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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시작은 알렸는데 끝은 조용히…소통의 온도차[데일리팜=황병우 기자]기업이 발표한 신사업 계획은 기사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 사업 방향이 바뀌더라도 당시의 보도자료와 기사는 계속 검색된다.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일만큼 달라진 계획을 설명하는 일에도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동아에스티의 수술로봇 베르시우스 사례에서도 사업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방식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동아에스티는 2024년 5월 씨엠알써지컬과 국내 독점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제품의 기술력과 편의성을 소개하고, 국내 인허가를 추진해 복강경 수술로봇 시장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후 국내 허가 신청으로 이어졌던 사업은 올해 상반기 양사 합의로 종료됐다. 취재 과정에서 회사는 종료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양사 사정에 따라 구체적인 이유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품을 국내에 선보이기 전에 공급 계획이 중단된 것이다. 사업을 시작할 때의 판단이 끝까지 유효할 수는 없다. 시장 여건이나 협력사의 전략이 달라지면 기업도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지 다시 결정하는 것은 경영의 중요한 역할이다. 사업 종료라는 결과만으로 처음의 도전까지 실패로 평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협력사가 있는 사업에서는 설명의 범위도 제한될 수 있다. 계약 조건이나 양사의 내부 판단을 한쪽이 모두 공개하기 어려운 사정도 이해할 만하다. 구체적인 종료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업의 대응을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다만 경영 판단의 타당성과 이를 외부에 설명하는 문제는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보도자료를 통해 진출 계획과 기대효과를 알렸다면, 그 계획을 접한 사람들에게 이후의 변화도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시작할 때 제공했던 정보가 현재의 상황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특정 기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술 도입이나 공동개발, 신사업 진출을 알리는 기업이라면 어디든 마주할 수 있는 문제다. 새로운 가능성을 설명할 때는 사업의 의미와 향후 계획을 적극적으로 담게 된다. 반면 일정이 늦춰지거나 협력이 끝났을 때는 상대방과의 관계, 공개 범위, 시장의 해석까지 고려해야 한다. 변화가 생긴 뒤의 설명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모든 사업 변경에 별도의 자료 배포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중요도와 진행 단계에 맞춰 홈페이지의 기존 안내를 보완하거나, 정기적인 사업 설명 과정에서 변경 사항을 함께 전달할 수도 있다. 과거에 알린 계획과 현재의 상황을 연결해주는 소통이면 된다. 기업이 모든 도전에서 성과를 낼 수는 없다. 계획을 수정하고 협력을 정리하는 과정 역시 사업의 일부다. 그 변화를 적절한 시점에 설명하는 태도는 기업의 다음 도전에 대한 신뢰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알렸던 소통이 계획이 바뀐 뒤에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기업의 신뢰는 시작할 때 제시한 청사진과 그 이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함께 쌓이기 때문이다.2026-09-29 06:00:40황병우 기자 -
[데스크 시선] 상폐 유예 '위험한 호재'가 쏟아진다[데일리팜=이석준 기자] 퇴출 시계가 6개월 늦춰졌다. 내년 1월로 예정됐던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 강화가 내년 7월로 미뤄졌다. 코스피는 500억원, 코스닥은 300억원 기준을 피할 시간을 반년 더 벌었다. 유예는 구제가 아니다. 기준을 없앤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벌써 ‘살아남을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제는 일부 기업이 이 시간을 실적 개선보다 주가 부양에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은 단순하다. 시가총액이 기준을 밑도는 상태가 일정 기간 이어지면 상장폐지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확실한 해법은 돈을 버는 것이다. 매출을 늘리고 적자를 줄여 시장의 평가를 바꾸면 된다. 하지만 사업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신약을 개발하거나 품목을 도입해도 당장 실적에 반영되기 어렵다. 생산시설 투자도 마찬가지다. 6개월 안에 본업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반면 주가를 움직이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신사업 진출, 대규모 공급계약, 해외 사업 추진, 전략적 투자 소식이 나오면 단기간에 투자자가 몰릴 수 있다. 인공지능(AI)이나 비만·탈모 치료제처럼 시장이 선호하는 소재가 붙으면 반응은 더 빨라진다. 이른바 ‘위험한 호재’가 등장할 수 있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당장 상장폐지되지 않을 테니 주식을 사두라”는 제안까지 나온다. 퇴출 유예를 투자 호재로 둔갑시킨 위험한 셈법이다. 공시 자체가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신사업을 검토하거나 협력 논의를 시작한 것도 사실일 수 있다. 다만 초기 검토를 사업 확정처럼 포장하고, 양해각서를 매출로 이어질 계약처럼 부풀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금과 인력,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계획은 호재가 아니라 주가를 붙잡기 위한 문장에 가깝다. 제약·바이오 기업은 이런 포장이 특히 쉽다. 연구개발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후보물질 도입이나 공동연구 계약만으로도 미래 매출을 크게 제시할 수 있다. 해외 진출 역시 허가 신청과 유통 계약, 초도물량 공급, 실제 시장 안착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 투자자는 발표의 크기보다 실행 조건을 봐야 한다. 계약 상대방은 누구인지, 계약금이 오갔는지, 최소 구매수량이 있는지, 해지 조건은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신사업이라면 필요한 자금과 인력, 구체적인 일정이 확인돼야 한다. ‘추진’, ‘협의’, ‘검토’만 반복된다면 한 번 더 의심할 필요가 있다. 더 위험한 신호도 있다. 호재 발표 전후로 최대주주나 주요 주주의 지분 매각, 전환사채 전환, 유상증자가 이어지는 경우다. 발표가 회사의 성장을 위한 것인지, 자금 조달과 주식 매도를 돕기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시가총액 기준 유예는 일시적인 시장 충격을 줄이는 안전장치다. 기업에 억지로 주가를 올릴 시간을 준 조치가 아니다. 기업은 주가를 끌어올리는 대신 6개월 동안 재무구조와 사업 경쟁력을 보완해야 한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도 유예 결정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기준 미달 우려 기업이 내놓는 계약과 신사업 공시를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계획이 반복해서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기업, 발표 직후 자금 조달과 지분 매각이 이어지는 기업은 집중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퇴출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단지 6개월 늦춰졌을 뿐이다. 그사이 기업의 체질이 달라지지 않으면 결론도 바뀌기 어렵다. 남은 시간이 짧을수록 말은 커질 수 있다. 투자자가 봐야 할 것은 화려한 호재가 아니다. 이를 실제 매출과 현금으로 바꿀 능력이다. 상폐를 피하려고 만든 호재라면 약효는 짧고 후유증은 길다.2026-09-28 06:27:44이석준 기자 -
