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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제약주권 확립과 동국제약의 용단[데일리팜=노병철 기자] 동국제약이 환자 권익실현을 위해 마진을 포기하면서까지 필수의약품 패티오돌의 지속적인 공급을 계획하고 있어 주목된다. 동일약물인 게르베코리아 오리지널 리피오돌과 동국제약 제네릭 패티오돌은 내달 1일 약가인하가 예정, 일선 의료기관·보건당국에서는 자칫 공급 중단 사태까지도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명목상 아무리 생명을 다루는 의약품을 개발·생산하는 제약바이오기업이라 할지라도 이른바 '노마진 정책'을 펴며, 기업 제1의 목적인 이윤추구를 배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동국제약의 이번 결심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다.리피오돌·패티오돌의 주성분은 아이오다이즈드오일(양귀비종자 유래 요오드화지방산 에틸에스테르)로 림프조영, 침샘조영, 간암의 경동맥화학색전술 시행, 자궁난관조영 등에 사용된다. 게리베코리아 오리지널 의약품 리피오돌울트라액은 1998년 국내 허가를 획득한 이후 지속적인 약가인상을 통해 2016년 5만2560원의 보험약가를 인정받았다. 이후 해당 제약사는 원가 대비 마진율 저하 등을 이유로 2018년 보건당국과의 약가조정신청을 진행해 기존 보다 261% 증가한 19만원의 약가인상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프랑스계 다국적 제약사 게르베코리아 리피오돌의 최근 약가 포지션을 살펴보면, 2022년 1월 18만9224원, 2022년 9월 13만3000원, 2022년 9월 18만9224원, 2023년 1월 13만3000원까지 인하된 상태며, 내달 1일자로 또다시 10만1745원으로 약가인하가 예정돼 있다. 2020년 허가된 동국제약 제네릭 패티오돌주도 당시 약가 가산을 인정받아 19만원의 59.5%(11만3050원)에 등재됐지만 오리지널 약가인하 시점에 맞춰 10만1745원으로 보험약가가 떨어진다. 관련시장에서 사실상 '유일무이' 한 두 의약품이 동시에 약가인하를 겪는 셈이다.특허 만료 올드드럭 리피오돌이 통상적 약가기전을 역행하며,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필수의약품으로서 대체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약품 공급이 중단되면 그 즉시 의료대란으로 이어지고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다. 대체의약품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에서 제조사는 초월적 입장에 서서, 구미에 맞는 다양한 조건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만약 기업이 원가 보존을 이유로 보험등재가격 인상을 요구할 경우 보건당국은 필연적으로 약가조정신청에 응해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공급안정화에 방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최대 19만원 상당의 약가를 받았던 게르베코리아가 5월 1일 고시 예정된 10만1745원의 약가를 수용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그동안 리피오돌 마진과 관련해 보건당국과의 설전을 벌여온 상황에서 별다른 액션 없이 제품을 그대로 유통하는 것도 명분이 2%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관련 제품 시장에서의 완전철수를 하자니 그동안 쌓아온 '독점 금자탑'을 경쟁사인 동국제약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형국이다. 의약품 유통 실적 기준, 리피오돌·패티오돌의 지난해 외형은 28억·3600만원 정도로 오리지널 절대우위 시장이다.동국제약은 환자 입장에서 패티오돌의 안정적 공급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에 보건당국은 안도의 한숨만 내쉬어서는 안된다. 국회가 지적한 대로 필수의약품에 대한 올바른 수급대책과 합리적 약가산정 방향성을 이번 기회를 통해 시급히 재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명심해야할 사안이 더 있다.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만이 제약주권을 확립하는 초석이 아니라 패티오돌과 같은 건실한 제네릭도 국익과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국민을 위해 헌신한 동국제약에 대한 향후 여타의 약가협상에서 '트레이드 오프 혜택'은 인지상정이다.2023-04-13 06:00:02노병철 -
