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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신청인 동의 전제 조정절차는 잘못"

  • 최은택
  • 2015-04-01 06:14:53
  • [단박]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추호경 원장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추호경(68) 원장과 함께 한국의 의료분쟁 조정중재는 3년의 역사를 써왔다. 지난해 처음 실시된 기관경영평가에서는 A등급을 받았다.

조정개시율은 2012년 38.6%에서 올해는 48.9%까지 상승했다. 아직 미진하지만 두 건 중 한 건은 조정절차가 개시되는 것이다. 조정성립률은 90%로 매우 높다.

추 원장은 31일 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 소속 기자들과 만나 "의료인들이 차츰 우리의 진정성을 이해해 주기 시작한 것 같다"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일부 의료인단체가 제도 시행초기 회원들에게 조정절차에 참여하지 말라고 공문을 발송한 것을 보고는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추 원장은 법을 탓하거나 의료인을 비난하지 말자고 했다. 접수된 사건을 한 건, 한 건 공정하게 처리해 믿음을 쌓아가면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신뢰받는 기관이 될 것이라고 상임위원들과 직원들을 다독였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역사는 이렇게 쓰여지고 있다. 그리고 추 초대원장은 임기만료를 하루 앞둔 내달 8일 의료중재원을 퇴임한다.

추 원장은 "의료분쟁 조정은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약되고 의료사고 관계자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등 장점이 있는 제도"라면서 "이 제도를 두고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형사 피의자나 민사소송의 피고로 시달리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피신청인의 동의가 있어야 조정이 개시되는 현 법률 조항은 이례적인 입법례로 잘못된 규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다음은 추 원장과 일문일답

-중재원 초대 원장 임기가 곧 마무리 된다. 그동안의 소회 한 말씀

=힘들었지만 참으로 보람된 시간이었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내 삶의 큰 줄기가 의료중재원 초대원장으로 모두 집약된 느낌이다. 사실 취임 초기에는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각종 규정과 업무 매뉴얼 등을 만들면서 '과연 이 제도가 잘 시행될까' 걱정도 많았다. 상임위원들과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해준 덕에 생각보다 빨리 안착될 수 있었다.

업무도 제대로 돌아가게 됐다. 지난해 기관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것도 큰 보람 중 하나다.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갔고, 업무에 더 매진하고 있다.

-조정개시율이 낮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재임기간 내내 고민이 많았을텐데

=조정절차가 개시되기 위해서는 피신청인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법 제27조 제8항은 매우 이례적인 입법례로 잘못된 조항이다. 제도시행 초기 일부 의료인단체가 조정절차에 절대 참여하지 말라고 공문을 발송하고, 회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상임위원들과 직원들을 다독였다. "법이 잘못됐음을 탓하거나 참여를 거부하는 의료인을 비난해봐야 소용없다. 접수되는 한 건 한 건 정확히, 공정하게 잘 처리해서 신뢰를 쌓아가야만 우리 원이 환자 측과 의료인 측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기관이 되고 의료분쟁 해결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조정 개시율은 2012년 38.6%에서 점차 상승해 올해는 48.9%까지 상승했다. 조정성립률은 90% 대를 유지해 의료인들도 차츰 우리의 진정성을 이해해주는 것 같다.

다만,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약되고 의료사고 관계자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등 장점이 있는 이 제도를 두고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형사 피의자나 민사소송의 피고로 시달리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중재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법조인 출신으로 고충은 없었나

=그런가? 잘 모르겠다. 어떤 분은 환자 측이 우리 원으로 조정 신청을 많이 하게 되면 의료 전문 변호사들이 의료소송 수임 건수가 줄어들 염려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런 막연한 우려 때문에 우리 원을 나쁘게 볼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원의 조정·감정위원으로 참여하는 의료전문 변호사들은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에 일조한 데 대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 원의 '수탁감정'을 이용해 본 판사, 검사들은 이제 맘 놓고 재판과 수사를 할 수 있다고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보내는 의료분쟁 사건만 받고 있는 '연계조정'(소송 사건을 일단 법원 외의 기관에 회부해 진행하는 조정 절차)을 다른 법원의 사건도 받아 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법조계의 시선 때문에 불편한 적은 없었다.

-중재원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통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성과를 평가한다면

=의료계가 우리 원을 불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과정에서 우리 원을 거명하는 것뿐일 것이다. 사실 법에 다소 문제가 있다. 이미 조정사건 대리인 범위의 제한, 방문현지조사의 요건 및 절차, 조사 기피·방해 등에 대한 벌칙조항, 감정서 및 조정절차 진술의 원용 금지 규정 미비 등에 대해서는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진해왔다.