[기자의 눈] 치솟는 신약 가격, 경증질환 역시 큰 장벽[데일리팜=손형민 기자] '고가 신약' 하면 우리는 단연 항암제나 중증질환 치료제를 떠올린다. 실제 환자 접근성 논의도 그동안 중증·희귀질환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약가 환경의 변화는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환자군을 넓히고 있다. 생명을 직접 위협하지는 않더라도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질환에서도 기존 치료보다 더 나은 효과나 투여 편의성을 갖춘 신약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혜국대우(MFN) 약가 정책은 이런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변수 중 하나다. 미국이 다른 국가의 낮은 약가를 기준으로 자국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특정 국가에서 낮은 가격을 받아들이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낮은 약가를 수용할 경우 그 영향이 국내 시장에 그치지 않고,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약가 결정에도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제약사가 해외 출시가격을 높게 설정하거나, 낮은 약가를 요구하는 국가에서는 출시를 늦추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국내에 도입되는 일부 신약의 비급여 가격도 환자가 장기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수준까지 높아지고 있다. 중증·희귀질환 치료제가 아닌데도 1회 투여나 일정 기간 치료에 필요한 비용이 상당해 실제 사용 여부가 치료 필요성보다 환자의 경제적 여건에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가격이 일시적인 비급여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초기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향후 건강보험 급여를 추진할 때 필요한 가격 조정 폭도 커진다. 기존 치료제가 많고 환자 수까지 많은 질환에서는 제약사와 보험자 모두 급여 조건을 맞추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항암제는 전체생존기간(OS) 개선처럼 환자 편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확보되면 고가이더라도 급여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희귀·중증질환 역시 산정특례, 위험분담제, 경제성평가 면제 등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장치가 마련돼 있다. 반면 생명 위협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증질환은 사정이 다르다. 질환의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서 치료 필요성이나 새로운 치료에 대한 요구까지 낮은 것은 아니다.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에 반복적으로 불편을 주는 질환에서는 치료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 자체가 환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기존 치료제가 다수 존재하고 환자 수도 많다면 신약이 기존 치료보다 효과를 높였더라도 높은 가격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투여 횟수를 크게 줄이거나 치료 간격을 수개월까지 늘리는 등 환자의 치료 부담을 낮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급여 대상자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일부 암에서는 특정 유전자 변이나 바이오마커, 치료 단계 등에 따라 신약의 투여 대상자를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반면 피부질환이나 알레르기질환을 비롯한 상당수 만성질환은 치료 효과를 얻을 환자를 사전에 명확하게 선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증상의 정도나 기존 치료 실패 여부를 기준으로 환자군을 나눌 수는 있지만 가격에 맞춰 급여 대상을 지나치게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같은 질환에서도 증상의 정도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높은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환자군을 정교하게 선별해 제한적으로 급여를 적용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은 기존 치료제를 계속 사용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신약이 더 좋은 효과를 보이거나 투여편의성을 개선해도 이미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있다는 이유로 실제 진료현장에서는 선택지가 제한될 수 있다. 허가된 신약이 존재하더라도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일부 환자만 이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출시가격과 건강보험 급여 과정에서 인정되는 가격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커지면 제약사 역시 큰 폭의 인하를 감수하면서 급여를 추진할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해당 가격이 미국 등 다른 시장의 가격 전략과 연결된다면 국내에서만 별도로 낮은 가격을 수용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고가 신약의 접근성 문제를 중증질환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기존 치료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더 나은 치료 선택지가 있음에도 가격 때문에 이를 이용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생길 수 있다. 환자 접근성의 사각지대는 반드시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질환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 필요성이 분명한데도 높은 가격과 제도적 한계 때문에 새로운 치료의 혜택에서 벗어난 환자군 역시 살펴봐야 한다. 글로벌 약가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국내 약가·급여정책도 중증·희귀질환 중심의 접근을 넘어, 신약의 임상적 가치와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반영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2026-09-23 06:00:38손형민 기자 -