[기자의 눈] 씨티씨바이오 지분 이슈와 내실 확보[데일리팜=이석준 기자] 씨티씨바이오가 혼란스럽다. 최대주주가 변경된지 1년 6개월여만에 또 다시 경영권 이슈에 휩싸여서다.최근 씨티씨바이오의 경영권 이슈은 파마리서치가 2대주주로 올라오면서다. 파마리서치는 씨티씨바이오 지분 8.05%까지 확보했다. 최대주주 이민구 씨티씨바이오 대표(9.77%)와는 불과 1.52% 차이다.파마리서치는 앞으로 114억원 규모 씨티씨바이오 지분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 경우 최대주주 변경 가능성이 거론된다.씨티씨바이오의 경영권 이슈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대주주의 낮은 지분율 때문이다. 언제든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이민구 대표도 2021년 9월 씨티씨바이오 최대주주로 등극하는데 불과 9.98% 지분만으로 가능했다. 기존 최대주주인 조호연 전 회장 측이 9.9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이민구 대표는 최대주주 등극 후 21%까지 지분을 늘리겠다고 선언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이에 현 지분율은 9.77%에 불과하다. 특수관계자 더브릿지를 포함해도 12.47%뿐이다.최대주주 지분율이 낮다보니 적대적 M&A에 노출되고 있다.이에 5% 주주만 등장에도 경영권 이슈에 휩싸인다. 현재 씨티씨바이오 지분은 파마리서치(9.01%) 외에도 에스디비인베스트먼트(6.46%), 조용준 동구바이오제약 대표(4.94%)도 5% 안팎으로 들고 있다. 현재까지는 우군으로 보이지만 돌아설 경우 경영권을 쉽게 뺏길 수 있는 구조다.경영권 이슈의 진짜 문제는 직원들이다. 통상 최대주주가 바뀌면 최대주주측 사람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이민구 대표가 씨티씨바이오 최대주주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회사 원년 멤버가 모두 회사를 떠났다. 조호연, 성기홍, 전홍열 등 20년 간 경영을 이끌던 인물들이다.일반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1년 6개월전 최대주주가 바뀌면서 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이상 근무한 회사 관계자는 "최근 또 다시 경영권 이슈가 일면서 벌써부터 인사 태풍이 올까 우려스럽다. 현 최대주주 이후 많은 직원이 떠났다. 2019년부터 대표이사 교체만 5번이다. 혼란스럽다"고 말했다.씨티씨바이오는 지난해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다만 낮은 최대주주 지분율로 인한 적대적 M&A 이슈는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번에도 경영권 이슈로 직원들이 혼란스럽다. 씨티씨바이오는 실적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직원 동요를 잡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지난해 최대 실적도 '반짝'에 그칠 수 있다.2023-04-13 06:00:01이석준 -
[모연화의 관점] 설득의도와 방어기제, 기법을 더한 메시지(29)바야흐로 설득 메시지의 시대이다. 현대인은 수백 개 혹은 수천 개의 설득 메시지에 매일 노출된다. 노출된다는 수동형이 말해주듯, 스스로 선택하는 게 아니다. 이 시대의 언어의 집은 설득 메시지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그래서 많은 현대인이 설득 메시지를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하고 심지어 혐오한다. 자신을 설득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면 방어기제 반사판을 만들어 튕겨버린다. 왜냐면 설득자의 의도대로 행동하는 건, 공연히 손해 같기 때문이다.오리건 대학교 마케팅 교수인 마리안 프리스타드(Marian Friestad)와 스탠포드 대학교 마케팅 교수인 피터 라이트(Peter Wright)는 설득지식모델 (Persuasion Knowledge Model)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설득지식모델에 따르면, 사람들은 마케팅이나 광고와 같은 설득 메시지에 노출될 때, 그들이 자신을 설득하려는 의도를 (설득지식으로) 읽는다. 그리고 의도가 명확하게 느껴질수록 (기필코 설득되지 않겠다는) 방어기제를 만든다. 가령, 설득자의 의도를 '저 사람은 이윤이 많이 남는 제품을 팔기 위해 이것을 추천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메시지를 거부한다.그래서 설득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기술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장점을 부각하는 일면적 메시지 전략(One-sided message)과 장단점을 함께 구조화하는 양면적 메시지 전략(Two-sided message)을 맥락에 맞게 쓰라고 제안한다.만약 새로운 기술, 새로운 영역의 제품을 설득된 경험이 낮은 소비자들에게 광고할 때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일면적 메시지가 효과적이다. 반면, 소비자가 메시지 전달자(회사)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관련 제품에 부정적 측면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양면적 메시지가 커뮤니케이터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빙그레의 요플레 토핑 광고는 양면적 메시지 전략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광고에 기획자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내용인 즉슨 "안녕하세요… 요플레 토핑 담당자입니다. 