서는 오너의 의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전문경영인이 10년 이상 장기 투자를 결정하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너 경영 자체가 성과로 직결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기업 경영이 특정 개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기업 규모가 커지고 산업 내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경영 연속성과 지배구조 안정성이 중요해진다. 긴 호흡의 R&D가 필요한 바이오 산업에서는 개인이 아닌 조직과 시스템이 회사를 이끄는 구조가 더욱 필요하다. 글로벌 제약 산업을 이끄는 대다수 빅파마가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 경영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이제 같은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창업자는 기업의 토대를 만들 수 있지만 그 기업을 백 년 넘게 지속시키는 힘은 결국 투명한 거버넌스와 시스템에서 나온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갈등, 세대교체 과정에서도 기업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경영 시스템이 개인을 넘어 조직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 K-바이오가 빠르게 성장하는 지금, 기업을 오래 가게 하는 경영 시스템에 대한 논의도 확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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