[특별기고] 가슴성형의 변화…큰 수술 문턱 낮춘 기술 발전보형물의 발전을 넘어, '공간을 만드는 기술'과 '조직을 보존하는 수술'로 성형외과 의사로 30년 가까이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성형수술의 역사는 단순히 새로운 수술법이 이전의 수술법을 대체해 온 역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전 세대의 수술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면서 다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나선형의 변화'에 가깝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수술 범위가 확대되기도 했고, 그렇게 얻어진 결과를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해부학적 지식과 수술기구가 발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같은 결과를 얻더라도 환자의 정상 조직을 얼마나 보존할 수 있는지, 수술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신체적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또 하나의 기술적 가치로 논의되고 있다. 최근 가슴성형에서 나타나는 변화 역시 이러한 큰 흐름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성형외과 의사로 수술을 시작하던 30년 전만 해도 성형수술을 결정한다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큰 결심을 필요로 했다. 오늘날 비교적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쌍꺼풀 수술조차 당시에는 환자에게 상당한 심리적·사회적 부담이 따르는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3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 단지 사람들이 성형수술에 더 관대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술기법과 기구, 마취 및 수술 전후 관리가 발전했고 해부학에 대한 이해 역시 깊어졌다. 성형수술의 발전은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다 정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필자가 생각하는 지난 30년의 변화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중요한 질문이 '얼마나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는가'였다면 현재는 '그 결과를 얼마나 정교한 과정으로 만들어낼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앞으로는 여기에 '같은 결과를 위해 환자가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형물의 역사 역시 '한계를 보완해 온 역사' 가슴확대수술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적인 실리콘겔 유방보형물이 1960년대 처음 임상에 도입된 이후 보형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변화해왔다. 특히 그 변화의 중심에는 내용물을 감싸고 인체 조직과 직접 맞닿는 외피(shell)의 발전이 있었다. 1세대 실리콘 보형물은 비교적 두꺼운 실리콘 엘라스토머 외피와 점도가 높은 겔로 제작됐다. 이후 보다 부드러운 촉감을 구현하기 위해 1970년대 2세대에서는 외피가 얇아지고 겔의 점도가 낮아졌지만, 이는 파열과 silicone gel bleed라는 또 다른 문제로 이어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80년대 등장한 3세대 보형물에는 외피의 강도와 차단 성능을 높이기 위한 다층 실리콘 엘라스토머 구조와 barrier layer가 적용됐다. 이후 보형물은 외피의 내구성뿐 아니라 표면 구조, 겔의 응집력과 형태 안정성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발전해왔다. 이 과정은 의료기술의 발전이 단순히 '새로운 것이 이전 것을 대체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 시대의 기술이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한계가 발견되고, 다시 이를 보완하는 다음 기술이 등장해왔다. 가슴성형의 수술방법도 마찬가지였다. 보형물을 유선하에 위치시키는 방법뿐 아니라 대흉근 아래에 위치시키는 방법이 도입됐고, 이후 근육과 유선하 공간의 특성을 조합한 dual-plane 등의 접근이 발전하면서 환자의 연부조직과 해부학적 조건에 따라 보형물이 위치할 pocket을 선택하는 방법 역시 다양해졌다. 결국 가슴성형의 역사는 보형물 자체와 보형물이 위치할 공간을 함께 발전시켜 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질문은 다시 한 단계 이동하고 있다. '어떤 보형물을 넣을 것인가'에서 '그 보형물이 들어갈 공간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 것인가'로 말이다. 보형물보다 먼저 만들어지는 것, '공간' 가슴확대수술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흔히 '가슴에 보형물을 넣는 수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술을 하는 의사의 관점에서 보면 보형물이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보형물이 위치할 공간, 즉 pocket이다. 보형물의 위치는 유선하, 근막하, 근육하, dual-plane 등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최근 연구에서도 pocket plane의 선택은 가슴확대수술의 중요한 수술적 변수로 다뤄지고 있다. 따라서 가슴확대수술은 보형물을 선택하는 기술인 동시에 공간을 계획하고 만드는 기술이다. 기존의 가슴확대수술에서는 술자가 조직을 박리해 필요한 pocket을 형성해 왔다. 이는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발전해 온 수술방법이며 현재도 환자의 해부학적 조건과 수술 목적에 따라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여기에서 다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보형물이 들어갈 필요한 공간을 만들면서 정상 조직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최근 가슴성형에서 논의되고 있는 tissue preservation, 즉 조직 보존이라는 개념도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Preservé, '공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접근 Preservé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 하나의 새로운 접근이다. Preservé는 작은 접근 통로를 형성한 뒤 전용 Inflatable Balloon을 일시적으로 삽입하고, Balloon을 팽창시키면서 조직을 방사상으로 이동·신장시켜 보형물이 위치할 공간을 형성한다. 