이번에 KCM님과 조동혁님 모델로 광고 재밌게 찍었는데 이게 그대로 컨펌 날 줄은…올리라고 하시니 올립니다…크래프트 토핑 요플레 토핑의 새 광고. '껍데기가 ★로야' 입니다"이다.너무 맛있고 내용물도 좋고, 토핑도 최고인데 제품 디자인이 별로라는 의미다. 양면적 메시지 전략은 커뮤니케이터의 진실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를 [작은 부정 요소]를 강조함으로 확보한다. 결과적으로, 식음료 디자인은 맛보다 작은 요소이다. 디자인이 좀 별로라고 솔직하게 말해줌으로써, 맛은 정말 좋다는 메시지에 신뢰도를 높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이런 양면적 메시지 전략은 커뮤니케이터의 공신력 상승 전략 중 하나로 약국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먼저, 맛이 좋지 않은 물약 제품에 양면적 메시지를 사용할 수 있다.가령, 마그네슘의 맛은 쓰고 떨떠름하여 사람에 따라 역한 느낌까지 들 수 있다. 마그네슘을 주성분으로 하는 액상 영양제들은 이러한 마그네슘의 맛을 잡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예민한 입맛에는 여전히 맛없음이다. 이럴 때, 약사가 마그네슘의 미끄덩한 맛의 특징을 설명하고(작은 부정) 그렇지만 잠깐만 참으면 겪고 계신 저림과 떨림에 도움이 될 거라 설명하는 방식도 양면적 메시지 전략이다.혹은,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설명할 때도 활용할 수 있다. "감기약의 특정 성분(항히스타민)이 분비물을 억제해 귀찮은 콧물을 막아주지만, 물을 말리니까 입도 마르게 합니다. 그러니 물을 잘 챙겨 드세요." 같은 구조가 대표적이다. 단점을 살포시 알려주는 양면 구성을 했다.또 다른 예로, 특정 제품 포장의 작은 부정적 이슈를 공유할 수도 있다. 물약 파우치 제품을 손으로 자르다가 옷에 튄 경험을 이야기 해주며, 예방하기 위해 가위로 똑딱 잘라 컵에 따라 드시라고 설명하는 거다.사람들은 누군가의 이런 부분은 살짝 별로였지만, 이런 부분은 엄청 좋다는 구조의 경험담을 좋아한다. 특히 전문가만 알려줄 수 있는 경험담은 더 인기가 많다. 필자가 아는 어떤 의사는 환자를 위해 모든 주사를 하나씩 맞아보고 기록했단다. 그리고 주사제를 처방할 때마다 환자에게 그 주사의 경험담을 설명했다고 한다. 맞는 순간의 뻐근함 정도, 통증 지속 시간 등을 설명해 주면, 사람들이 이분은 믿어도 되겠다는 눈빛을 보냈단다. 결과적으로 이분이 추천하는 치료법의 선택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고, 말이다.설득 메시지가 범람하는 시대, 메시지 수용자는 눈에 불을 켜고, 콘텐츠에 숨은 의도가 없는지 파악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메시지의 의도를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설사 상대의 의도가 순수하고, 선할지라도 상대가 그렇지 못하다고 인식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그래서 건강을 설득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전략은 필요하다. 현시대의 신뢰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과 영민한 전략의 합으로 얻어진다는 걸 기억하자.2023-04-12 06:37:15데일리팜 -
[기자의 눈] 제네릭 또 깎으면 신약개발도 멀어진다[데일리팜=황진중 기자] 제네릭 약가를 인하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에 제약바이오 업계가 뒤숭숭하다.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은 사용량-약가연동 협상, 제네릭 약가재평가 등 기존 약가인하 정책 외에 추가적인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혁신신약·필수의약품 가격을 우대하는 정책과 함께 제네릭 약가의 조정을 위한 정책을 동시에 진행하는 '트레이드오프'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트레이드오프는 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목표를 희생시키는 것을 뜻한다.도입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 위주인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제네릭 약가를 인하하면 제약사가 어떤 자금으로 신약개발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허가받은 신약 중에서 의미 있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약은 유한양행 '렉라자', 보령 '카나브패밀리', LG화학 '제미글로', HK이노엔 '케이캡', 대웅제약 '펙수클루' 등 5종가량이다. 이외에 개량신약 등이 있지만 대부분은 제네릭이 산업 매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제약바이오 기업이 각종 개량신약과 복합제 개발에 나서 현금창출원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국내 제약산업의 근간은 제네릭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산 제네릭은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종근당, 대웅제약 외에도 JW중외제약, 삼진제약, 삼천당제약 등이 제네릭 수출에 성공했다.