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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연락만 주세요"…'머슴' 마케팅 또 고개

  • 최은택·어윤호
  • 2013-03-21 12:25:00
  • 돈이 안되면 건강한 몸이라도?…극한에 내몰린 영업현장

의약품 리베이트 파동은 최근 20여년 동안 세번의 파고를 거쳐왔다.

14개 제약사가 국내 유명 대학병원 수십 곳에 발전기금 등의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가 공정위에 적발됐던 1994년의 사건이 첫번째였다.

실거래가상환제와 의약분업 도입 직전인 1999년에는 경찰이 9개 병원과 10개 제약사를 표본삼아 수사를 벌였는데, 당시 '의료비리'로 사회장 파장이 적지 않았다.

세번째 파고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06년 공정거래위원회를 시작으로 리베이트 조사가 이뤄지다가, 쌍벌제 도입을 전후해 검경, 복지부, 식약청 등 규제당국이 총동원돼 합동단속에 나서고 있다. '리베이트 박멸작전'을 방불케하는 수준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복지부, 검경 등 6개 기관이 2003년 1월부터 2011년 9월까지 리베이트 단속에 나서 적발한 업체만 341곳이나 된다. 뒷돈을 받은 의약사 등은 1만6474명으로 드러났는데, 리베이트는 적발된 액수만 1조1141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이후 처벌이 강화된 것은 물론이고 6년째 단속이 이어지면서 이런 불법 뒷거래는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쌍벌제 그 후, 리베이트 관행 눈에 띄게 줄었지만

실제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용역 결과 설문에 응한 제약업계 종사자 중 10명 중 9명 이상이 '쌍벌제 시행이후 거래처 의약사의 리베이트 요구가 줄었다'고 답했다.

'자사의 리베이트 비용이 줄었다'는 응답자 비율은 이 보다 조금 더 높았다.

쌍벌제 시행이전 리베이트를 주지 않는 제약사가 없고 뒷돈을 챙기지 않는 의약사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보편화돼 있었던 실태를 감안하면 유의미한 변화다.

하지만 감시와 처벌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뒷거래는 여전히 암존한다. 제약계 한 관계자는 "리베이트 박멸을 목표로 했다면 정부의 단속은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런 관행을 하루 아침에 뿌리뽑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법망을 피해가는 수법도 가지가지다. 가령 백신을 보유한 제약사는 눈 속임을 위해 현금품 대신 비급여 품목인 자사 백신제제를 다른 의료기관보다 더 싸게 공급한다.

검사장비 등 의료기기를 헐값에 제공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병원은 병실까지 의약품이나 의료재료를 공급하도록 강요한다. 병원인력을 줄이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의료재료 공급자가 절감된 인건비만큼 비용을 더 쓸 수 밖에 없다.

의약품 할증이 금지되다보니까 분유나 생수 등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자사 다른 영역의 제품들까지 대거 동원된다. 연수원 승마장, 사옥 내 고급 헬스장, 골프연습장 등도 무료로 제공된다.

영업사원 영혼 멍들게 하는 생활밀착형 리베이트

안타까운 건 적발이 어려운 노무제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생활밀착형' 리베이트로 명명한 이런 행태는 사실상 의료인의 '머슴'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영업사원들의 자존감을 심각히 훼손한다.

국내 한 제약사 신입 영업사원의 경우 '무엇이든 연락주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진 명함을 들고 다닌다. 그의 역할은 투석내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는 일이다. 계단은 환자를 등에 업고 오른다.

다국적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영어를 잘 하는 특기를 활용해 의사 자녀들의 과외선생으로 뛴다. 당연히 무보수다. 이런 '스킨십?'이 통하자 다른 외국계 제약사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내 제약사 한 임원은 "의료기관과 의사가 초우월적 지위에 있는 한 이런 관행을 일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규제가 강화되면 될수록 리베이트는 더 음성화되고 영업사원들의 머슴화 경향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제약사 영업 임원도 "리베이트 허용범위가 너무 협소하다보니 선택의 폭도 그만큼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처벌을 무릅쓰고 모험을 감행하든가, 아니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내놔야 한다"면서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법령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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