이후 Balloon을 제거하고 형성된 공간에 보형물을 삽입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tunneling, Inflatable Balloon을 이용한 controlled tissue elongation, implant deployment의 순서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Balloon을 사용하는 새로운 가슴수술'이라고 설명하면 변화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가슴확대를 위해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방법 자체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보형물의 외피와 내용물, 표면을 개선해 왔다면 이제는 그 보형물이 들어갈 환경을 형성하는 과정까지 기술 발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서 최소침습이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최소침습수술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절개의 길이를 떠올리지만, 피부 절개의 크기만으로 조직에 가해지는 전체적인 수술적 영향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피부 아래에서 어떤 층으로 접근하고, 어느 범위까지 조직을 분리하며, 정상적인 해부학적 구조를 어떻게 다루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가슴성형에서는 단순히 절개의 길이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필요한 공간을 정확하게 형성하면서 정상적인 유방 조직과 지지 구조에 대한 불필요한 손상을 줄이는 것 역시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될 수 있다. 이미 다른 성형수술에서도 시작된 'Preservation' 이러한 변화는 가슴성형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성형이다. Preservation rhinoplasty는 코의 골·연골성 구조를 일률적으로 절제하고 다시 재건하는 것보다 가능한 범위에서 기존의 해부학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 것을 주요 개념으로 한다. 현대의 preservation rhinoplasty에서는 연골과 연부조직, 인대 및 비배부 구조를 보존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존'이라는 이름 자체가 특정 수술법의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Preservation rhinoplasty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보고되고 있지만, 기존 수술법과 비교한 높은 수준의 근거는 여전히 축적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점은 새로운 가슴성형 기술을 바라볼 때도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수술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새로운 방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환자에게 필요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이 적절한지 판단하고, 그 과정에서 정상 구조를 가능한 범위에서 보존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의료진의 역할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현대 성형외과의 중요한 변화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얼마나 많이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서 '필요한 변화를 만들면서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로 질문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큰 수술'의 문턱이 달라질 수 있을까 30년 전 쌍꺼풀 수술은 지금보다 훨씬 큰 결심이 필요한 성형수술이었다. 이후 수술기법과 기구, 수술 전후 관리가 발전하고 임상 경험이 축적되면서 오늘날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역시 과거와 상당히 달라졌다. 물론 가슴확대수술과 쌍꺼풀 수술은 해부학적으로도, 수술 규모에서도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다. 다만 30년 동안 성형외과의 변화를 지켜본 의사의 입장에서 한 가지 공통된 흐름은 분명히 보인다. 의료기술이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나갈수록 수술을 바라보는 기준 역시 달라져 왔다는 점이다. 가슴성형 역시 다시 한번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후의 가슴성형이 지금과 같은 모습일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보형물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수술 전 계획과 환자 맞춤형 접근 역시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동시에 pocket을 보다 정확하게 형성하고 정상 조직에 대한 불필요한 손상을 줄이려는 연구도 계속될 것이다. 지난 30년간 성형수술의 발전은 단순히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경쟁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환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과거에는 당연하게 감수해야 했던 부담을 하나씩 줄여온 과정이었다. 가슴성형도 마찬가지다. 이제 변화의 중심은 보형물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떤 보형물을 선택할 것인가에서, 그 보형물이 들어갈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상 조직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로 질문이 확장되고 있다. 보형물뿐 아니라 그 보형물이 들어갈 공간을 만드는 방법까지 달라지고 있는 지금, 가슴성형은 다시 한번 새로운 '나선형 발전'의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성형외과 전문의·의학박사 -전 대한성형외과학회 유방성형연구회 총무이사 -전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학술위원2026-09-23 06:00:36황병우 기자 -
[특별기고] 1만 약사·약대생 함성,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지난 9월 20일 서울 광화문에 약사와 약대생 1만여 명이 모였다. 대한약사회가 당초 5천 명을 기준으로 집회를 신고했지만, 실제 현장에는 약사 7천여 명과 약대생 3천여 명이 참여했다는 것이 주최 측 설명이다. 8년 만의 전국 약사 총궐기였다. 이번 집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단순히 ‘1만 명이 모였다’는 숫자에 있지 않다. 전국 약사들이 현재의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해야 한다. 1만 명의 함성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집회가 끝났다고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시행도 전에 전면 확대…무엇이 그렇게 급한가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급한가. 이번 사태에서 약사들이 가장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 문제는 지난해부터 정부와 보건의료계, 시민사회가 논의를 거듭해 온 사안이다. 그 과정에서 약 배송을 무분별하게 전면 확대하기보다 제한적인 대상부터 시행하고 실제 현장에서 안전성과 문제점을 확인하면서 제도를 보완하자는 취지의 논의가 진행됐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묻지 않을 수 없다. 12월 24일이면 이미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시행된다. 현재 개정 의료법상 약국 외 의약품 인도가 허용되는 대상은 섬·산간·벽지 거주자, 장기요양급여 수급자, 등록장애인,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 5개 환자군으로 제한돼 있다. 그렇다면 먼저 시행해 보면 된다. 