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협상 결국 백기들 것인가
- 데일리팜
- 2006-10-19 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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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협상에서 한국 측이 미국 측의 특허관련 요구들을 수용하면 향후 5년간 최대 1조원에 이르는 건강보험재정 누적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예측치가 나왔다. 손실분 계산을 놓고 복지부와 국회의원 간에 해석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답변한 것을 논해 보기로 하자. 그 근거가 보건산업진흥원의 ‘한미 FTA 협상체결이 보건의료산업에 미치는 영향분석’이라는 전문기관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따져 보고 싶다.
손실분 1조원은 큰 금액이기는 하지만 단순 계산이다. 뻔 한 잠재적 피해를 감안하지 않은 탓이다. 아니 더 답답한 것은 복지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으로 손실분을 보전할 수 있다고 고집스럽게 항변하고 있는 부분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포지티브제 등의 약제비 절감방안으로 보험재정 손실분을 보전할 수 있다고는 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 아니다. 더 큰 피해가 닥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를 보전하면 된다는 식의 계산은 잘못됐다.
의약품 분야 협상은 주고받는 협상이 아니고 일방적인 우리의 방어게임이기에 엄밀히 한국 측 입장에서는 협상이 아니다. 장관의 말처럼 협상을 아무리 잘해도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헤게모니 싸움이다. 약의 주권과 나아가 국민건강의 주권이 걸린 현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적재산권 이슈들에서 밀릴 경우 정부의 약제비 절감방안은 필연적으로 한계가 극명한 시한부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약의 헤게모니가 넘어가면 되레 약제비 증가정책을 내놓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점이다.
손실의 개념을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다. 정부는 국내 제약사의 매출 감소를 모두 피해로 볼 수 없고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익을 모두 이익으로만 볼 수 없다는 묘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해석은 경영부실 등 기업에 책임이 있을 때 아니면 자유로운 시장경쟁의 상황을 바탕으로 할 때나 가능한 얘기다. 정부는 의약품 분야가 한·미 FTA 협상의 희생양임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 따라서 FTA라는 제3의 강압적 원인이 작용한 기업의 매출감소를 피해로 보지 않는 태도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는 손실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생각하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국산 제네릭의 신규 시장진입이 어려운데 따른 보험약값의 차이가 원론적인 정부의 손실에 대한 정의다. 실제 특허로 인해 저렴한 제네릭의 보험등재가 막힌다면 보험재정 지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손실의 축이 그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막대한 손실을 정부는 보고 있어야 하고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장 진입이 막히는 민간 제약업계의 손실 몫은 보험재정 그 훨씬 이상이다. 국민의 재정이 아니고 민간기업의 손해이니 따질게 못된다고 하는 식이면 실로 유구무언이다.
보험재정을 추가 충당해야 한다면 그 손해 당사자는 국민 모두다. 하지만 내국산업이 위기에 처한다면 그 역시 국민부담으로 전가될 여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 보험재정 손실분이나 산업적 손실은 넓게 보면 같은 국부(國富)손실의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의 이익증대에 따른 국부의 상대적 손실은 끝내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이를 피해라고 의미심장하게 보지 않는다면 내국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정부정책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더구나 약의 헤게모니가 넘어가는 수순이면 손실분의 크기까지 우리의 손에 좌우되지 않는 참담함을 맞는다.
곳간의 곡식을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선결과제이고 중요하지만 곳간을 송두리째 내 주는 상황이 닥칠 것을 엄정히 예상할 수밖에 없다면 곳간을 내주지 않는 강력한 배수진을 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미 FTA 협상은 필연적으로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수순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특허나 지재권은 형평성에서 나라마다 그리고 편의대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한·미 FTA는 전체 외자제약사 이익의 향배와 관련된 사안이라는 것이며, 그로인해 닥쳐올 막대한 국부의 손실을 보태지 않는 계산법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근본적으로는 잘해도 손해라는 것을 뻔히 아는 협상에 임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모든 산업이 이익을 보는 협상이 없다는 항변과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전략적 목표라는 항변이 정부 공식입장으로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백기를 들고 협상에 임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협상과정은 이익을 넘겨주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냄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국민을 속이는 것이고 그 속이는 것에 대한 손실의 책임도 국민에게 전가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결과를 협상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니 가당치가 않다.
약의 주권은 일반 산업과 다르다. 약이나 건강은 ‘절대적 패권’을 가질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다. 그것을 그렇게 쉽게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그 패권을 넘겨주는 것은 국민들에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선물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고 행동이다. 눈앞의 보이는 손실만 계산하고 그것만 막으면 된다는 식의 정부태도는 그래서 무책임하다. 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결과를 시급히 공개하고 국민과 함께 대책을 세우든지 아니면 의약품 분야는 한·미 FTA 협상에서 제외시킨다는 배수진을 쳐야 한다. 오는 23일 있을 4차 협상에서 우리 측의 다른 모습을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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