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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입법권 넘긴 국회, 의사 특혜법 제정"

  • 박철민
  • 2009-12-30 06:47:32
  • 의결된 법안 모순 발생…실효성·형평성 논란 가열

[이슈분석]의료분쟁법 졸속처리의 배경과 문제점

사회적 합의없이 정부가 배짱을 부리고 여당은 못 이기는 척 끌려갔다. 야당의 암묵적 동의가 더해져 의료분쟁 관련 제정법은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29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대안')을 의결했다.

복지부와 한나라당은 이르면 30일, 늦어도 31일까지 이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다는 계획이다.

22년간 국내 환자 방치, 외국인 유치에 부랴부랴 법제정

의료사고를 처음으로 다룬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1998년 14대 국회에 처음 제출됐다. 제정 논의가 시작된 이후 22년 동안 입증책임 전환과 의료사고 보상 및 형사처리 특례 등에 대한 무수한 논란이 있었다.

그동안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평균보다 4~8배 긴 민사소송을 택하거나 1000만원 이하의 조정 금액이 86%를 차지하는 소비자보호원의 조정 등에 기대왔다.

이번 18대 국회에서도 의료사고 관련 법안은 어김없이 발의됐다. 의원입법 2건과 청원안 1건이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의 '의료분쟁 조정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법)과 민주당 최영희 의원의 '의료사고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 및 같은 당 박은수 의원이 소개한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다.

법안의 내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정부여당을 둘러싼 상황은 달라졌다. 어떻게든 올해 안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복지부는 29일 'Medical Korea'라는 한국의료 브랜드를 선포하고 해외환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해외환자 유치 사업 성공의 선결조건 중 하나는 의료분쟁 조정절차의 정립이다. 22년간 방치된 국내 의료사고 문제가 외국인 환자 덕에 빛을 보게 된 셈이다.

논의 과정에서 심 의원의 의료분쟁법에 무게가 실렸다. 의료분쟁법은 외국인 환자 의료분쟁 시 중재절차를 통해 해결하도록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의료분쟁법 등 3개 법안은 지난 11월26일부터 총 9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랐다. 법안소위는 4차례 심사를 실시해 28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긴 이름의 '대안'을 의결했다.

그런데 채택된 '대안'은 기존의 3개 법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난데없이 끼어든 복지부의 의견이 의원입법안을 밀어내고 대안의 골자가 됐기 때문이다.

여당 일부 "정부가 밀어붙였다"…1년 뒤, 책임질 사람 없어

복지부의 거수기 취급을 당한 한나라당에서 당장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정미경 의원은 "복지부가 이 법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예산을 이미 따놓았다고 거의 강요를 했다"며 "정부 의견이 제시된 것인데, 그 의견에 대해 충분히 토론할 시간이 없었다"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정부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 의원입법안을 누르고 채택된 주객전도 상황이 여당 내의 반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의 청원안을 소개한 박 의원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보건의료인이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범한 경우에도 조정 또는 합의가 이뤄지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대안'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문제삼았다.

판사 출신인 박 의원은 "법조인의 경험으로 볼 때, 반의사불벌 등 특례를 도입하면 사실관계를 밝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경찰이든 검찰이든 법원까지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당사자 간의 합의를 종용해 사건을 빨리 해결하려는 역기능을 많이 봐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안'이 의사 특혜법이라는 점을 완곡하지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다.

박 의원은 "의료인의 형사특례를 신설하는 것은 우리나라 입법에 유례가 없는 조문"이라며 "입법의 나쁜 전례가 될 수 있고, 국회가 특정 직업군에 대해 너무 많은 특례를 인정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쉽다"고 꼬집었다.

청원안을 발표하는 박은수 의원과 시민단체 관계자들
다만 '대안' 중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부대의견으로 시행시기가 1년 유예됐다.

형사처벌 특례가 의료사고 피해자와 보건의료인 모두에게 혜택을 부여하고 분쟁조정 활성화를 주는 것인지 평가를 통해 향후 실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평가 작업을 먼저 하고 1년 뒤에 형사특례 조항을 추가시켜도 늦지 않다는 반론과 아무 구속력이 없는 부대의견으로 법조항의 효력을 제한한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제는 1년 뒤에 책임질 사람이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임 복지부 장관에 대한 하마평이 나오고, 내년 6월 원구성이 다시 이뤄지면 다수 의원이 복지위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 사안 오류, 졸속법안 비난 면키 어려워

결국 상임위를 통과한 '대안'은 형식적 오류와 입법권의 포기로 졸속 처리됐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안'은 마지막 법안소위가 끝난 뒤 급하게 작성됐다. 통상적으로 관련 법안을 하나로 합친 대안은 법률 전문가인 상임위 전문위원이 작성한다.

하지만 이번 '대안'은 왜인지 복지부가 작성을 맡았다. 시간에 쫓긴 복지부는 법안소위 다음날인 전체회의 직전에 가서야 복지위 의원들에게 내용을 공개했다. 법률안을 꼼꼼하게 작성하기에도, 검토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이 때문인지 핵심적인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구성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됐다.

'대안'을 보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구성은 법원 역할을 하는 의료분쟁조정위원회와 검찰 역할을 하는 의료사고감정단으로 나뉜다.

의료사고 사실조사와 의료행위의 과실유무 및 인과관계 규명을 맡게 되는 의료사고감정단 내의 '감정부'는 반드시 감정위원이 맡도록 했다. 감정위원의 자격은 의사와 변호사로 한정됐다.

그러나 제26조제7항에서는 총 5인을 정수로 하는 '감정부' 중 1인을 '소비자권익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추천한 사람'으로 규정해 조항이 서로 상충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즉 감정위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감정부'에 위원으로 위촉될 수 없는 사람을 넣도록 '대안'은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입증책임 없어 시민단체 '허탈'…보건의료인 국회의원, 법안소위 편중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상임위 의결에 대해 허탈감을 감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안'은 입증책임에 대한 아무런 규정을 갖추지 않는 점에 집중했다.

경실련 김태현 국장은 "이 법의 제정 목적이 의료공급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냐"며 "입증책임 전환이 없는 상황에서 형사처벌 특례까지 있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 국장은 "의료사고 원인규명이 어려운 것은 의료계에 불리한 증언을 한 의료인이 매장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며 "감정단의 주축이 의료인이라면 사실규명과 중립성 담보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는 법안통과 속도에 곤혹스러워하며 조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의시연 강태언 사무총장은 "조정이 곧 피해구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통사고의 조정과 다르다"며 "의료사고는 과실과 비과실이 구분이 혼란스러운데 억지로 조정을 시도하다 보면 무마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인의 충분한 주의의무를 넘어서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있어, 피해자 보상이 이뤄지는 '무과실 보상'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야당 관계자는 "무과실 보상은 무책임 입법의 전형이다. 보상비용의 추산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상비용 규모를 누구도 모른다"며 "무과실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의료사고에서 무책임 보상은 의료인의 피난처로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복지위의 구성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사 특혜법이라는 비판이 거센 것은 보건의료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복지위에 다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의사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포위된 복지위 법안소위에서 사회적 합의나 공청회 등 사전 작업 없이 법안이 뚝딱뚝딱 처리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안소위 8명 가운데 보건의료인 출신 국회의원은 신상진(의사), 전현희(치과의사), 원희목(약사) 의원 등이다.

여기에 28일 법안소위 위원장을 사임한 안홍준 의원(의사)을 더하면 보건의료인이 과반수를 넘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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