실제로 환자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약사와 환자 사이의 복약지도는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의약품 오남용 가능성은 없는지, 본인 확인과 처방전 전달은 안전한지, 지역 약국과 의료체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평가하면 된다. 그리고 그 평가 결과를 가지고 다음 단계의 제도를 논의하면 된다. 그런데 시행하고 평가하기도 전에 왜 전면 확대를 서두르는가. 약사사회가 묻고 있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정부 정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 물론 정부가 정책을 변경할 수는 있다. 사회 환경이 변하고 새로운 정책적 필요가 생긴다면 기존 제도를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진 제도를 변경하려면 그 이유와 근거를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특히 아직 시행도 하지 않은 제도를 왜 더 확대하려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가. 시행하고 검증하는 데 몇 달의 시간이 그렇게 아까운 것인가. 제도를 먼저 시행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정부가 강조하는 정책의 근거와 과학적 행정에도 맞는 것 아닌가. 약사사회가 요구하는 것도 무조건적인 변화 거부가 아니다. 먼저 약속한 제도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인가. 약 배송은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다. 약 배송 논쟁을 단순히 약국의 영업권이나 약사의 이해관계 문제로만 보면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약사사회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은 훨씬 구체적이어야 한다. 비대면진료가 확대되면 의료 이용량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약 배송이 확대되면 의약품의 전달과 복약지도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민간 플랫폼이 의료와 의약품 전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개인정보와 의료정보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의약품 오남용과 의료쇼핑 가능성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지역 의료기관과 지역 약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문제를 국민에게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 약사공론과 데일리팜의 보도를 보면 대한약사회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단순 ‘약 배송 반대에만 머물지 않고 공적 전자처방전 전달체계, 공공 비대면진료 지원시스템, 객관적인 평가와 관리체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약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 주장을 국민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1만 명이 모였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이번 광화문 집회는 성공적으로 결집했다. 그 사실은 이미 확인됐다. 그러나 대규모 집회가 정책 변화로 이어지려면 집회 이후의 전략이 더 중요하다. 데일리팜도 총궐기 다음 날 '이제 총궐기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짚었다. 향후 하위법령과 후속 입법에 대응하면서 대정부 압박과 대국민 여론전을 이어가야 한다는 취지다. 1만명의 함성, 대의원총회서 8만 약사의 뜻으로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한다. 그 전략을 누가 결정할 것인가. 그리고 8만 약사의 의견은 어떤 절차로 모을 것인가. 그래서 임시대의원총회가 필요하다. 대한약사회에는 전국 대의원들이 중요한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대의원총회가 있다. 현재와 같은 비상상황이라면 대의원들이 직접 모여 현 상황을 보고받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의 협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12월 24일 제도 시행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약 배송 전면 확대에 대한 약사회의 논리는 무엇인가. 국민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언론과 정치권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현재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충분한가.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이 모든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당장 눈앞에 닥친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 현안도 약사사회가 풀어야할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임시대의원총회를 요구하는 것이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끌어내리기 위한 것도 아니다. 8만 약사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여야 한다. 현재의 비상대응체제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대의원은 그렇게 주장하면 된다. 새로운 대응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의원은 그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그리고 대의원들이 토론하고 판단하면 된다. 그것이 대의원총회의 역할이다. 지금은 분열할 때가 아니라 결정할 때다. 비상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을 공식적으로 논의할 통로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대의원총회는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미리 정해놓을 필요도 없다. 현재 집행부의 대응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의견을 내면 된다. 더 강력한 비상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의견을 내면 된다. 대의원들이 충분히 듣고 판단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결론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공식적인 장을 만드는 것이다. 8만 약사의 힘을 하나로 모으자. 이번 광화문에서 우리는 1만 명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그 힘을 지속적인 정책 대응으로 연결해야 한다. 정부와 협상하고, 국회와 소통하고, 언론에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약사회 내부에서도 충분한 논의와 대표성 있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12월 24일 제도 시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정부에는 묻자. “무엇이 그렇게 급합니까?” 약속한 제도를 먼저 시행하고 평가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자. 그리고 대한약사회에도 묻자. “8만 약사의 뜻을 대의원총회에서 확인합시다.” 임시대의원총회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특정 세력을 위한 것도 아니다. 전국 약사들의 뜻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다. 1만 명의 함성을 일회성 집회로 끝낼 것인가. 아니면 8만 약사의 지속적인 힘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이제 결정해야 한다. 1만 약사의 함성, 이제 대의원총회에서 8만 약사의 뜻으로 이어가자. [필자 약력] -동대문구약사회장 -서울 24개분회장협의회장 -동대문문화원장 -전국청년약사회장(전) -대한약사회 정책기획단장(전) -서울시의회 의원(전)2026-09-22 11:57:34데일리팜 -
