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의 땅 브라질, 글로벌 진출 교두보"
- 영상뉴스팀
- 2014-07-30 06: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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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의약인 열전] 차상춘 브라질초음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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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인천항 연안부두 0시 50분.
인천발 일본행 증기선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연안터미널은 북적인다.
우리 가족의 최종 목적지는 일본이 아닌 브라질이다. 일본과 홍콩, 베트남, 인도, 남아프리카를 경유하는 2달여의 긴 여정이다.
브라질 이민 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부모님은 말 그대로 밤낮없이 일하셨다.
당시 8살 어린이. 나, 차상춘. 어린 소견이었지만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유일한 성공의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궁경부암에 걸리신 어머니는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 지에 대한 확고한 답을 주셨다.
1982년 상파울루 의대를 졸업 후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1991년 '자궁 내 태아수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브라질 한국 교민으로서는 최초의 박사가 탄생한 것이다.
주브라질 한국대사의 성대한 축하연과 '리브리 도센시아(종신교수)'의 타이틀도 얻게 됐다.
1998년에는 50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브라질초음파학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지금은 엠브리오 피터스 난임센터원장, 앨버트 아인슈타인병원 산부인과 교수, 세계한인의사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오직 성공을 위해 달려온 이민생활 50년. 이제 개인의 영광이 아닌 민족과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지금 조국의 의약산업 글로벌 진출은 비교컨대 나의 유년기 브라질 정착기처럼 고군분투의 상황으로 보여진다.
나의 현장경험이 조국의 누군가에게는 큰 희망과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으며 이 편지를 마친다.
잊지 마시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평범한 만고의 진리를…. 그렇기에 대한민국 의약산업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시작이다.
다음은 차상춘 박사와의 일문일답.
-차상춘 박사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958년에 한국의 강원도에서 태어났고 어린시간을 보낼 당시의 한국은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고 한국도 파병을 하는 상황에서 부모님은 청소년 아들들의 징병을 우려해 풍요롭고 분쟁이 없는 지역으로의 이주를 고려하다 제가 8살인 1966년 저희 가족은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배를 타고 한달 반을 여행을 하여 일본, 홍콩,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 남아프리카 등을 지나 브라질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민자로서 밤낮 없이 일을 하신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학업에 매진할 것을 원하셨고, 저희 역시 이질적이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제 형을 이어 저도 의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가장 어렵고 도전적인 학문이 의학이었고, 또한 가장 촉망받는 전문직 역시 의사였습니다.
1982년 상파울루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상파울로 의과대학 부속병원(Hospital das Clinicas of University of Sao Paulo) 에서 레지던트를 마쳤습니다. 1988년에 캐나다 몬트리올로 유학을 떠나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에서 펠로우를 했습니다.
당시 자궁 내 태아수술로 1991년에는 브라질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당시 한국 교민으로서 브라질에서 최초의 박사학위자로 커뮤니티 전체가 축하했으며, 주브라질 한국 대사께서도 직접 축하연에 찾아와 축사를 전했습니다.
또 1994년에는 리브리 도센시아(Livre-Docencia Title)라는 지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지위는 종신교수와 유사한 개념인데 브라질에서는 최고의 학문적 성취에 부여하는 지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998년에는 5천명의 회원이 있는 브라질 초음파학회에 한국인 최초로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2번의 회장 임기동안 재임했습니다.
-의대 진학 동기와 산부인과 전공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19세에 대학을 결정하는데, 그때는 너무 어려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의대를 들어간 이유는 의과대학이 가장 도전적인 학과였고, 또 하나는 형이 먼저 의대를 갔는데, 부모님께서 아주 큰 차를 사주시는 것을 보고 저도 꼭 의대에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의대에 진학한 이후 전공을 정하는 과정에서 저도 처음에는 형처럼 심장병 전문의가 되려고 했습니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심혈관 질환과 심장병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이고 있었고, 심장과의 경쟁력도 높아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과대학을 다니는 과정에서 어머니께서 자궁경부암에 걸리셨고, 아주 걱정이 많이 되어 직접 산부인과 질환의 치료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 그 분야에 관심을 가져 산부인과로 가게 되었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이후 초음파 진단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환자와 태아를 살리기 위한 새로운 기술분야에 집중했습니다.
1993년에는 제가 브라질 최초로 자궁 내 태아수술을 집도하여 여론의 굉장한 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초음파진단 분야에 집중한 것은 산부인과에서 초음파진단이 갖는 중요성 때문입니다.
산부인과에 초음파 진단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태아의 건강을 측정하기 위해 병원과 전문의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초음파 진단이 가능해진 이후에는 태아의 건강상태 등을 초음파를 통해 면밀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산부인과에서 초음파진단은 매우 중요한 분야입니다.
의대를 진학한 것도 산부인과를 선택한 것도 또한 새로운 기술과 초음파분야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 것도 가족에 대한 애정과 새로운 기술진보에 대한 애정이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질 의사로서 한국의 의료수준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요?
=저는 그 동안 한국 의료기술의 현황을 보아왔으며,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브라질인들도 한국을 높은 의료기술을 가진 나라라고 인식합니다.
이는 한국이 갖는 기술강국으로의 인지도 때문이기도 하고, 브라질 내의 한국인 의사들이 우수한 성과를 많이 창출해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브라질 내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의사에 대한 선호도와 믿음이 비아시아인 의사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한국과 한국인 모두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과와 병원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 하루 일과를 소개하는 것으로 의사로서의 저의 활동상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아침 6시에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전에는 제 개인 클리닉에 가서 환자를 봅니다.
저는 환자를 진료하고 상담하는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포함하는 체외수정 클리닉(In Vitro Fertilization) 등 여러 개의 난임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제가 교수로 재직하는 여러 개의 병원에서 주로 수술을 합니다.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하는 곳은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서 최고 병원으로 평가되는 상파울로의 앨버트 아인슈타인병원(Einstein Hospital)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산부인과적 수술 및 시술을 집도합니다.
-브라질 초음파학회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한 소개부탁드립니다.
=브라질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초음파 진단 분야가 큰 시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브라질에는 무려 2만 5000명의 소노그래퍼(초음파 판독 전문가)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초음파학회는 5000명의 의사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으며, 의학기술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많이 하며 매년 대형 학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저는 최연소, 최초의 아시아인 회장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졌고, 이례적으로 회장을 2회 재임했으며 지금도 다시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의사/WKMO멤버로서 향후 비전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번 WKMO 컨벤션에 참여해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고 또 가능성들을 보았습니다. 브라질에는 300여명의 한국인 의사들이 있고, 그들은 모두 각자 자기 분야에서 큰 역할들을 하고 있지만 함께 힘을 모으는 활동을 하는 것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브라질 내에도 한인 의사단체가 있지만 다른 나라들의 한인 의사들 및 한국의 의사들과 힘을 모은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이라고 확신하고, 세계한인의사회(WKMO)가 그러한 한인의사들의 힘을 함께 모으는 좋은 그릇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바쁜데도 불구하고, 현철수 회장님께서 제안해 주신 세계한인의사회 이사직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브라질에 한인 의사들도 많고 동포들도 많지만, 한국 동포들이 주인이 되는 병원이 없습니다.
일본 커뮤니티의 병원이나 유태인병원들 등 타민족은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인종적 질환특성을 살피고 커뮤니티의 니즈에 기여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 운영해 왔습니다.
저는 브라질에도 한국의 의료기술과 시스템을 도입하고, 한국 동포들의 건강상태에 초점을 맞춘 한국의료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국의 병원들과 논의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일을 하는데 세계한인의사회(WKMO)의 비전과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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