글로벌 제네릭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음에도 제네릭 지원책이 아닌 약가 인하가 추진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장조사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제네릭 시장은 지난해 4393억7000만 달러(약 581조원)에서 오는 2030년 6708억2000만 달러(약 88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예상 성장률은 5.4%다.주로 제네릭 판매를 통해 현금을 창출하고 있는 중견제약사들이 신약개발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시기에 나오고 있는 약가 인하 가능성 소식이라 더 난감한 형국이다.삼진제약은 지난해에만 신약개발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해 바이오, 디지털헬스케어 기업 등 7곳과 협력하기로 했다. 한림제약도 지난 2017년부터 국내 바이오기업 9곳과 공동연구와 기술이전 등을 진행하고 있다.제네릭은 단순한 복제약이 아니다. 신약개발을 위한 자금원 중 하나다. 이스라엘계 글로벌 제약사 테바는 1980년대 매출 5000만 달러(약 661억원) 규모의 제약사였지만 지난 2015년 매출 197억 달러(약 26조원)를 기록하면서 25년만에 400배 성장했다. 성장은 제네릭 판매로 가능했다.테바는 이후 제네릭 판매를 통해 확보한 현금을 신약개발에 투자해 편두통 예방 신약 '아조비(프레마네주맙)' 개발에 성공했다. 아조비는 지난해 글로벌 매출 7500만 달러(약 992억원)를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41% 성장한 약이다.제네릭 약가인하 철퇴보다 제약사가 제네릭 판매를 통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 개량신약,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선순환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더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2023-04-12 06:15:50황진중 -
[기자의 눈] 전문약사, 언제까지 희망고문만 할 건가[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주말인 오늘도 복지부와 전문약사제도에 대한 토의가 진행되고 있다. 어쩌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끝까지 최선을 다 하겠다.”9일 인천시약사회가 진행한 팜페어 본행사 중 축사에 나선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의 발언이다. 행사를 주관한 인천시약사회가 지역 약국 약사를 배제한 제도 시행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아직 확정되지 않은 시행규칙의 변경 가능성을 언급하며 성난 약심을 달래려던 것으로 풀이된다.지난 8일 제도가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공인 전문약사가 탄생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무엇보다 제도의 세부 시행방법을 명기한 시행규칙은 아직 법제처와 규제심사대에도 오르지 못한 상태다. 지난 주말에도 복지부와 약사회가 논의 자리를 가졌다는 최 회장의 발언을 곱씹어 보면 사실상 규칙이 확정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시행규칙의 확정 발표된다고 제도가 바로 시행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시험 기관, 인증기관 등의 선정부터 구체적인 시험 준비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하지만 약사사회를 향한 복지부의 희망고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약사회는 전문약사제도 법제화가 결정된 후 지난 한해 협의체를 꾸려 자체적인 논의를 거쳐 제도의 초안을 만들고, 또 복지부와 협의해 왔다.병원약사회가 10년 넘게 민간 자격의 제도를 운영해 왔던 만큼 병원약사 위주의 제도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판은 커졌고, 병원약사를 넘어 지역약국 약사, 산업약사도 국가 공인 전문약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사사회의 기대감도 높아졌다.하지만 약사들의 기대는 결국 기대에만 그쳤다. 입법예고된 규정안, 시행규칙안 어디에도 지역 약국 약사, 산업약사가 진입 가능한 장치는 찾아볼 수 없었고, 결국 국가 공인 전문약사는 병원약사들만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입법예고 이후에도 약사회는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제도가 이미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발표되지 않은 시행규칙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규칙에 일부 조정이라는 약사사회의 기대가 이번에도 희망고문으로 그칠지는 지켜볼 일이다.전문약사제도는 이미 시행됐지만, 관련 법은 아직 반쪽짜리이며, 실질적인 제도 시행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복지부가 하루라도 빨리 현명한 결단을 내리길 기대한다.2023-04-10 20:07:55김지은 -