[기자의 눈] 거리로 나온 약대생들이 선배 약사에 던진 질문[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지난 20일 광화문에서 열린 전국약사 총궐기대회에서 유독 눈길이 갔던 이들이 있다. 전국 37개 약학대학에서 모인 3000여명의 약대생들이다. 예상을 뛰어넘은 학생들이 몰리면서 당초 마련된 집회 공간만으로 자리가 부족해 현장에서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아직 약사면허를 취득하지도 않은 학생들이 펜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날 집회가 약사사회에 던진 의미는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상에 오른 학생 대표의 발언이었다. 김백건 대한약학대학학생협회장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선배 약사들에게 호소한다"며 "지금 국민은 약사가 보건의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약배송 확대 정책이나 상업 플랫폼만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배 약사들을 향해 약사사회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질문을 던졌다. 고된 약국 업무 이후에도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헌신하는 약사들이 있는 반면 직업윤리를 저버린 일부에게 책임을 물을 자정 시스템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헌신하는 약사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한 약사에게는 책임을 묻는 제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도 물었다. 총궐기 현장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생각해 볼 대목이다. 약배송 확대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약사사회는 줄곧 환자안전과 약사의 전문성을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그 전문성과 신뢰를 국민에게 요구하기에 앞서 약사사회 내부에서는 이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던진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김 회장 역시 이번 위기를 선배 약사와 약대생 모두가 함께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열하게 연구하는 약사가 국민 건강에 온전히 기여하고, 예비약사들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임상 현장에서 빛날 수 있는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했다. 결국 이날 거리로 나온 학생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지금의 약국이나 조제 환경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대면진료와 약배송, 플랫폼의 보건의료시장 진입은 이미 약사가 일하는 환경을 바꾸고 있다. 창고형·대형 약국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고 통합돌봄과 방문약료는 약사의 역할을 약국 밖으로 넓히고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 역시 앞으로 약사의 업무와 전문성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 변화를 가장 오랫동안 감당해야 할 세대가 지금의 약대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총궐기에 3000명의 약대생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단순히 '약사사회가 1만명을 결집시켰다'는 숫자 가운데 하나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 전국 37개 약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약사회 입장에서는 분명 큰 힘이었다. 약사뿐 아니라 미래 약사들까지 약배송 문제에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와 국민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3000명의 학생을 집회장으로 불러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집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이후다. 약대생들이 이번 한 번의 총궐기를 위한 동원 대상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약사 직능의 미래를 논의하고 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목소리가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약사회가 비대면진료와 약배송에 맞서 무엇을 지킬 것인지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약사를 만들 것인지도 함께 답해야 하는 이유다. 약배송을 막아내는 것만으로 미래 약사의 불안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지역 약국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통합돌봄과 방문약료에서 약사의 전문성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보건의료 환경에서 약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후배들이 먼저 요구한 것처럼 국민에게 신뢰받는 약사사회를 만들기 위한 자정과 전문성 강화 역시 피할 수 없는 숙제다. 김 회장은 이날 "환자안전이라는 대원칙이 상업 논리에 무너지는 정책에 단호히 맞서겠다"며 선배 약사와 국민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선배 약사사회가 그 말에 답할 차례다. 광화문에 모인 3000명의 예비약사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들의 숫자를 약사사회의 힘으로 활용했다면 이제 그들의 목소리도 약사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총궐기에서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함께 싸워달라고 요청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스스로 달라지고 국민에 신뢰받고 자신들이 배운 전문성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약사사회를 함께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3000명의 예비약사를 거리로 나오게 한 위기감을 결집의 숫자로만 남길 것인지, 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 기대할 수 있는 약사의 미래로 바꿔낼 것인지 이제 그 답은 선배 약사사회가 내놓아야 한다.2026-09-22 06:00:42김지은 기자 -