또 실제 운영과정에서 전향적으로 접근해 이 조항들 때문에 의료계가 불편해하는 사례는 특별히 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해 서울과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많은 의료인들을 만나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제대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또 상임위원을 비롯해 우리 원의 모든 직원들은 감정과 조정 절차를 통해 환자-의료인 간 신뢰가 향상되도록 애쓰고 있다. 이런 노력에 대한 성과를 이야기한다면, 조정참여율이 50% 가깝게 상승하고, 90% 선의 조정성립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둘러싼 갈등도 여전하다. 해법은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금은 현재 3분의 2 정도 납부됐다. 제도에 대한 불만이 있는데도 협조해준 분만의료기관 관계자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산과 분만사고 사건 조정참여율은 61.5%로 여타 진료영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조정성립률도 94.6%나 된다.

이런 수치로 볼 때에는 우리 원과 산부인과 개원의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보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도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에 대한 반감은 크게 남아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가 산부인과 의사들을 옥죄고 진료의욕을 꺾는 것이라면 가장 빠른 해결책은 그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 제도가 '환자 측의 물리적 실력 행사'를 막는 데 매우 유용한 제도이고, 또 제도이용 사례가 늘어나면서 실효성도 상당하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

물론 문제점도 없지 않다. 법의 규정 형식도 그렇고, 그 제도 운영을 국가나 의료중재원이 직접 나서서 맡게 규정돼 있는 것도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분만의료기관들의 협의체에서 자율적으로 보상기금을 형성하면 그 액수의 2배 또는 3배 방식으로 국고에서 보조해줘 산부인과 의사들 스스로 그 기금을 운영하도록 하는 게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다면 거부감 뿐 아니라 위헌 논란이 생길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여러 장점이 있는 제도이므로 일단 시행해 보면서 그 운영 주체 및 재원 분담 등의 문제를 차차 개선하는 게 정도 아닐까.

-의료계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 원을 이용했던 의료인들에게 참으로 고맙다는 말씀 드린다. 조정 과정에서 진지하게 조정위원・심사관의 말을 경청했고, 환자 측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때로는 큰 양보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의료인이 있어서 '환자들이 의사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날이 곧 오겠구나' 하는 낙관적인 기대를 갖게 됐다.

의료계 내부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려 전체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걱정이다. 전문 분야, 의료기관이나 근무 형태, 세대, 출신대학 등등의 각 분파를 뛰어넘어 대승적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이는 게 의료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본다.

의료계를 이끈다는 일부 인사들의 사고가 너무나 경직돼 있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어느 조직이건 그 지도층 인사는 그 조직 구성원에게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쪽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의료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매우 안타까웠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결국은 도움을 별로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추호경 원장 주요 이력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보건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 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지검 고등검찰관, 법무부 법무심의관, 서울지검 형사1부장검사,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을 역임했다.

또 의료분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해 대한의료법학회, 대한보건협회, 복지부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 등에 참여하면서 의료·보건분야 전문 법조인으로도 활약했다.

2012년 4월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초대원장에 취임했다.

-향후 중재원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면. 또 후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의료중재원은 준사법기관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만 정확히 판단한다고 해서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법원이 '사법적 정의(judicial justice)'를 구현하는 곳이라면 우리 원은 거기서 더 나아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까지 실현하는 치유적 사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 측과 의료인 측 모두를 따뜻하게 보듬어 의료분쟁으로 받은 상처를 깨끗이 낫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원의 원훈도 '바르게, 따뜻하게'라고 정한 것이다.

그 동안 의료감정이 의료계 쪽으로 편향됐던 것도 의료분쟁이 격화됐던 이유 중 하나였다. 앞으로 우리 원 감정단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잘 살려 수탁감정 등을 더욱 활발히 함으로써 환자 측과 의료인 측 모두가 신뢰하는 최고의 의료감정기관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또 사후적인 분쟁 해결에만 그칠 게 아니라 감정과 조정 사례들을 축적하고 관련 연구와 교육을 통해 여러 의료기관이 의료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그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임 원장은 높은 경륜과 균형 잡힌 의료관을 갖고 계신 분이 오셔서 여러 모로 다 잘 하실 것으로 믿는다. 다만, 우리 원 직원들이 행복해야 우리 원 고객들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말씀만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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