[기자의 눈] 제약사 수장 교체 바람, 변화 기대감 커진다[데일리팜=정새임 기자] 올해만 30곳에 가까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한미약품, 동화약품, 하나제약 등 전통제약사부터 유틸렉스, 헬릭스미스, 제테마 등 바이오 기업까지 제약바이오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각 사마다 대표이사를 교체한 배경은 각기 다르지만 불확실성이 커진 경제상황 속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의지가 짙게 깔려있다.한미약품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경영진 세대교체를 꾀했다. 새로운 대표를 통해 한미약품이 어떤 사업에 힘을 줄 것인지 예측해볼 수 있다. 그간 한미약품을 이끌었던 우종수·권세창 전 대표는 의약품 개발 전문가였다. 올해 신규 선임된 박재현 대표는 제조 전문가다. 박 대표 체제가 시작되면서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점쳐진다.대웅그룹의 한올바이오파마와 코오롱그룹의 코오롱제약의 경영진 변화도 같은 맥락이다.한올바이오파마는 박승국 대표이사가 부회장직을 맡으며 대웅제약 박수진 본부장이 신규 대표로 선임됐다. 박 신임 대표는 대웅제약 전문의약품(ETC) 영업본부장 출신의 '영업통'이다. 글로벌 신약개발에 중점을 뒀던 한올바이오파마가 내수 영업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반대로 내수 시장 위주로 의약품을 판매했던 코오롱제약은 글로벌 신약 개발로 눈을 돌렸다. 신약개발 바이오텍 플랫바이오를 흡수합병 하고 플랫바이오 창업주 김선진 대표를 코오롱제약 각자대표로 선임했다. 김 대표는 코오롱생명과학 대표직도 맡으며 코오롱그룹의 신약개발을 이끈다.이 외에도 SK바이오팜과 유유제약은 '투자통'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투자 강화를 예고했다. 셀트리온, 진양제약처럼 창업주가 회사에 경영 일선에 복귀해 강력한 리더십을 펼치려는 모습도 엿보인다.코로나19 팬데믹 속 제약바이오 업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실적을 보여줬다. 하지만 코로나 후유증으로 높아진 글로벌 경제위기 우려가 업계에도 위기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올해 늘어난 경영진 교체 시도는 '변화가 없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변화의 신호탄이다.타 업계가 침체 우려로 고용을 줄이고 생산을 감소하는 것과 달리 제약바이오 업계는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초석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 85곳 중 62곳은 직원 수를 확대하며 인력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0곳 중 7곳이 일자리를 확대하며 경제 위기 속에서도 성장 동력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올해 경영진 교체로 본격적인 신사업 진출, 투자 확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진취적인 경영전략이 경제적 불확실성을 현명하게 헤쳐나가는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2023-04-10 06:15:53정새임 -
[데스크 시선] 제약바이오 지원 정책의 기시감[데일리팜=천승현 기자] 정부는 최근 제약산업 육성·지원 위원회를 열어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향후 5년 간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달콤한 구상이 담겼다.정부는 제약바이오산업 지원 정책의 목표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했다. 연 매출 1조원 이상 신약 2개 창출, 연매출 3조원 이상 제약사 3개, 의약품 수출 2배 등을 2027년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다.이를 위해 5년간 민·관 R&D 25조 원 투자, 차세대 유망 10대 신기술 발굴, K-바이오백신 펀드 규모 1조 원까지 확대, 국무총리 산하 디지털·바이오헬스 혁신위원회 설치, 약가제도 개선 등 구체적인 지원 정책을 제시했다.정부의 제약바이오산업 지원 의지는 당연히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어딘가 식상함이 느껴지는 기시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2011년 범정부 차원에서 신약 개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KDDF)을 출범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이 부처 경계를 초월한 R&D 투자를 통해 글로벌 신약 10개 이상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2020년까지 10년 간 1조600억원(정부 5300억원, 민간 53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내걸었다.