[데스크 시선] 접종률 80% 해낸 NIP, 다음 과제는?[데일리팜=어윤호 기자] 80%가 넘는다.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대부분은 이미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고 있다.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을 통해 매년 무료접종이 이뤄지는 만큼 접종률만 놓고 보면 훌륭한 성적표라 할 수 있다. 많이 맞히는 데 성공했다면, 이젠 얼마나 보호하고 있는지 볼 차례다. 백신은 맞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말 그대로 질환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고령층 백신 접종을 들여다 봐야 하는 이유다. 노인은 노화에 따른 면역체계 변화, 이른바 면역노화로 백신 접종 후 면역반응이 감소할 수 있다. 복합만성질환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아 인플루엔자 감염 이후 입원이나 중증화, 사망으로 이어질 위험도 상대적으로 높다. 실제 국내 8개 대학병원이 참여한 연구에서 2023~2024절기 65세 이상 고령층의 인플루엔자 백신 예방효과는 약 13.5%로 추정됐다. 특정 절기의 연구 결과를 전체 고령층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기존 예방접종 체계의 보호 효과를 살펴볼 필요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접종률 80%와 예방효과 13.5%, 두 숫자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의미하는 바도, 산출되는 방식도 다르다.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고령층의 낮은 면역반응을 고려해 개발된 것이 고용량 또는 면역증강 백신 등 강화된 인플루엔자 백신이다. 고용량 백신은 표준용량보다 4배 많은 항원을 포함해 보다 높은 면역반응을 유도하도록 개발됐다. 65세 이상 약 3만200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는 표준용량 백신 대비 인플루엔자 예방에 있어 24.2% 높은 상대적 예방효과를 보였다. 해외에서는 이미 고령층의 연령과 위험도를 고려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65세 이상에서 고용량, 재조합 또는 면역증강 인플루엔자 백신을 우선 권고한다. 일본은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 등을 검토해 올해 10월부터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고용량 인플루엔자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할 예정이다. 적용 연령과 대상은 다르지만 고령층의 위험도를 고려해 우선 보호가 필요한 집단부터 공공 지원을 시작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국내에서도 단계적 도입이 논의되는 만큼, 해외 사례는 우선접종 대상과 확대 방향을 검토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대한감염학회는 2023년 성인 예방접종 권고안에서 65세 이상 고령층에 고용량 또는 면역증강 인플루엔자 백신을 권고했다. 최근에는 대한노인회와 의료계, 국회에서도 고령층의 연령과 위험도를 고려한 예방접종 전략과 고면역원성 백신에 대한 국가 지원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도 검토에 들어갔다. 정통령 질병관리청 의료안전예방국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초고령사회 고령층 인플루엔자 예방 정책 혁신 방안 정책 토론회에서 "국내 데이터 확보에는 일부 제한이 있지만 고면역원성 백신의 임상적 우월성은 명확하다"고 평가했다. 고령층의 면역 저하 특성을 고려한 적합한 백신으로의 전환 필요성에도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문제는 재정이다. 새로운 백신을 NIP에 포함하는 데 임상적 근거만으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비용효과성과 재정 여건을 따져야 하고, 한정된 예산에서 누구에게 먼저 적용할지도 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단계적 도입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우선접종 대상의 선정뿐 아니라 향후 적용 연령을 확대할 시점과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언급했듯, 고령층은 이미 10명 중 8명 이상이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는다. 그러나 같은 65세 이상이라도 연령과 기저질환, 감염 이후 중증화 위험은 같지 않다. 접종률이라는 하나의 지표만으로 서로 다른 위험을 가진 고령층의 보호 수준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접종률 80%는 NIP의 성과다. 훌륭한 성적표를 챙겼다면, 다음 과목도 노려볼 때가 됐다.2026-09-21 06:00:46어윤호 기자 -
[기자의 눈] 지필공 붕괴보다 비대면 약 배송이 시급한가[데일리팜=강혜경 기자] 정부가 5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섬마을 곳곳에 설치했다는 비대면 진료 키오스크는 포장용 비닐도 뜯기지 않은 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켜는 법조차 모르고, 쓸 이유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중보건의와 약국, 보건진료소 간호사, 정기적으로 닻을 올리는 병원선이 자리한 곳에서 굳이 차가운 단말기를 마주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현장의 절규는 명확하다. 서해 최전방 연평도를 비롯한 도서·벽지 주민들과 의료진을 밤마다 짓누르는 공포는 '당장 먹을 감기약이 없어서'가 아니다. 절단 사고를 당한 주민, 뇌출혈 의심 환자, 분만을 앞둔 산모가 닥터헬기를 부르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칠 때 마주하는 생사의 절벽이다. 전국 250개 시군구 가운데 30여곳에는 응급실이 없고 70여곳이 넘는 지역에 분만실 조차 부재하다. 이처럼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기반은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는데 정부의 시선은 엉뚱하게도 플랫폼 기업의 배를 불려줄 비대면 진료, 약 배송에 꽂혀 있다. 도서·벽지 접근성 개선이라는 명분은 그럴듯한 포장에 불과했다. 본사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국민 대상 의약품 배송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 등 해외 선례에서 드러났듯 플랫폼 중심의 비대면 진료와 배송 체계는 의료진에게 박리다매식 진료를 압박하고 과다처방과 약물 오남용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일부에서는 편의를 원하는 환자대 기득권을 지키려는 약사의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세우지만, 사태의 본질은 공공 인프라의 외주화이자 우회적 상업화다. 유럽 주요국들이 24시간 공공상담 콜센터와 방문진료, 지자체 중심의 다학제 돌봄 체계로 야간·휴일 의료공백을 메우는 동안 우리는 공공의료 확충 책임을 민간 플랫폼 자본에 넘겨주고 있는 셈이다. 보건의료 체계의 기본 축인 지필공이 고사 위기다. 비대면 진료, 약 배송은 절단 사고를 당한 섬마을 주민, 뇌출혈 의심 환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일은 닥터헬기와 응급 이송막 확충, 병원선 지원, 지방 공공의료 인력 확보이지 건강을 담보로 플랫폼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약 배송 추진이 아니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직장인과 워킹맘, 장애인들이 반드시 의료기관 문턱을 넘어야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비대면 진료가 다이어트·탈모 환자들의 자판기가 되고, 인공눈물을 6통 이상 많이 처방해 주는 의사가 명의가 돼 더 높은 별점과 함께 30% 가산까지 추가로 받는 기형적인 구조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진짜 환자를 살리는 길인지, 공공의료가 왜 필요한 것인지 정부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2026-09-19 06:00:46강혜경 기자 -
