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인 내가 무자격자 조제 가르쳐야 한다니…"
- 김지은
- 2014-05-15 06: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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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러티브] "나보다 면허만 필요한 중소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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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쉬흔셋. 약대를 졸업하고 병원약사로 일한지도 어느덧 28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내 갈길만을 간다는 마음으로 약사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최근 난생 처음 직접 신문사에 문을 두드리고 기자를 만났다. 이 모든 상황이 낯설고 생소하다.
하지만 내가 처한 현실이 억울하고 한탄스러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니,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불법을 조장하는 이 사회와 병원 안에서 약사인 난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그 속에서 난 또 어떻게 무너져 가고 있는지.
"화장실, 침실에서도 난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대학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다 결혼과 동시에 병원을 옮겼다.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주부로서 풀타임 근무는 쉽지 않았다.
줄곧 병원에서만 일해서인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국도 해봤지만 경영 악화로 2년도 채 안 돼 접어야 했다.
결국 비교적 시간 융통이 편리한 요양병원을 거쳐 지금의 100병상 규모 중소병원으로 옮긴지도 어느덧 5년이 다 돼 간다.
약사 1인 체제인 이 곳에서 취업과 동시에 약제부서 업무는 모두 내 차지였다. 조제부터 향정약 관리, 의약품 관리, 처방, 조제와 관련한 의사·간호사와의 소통까지, 모두 내 몫이다.
일주일에 30시간 근무 조건으로 들어왔지만 추가 근무는 일상이고 퇴근 후에는 한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약제부 업무와 관련해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내 차자지였으니까.
하루 70건 이상인 원내 조제와 주사약, 응급약 조제는 기본이고 향정약 관리는 하루 일과에 절반 이상 시간을 잡아먹는다. 최근에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수면 내시경 등에 이용되는 프로포폴 관리감독이 강화돼 이 업무만도 만만치 않다. 쏟아지는 조제와 약 관리에 치이다보면 하루에 수십번 눈이 빠져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목결림 증상은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됐다.
최근에는 복약지도 의무화 예고에 맞춰 환자 복약지도문 출력까지 요구해 업무가 배로 늘었다. 원장은 문서 출력 비용이 아깝다며 직접 수기로 환자에게 적어주라는 요구까지 해 온다.
의약품 관리 역시 내 몫이다. 재고약 관리부터 약 주문, 약 진열까지 직접 하다 보면 내가 약사인지, 일반 행정 직원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쏟아지는 업무에 치이다보면 결국 약사로서 내 본면의 책무인 복약상담과 검수는 온데 간데 없다. 나는 과연 대학에서 공부하며 사명을 다짐했던 그 약사가 맞는 것일까.
"조제보조원 가르치고 모시는 심정 누가 아나"
약사 업무가 30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보니 그 이외 시간 약제부 업무는 비약사와 직원의 담당이다.
자연히 약사의 고유 권한인 조제와 검수, 복약상담까지도 무자격자와 일반 직원이 맡는다. 그나마 간호사가 검수와 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양호하다고 해야 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이 병원 안에서 의지할 사람은 오직 내 옆에 있는 무자격자, 곧 조제보조원이란 이름의 직원 뿐이다.
조제보조원이 유일한 업무 파트너이다 보니 약제부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약사가 해야 할 일을 약사인 내가 직접 가르치고 숙지시켜야 한다.
무자격자에게 의약품을 설명하고 조제를 가르치다 보면 부끄러워질 때도 많다. 하지만 방법이 있나. 내가 살기 위해선 이 길 밖에 없는 것을.
교육은 기본이다. 요즘엔 그들을 모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껏 공들여 가르쳐 놓았는데 일을 그만둔다 하면 당장 내가 죽어나니 말이다.
생일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혹시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조심 또 조심하기까지 한다.
병원에 수차례 약사를 더 고용해 달라는 요구도 했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말은 보조원을 한명 더 고용해 주겠단 대답뿐이다.
중소병원인 이곳에선 내가 약사로 있는 이상 더 이상의 약사 고용은 기대하기 힘들다.
'300병상 미만 병원은 1명 이상 약사 고용'이라는 의료기관 인력 기준이 이곳에선 곧 '덫'이나 다름없다.
"약사가 중요해? 그저 '면허'가 필요했을 뿐"
이 곳에선 약사인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면허만이 필요할 뿐이다.
약사 기본 책무인 약력관리와 상담, 복약지도는 내 능력의 평가기준이 되지 않는다. 그저 1인의 약사면허를 통해 법망을 피해가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제대로 된 처우는 기대하기 힘들다. 5년 전 이곳에 취업하고 병상도 늘고 환자 수도 3배 이상 늘었다.
의사들에게는 환자 수에 비례해 월 500만원은 기본이고 1000만원까지 인센티브가 부여됐다고 하더라. 하지만 약사인 나에겐 그저 그만큼의 업무가 늘었을 뿐이다.
간호사 차등수가 제도가 생기면서 간호사들의 페이도 눈에 띄게 올라갔다. 간호수가를 받기 위해 병원은 간호사 모시기에 한창이다.
약사는 한명인 우리 병원에 간호사는 40명이 넘는다. 수에 밀려 부서장 회의에 가도 이름만 약제팀장인 난 간호부장 앞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 한번 못낸다.
이 곳에서 약사인 난 처우도, 전문직으로서 대우도 그저 계약직,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할 뿐이다.
"위법을 합법으로 만드는 기준, 누굴 위한 것인가"
'300병상 미만 1명 이상의 약사'. 정부가 만들었다는 이 법을 난 하루에도 열두번 찢어 없애고 싶은 심정이다.
약사의 업무를 얼마든지 일반인이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이곳 '무법천지'에선 법이 정한 기준 이상의 약사 인력은 필요하지 않다. '1명 이상이란 기준'은 곧 '1명만'을 고용해도 좋다는 면죄부로 치부될 뿐이다.
평가와 감시에서도 중소병원 약국은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나와도 약제부는 항상 제외 대상인 듯 하다. 조사원 누구 하나 약제부 상황은 눈 여겨 보지 않는다.
보건소도 상황은 마찬가지. 향정약 관리 실태와 약사 유무 여부만 확인할 뿐 그 이외 조제나 복약지도 실태, 약 관리 상황 등은 관심 밖인 듯 하다.
개국 약국들은 가격표, 진열 하나까지도 꼬투리를 잡고 감시 대상이 된다던데 병원 약국은 왜 감시 제외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인가.
이럴 때면 약사인 나는 내 면허를 바탕으로 그저 병원의 방패막이가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불법을 곧 합법으로 전락시키는 이 법은 대체 누굴 위한 제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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