[기자의 눈] 약가개편 두 축인데 수급안정 특례는 반쪽[데일리팜=정흥준 기자] 정부가 이번 약가제도 개편에서 내세운 핵심 가치는 혁신과 수급안정이다. 준혁신형과 수급안정 선도기업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신설해 약가 특례를 주는 것도 두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개발 품목이 아니라 회사의 지위에 보상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 기저에는 “수익을 보장해줄테니 그 재원을 R&D와 공급 안정 기여에 쓰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보상의 선순환이라는 의도까지 동일하지만, 정작 적용되는 특례에는 일관성이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혁신형과 준혁신형 제약기업은 신규 등재 약제의 산정 우대뿐 아니라 기등재 재평가에서도 3~4년 유예기간이라는 별도 특혜를 받는다. 기업이 R&D에 투자한 성과를 신규 품목에 국한하지 않고 기존 품목의 약가 조정에도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반면 수급안정 선도기업은 신규 제네릭 산정에서 우대를 받을 수 있지만, 기등재 재평가에서는 기업 지위에 따른 별도 혜택이 없다. 수급안정 선도기업은 퇴장방지의약품의 품목 수나 청구액 비중이 전체 품목·청구액의 20%를 차지해야 선정될 수 있다. 혁신형과 준혁신형이 R&D 투자와 이를 둘러싼 인프라, 신약 개발 가능성으로 지정이 이뤄진다면, 수급안정 선도기업은 현재의 기여도가 확인돼야 선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확인된 수급안정 기여도에는 기등재 재평가 특례가 적용되지 않고, 연구 투자와 개발 가능성을 평가한 결과에는 특례가 적용되는 것이다. 혁신형, 준혁신형과 달리 수급안정 선도기업은 매년 명단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특례 적용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대 10년에 걸쳐 진행되는 약가인하 과정에서 매년 달라지는 기업의 지위를 반영하기 어렵고 자칫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년 주기 신규 인증, 3년 지위 유지라는 혁신형 인증 제도와는 안정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혁신형과 준혁신형은 지위 변경 시 약가 변동 장치를 마련하고, 수급안정 기업은 기간 특례를 주지 않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제네릭의 무분별한 진입을 줄이고 등재 관리를 강화한다. 새로운 품목의 진입을 관리할수록 이미 시장에 남아 필요한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런 점에서 수급안정 선도기업의 기등재 의약품 재평가까지 배려하는 장치가 함께 설계됐다면 이번 개편의 완성도가 한층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2026-09-17 06:00:44정흥준 기자 -
[기자의 눈] AI 신약, 이젠 ‘후보 발굴’ 다음을 보여줄 때[데일리팜=김진구 기자] AI가 찾아낸 신약 후보가 마침내 임상 3상 시험대에 올랐다. 글로벌 AI 신약개발 기업 인실리코 메디슨은 지난 10일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렌토서팁’의 임상 3상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AI가 표적 발굴부터 분자 설계까지 관여한 후보물질이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받는 단계까지 올라선 것이다. 렌토서팁의 3상 진입은 AI 신약개발 분야에서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동안 AI의 성과는 주로 얼마나 많은 화합물을 분석했는지, 후보물질 발굴 기간을 얼마나 단축했는지로 설명됐다. 이제는 AI가 찾아낸 후보물질이 실제 환자에게도 유효한지를 묻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세기의 대국’을 벌인 지 10년이 되는 해다. 당시 바둑판 위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AI는 10년 만에 신약 후보를 직접 찾아 임상 3상까지 보내는 수준으로 발전한 셈이다. 제약바이오산업에서의 AI 활용도 빠르게 확대됐다. 신약 표적 발굴과 후보물질 설계뿐 아니라 임상시험 설계, 생산공정 최적화, 영업·마케팅 분석까지 적용 영역이 확대됐다. 국내에서도 주요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자체 AI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전문기업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서 AI가 가져온 변화는 분명하다. 사람이 일일이 검토하기 어려운 방대한 화학적 공간을 빠르게 탐색하고, 유망한 후보물질을 추려내면서, 신약개발 초기의 시행착오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렌토서팁 역시 기존 신약개발 방식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후보물질을 도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제는 AI 신약개발을 평가하는 잣대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AI 플랫폼을 구축했다거나 몇 개월 만에 후보물질을 발굴했다는 성과는 여전히 크게 조명된다. 반면 그 후보가 임상에서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기존 방식보다 실패율과 개발비용을 얼마나 낮췄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물론 10년 전, 혹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AI를 활용해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개발기간을 단축했다는 사실 자체가 분명한 성과였다. AI가 실제 신약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AI가 후보물질 발굴을 넘어 임상 3상까지 진입하는 단계에 이른 만큼 평가 기준도 한 단계 높아져야 한다. 후보물질을 얼마나 빨리, 몇 개 찾아냈느냐보다 그 후보가 실제 임상에서 얼마나 살아남는지, 전체 개발기간과 비용, 실패 가능성을 얼마나 줄였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됐다. 여기까지 증명하지 못한다면 AI는 신약개발의 판을 바꾼 혁신이라기보다 후보물질 탐색을 효율화한 강력한 도구에 머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렌토서팁의 3상 진입은 AI 신약개발의 성공을 의미하기보다 본격적인 검증의 시작에 가깝다. 알파고 이후 10년, AI 신약개발에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플랫폼이나 후보물질 숫자가 아니다. 실제 신약의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는 증거다.2026-09-16 06:00:36김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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