이 사업단의 목표대로라면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글로벌 신약 10개 이상을 배출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 1개의 글로벌 신약은 등장하지 않았다.물론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신약 성과 부재가 정부 탓만은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R&D 역량이 글로벌 기업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에 성과도 미흡했다고 판단하는 게 타당하다. 다만 정부가 R&D 지원 정책의 달성 여부를 단지 숫자 만으로 판단하면서 업계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지원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2011년부터 10년 간 진행된 KDDF의 지원 사업은 ‘글로벌 신약 10개 배출’을 목표로 천명했지만 3년 후에 목표를 ‘2020년까지 글로벌 신약 10개 이상 기술수출’로 수정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달성하지 못했다.지원 예산도 당초 계획에 크게 못 미쳤다. 정부가 53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면 지원받는 업체가 동일한 금액을 투자해 1조원 이상의 R&D투자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KDDF의 R&D 지원금은 2632억원으로 집계됐다. 연 평균 700억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목표 투자 규모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매년 일정 금액의 예산을 보장받는 게 아니라 사용 금액에 따라 예산을 따내는 구조라는 점에서 R&D 지원금이 계획에 못 미쳤다. 특정 해에 투입하고 남은 불용 예산이 발생할 경우 이듬해 예산이 깎이는 경우도 발생했다.제약업계에서는 거창한 R&D 지원 약속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게 더욱 시급하다는 견해를 많이 내놓는다.대표적인 게 최근 진행 중인 제네릭 약가재평가다. 제약사들은 지난 2월까지 기등재 제네릭 제품의 ‘생동성시험 수행’과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여부에 대한 자료를 제출했다.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새 약가제도를 기등재 제네릭에 적용하기 위한 정책이다. 개편 약가제도에서 제네릭 제품은 생동성시험 직접 수행과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최고가를 받을 수 있다. 제네릭 약가재평가 대상은 총 2만6362개에 달한다. 생동성시험을 수행하지 않은 제네릭은 수천개의 약가인하가 불가피해보인다.제약사들은 아직도 이 정책의 명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미 정부로부터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고 문제 없이 판매 중인 제품에 대해 단지 약가유지를 위해 또 다시 적잖은 비용을 들여 생동성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미 허가 받은 의약품을 약가인하를 모면하기 위해 또 다시 허가 목적의 생동성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다.2021년 7월부터 개정 약사법 적용에 따라 하나의 임상시험으로 허가받을 수 있는 개량신약과 제네릭 개수도 제한됐다. 1건의 임상시험으로 4개의 개량신약이나 제네릭만 허가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제네릭이 많다는 이유로 공동개발을 숫자로 제한하는 희한한 규제가 등장했다. 몇 년 전 규개개혁위원회가 이상한 규제라고 결론 내렸는데도 법 개정을 통해 10년 만에 공동개발 규제를 다시 시행했다.제약사들은 지난 3년의 코로나19 정국에서 R&D 역량 강화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주요 상장 제약바이오기업 30곳의 지난해 R&D 투자 비용은 총 2조7259억원으로 2019년 1조9168억원에서 3년 만에 42.2% 증가했다. 제약바이오기업 30곳의 연구인력은 2019년 5122명에서 지난해 6417명으로 25.3% 늘었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 위협에서도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는 의미다.제약사들은 새 먹거리 발굴을 위핸 외부투자도 적극적으로 단행했다. 녹십자홀딩스는 지난해 10곳을 대상으로 총 824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진행했다. 보령은 지난해에만 총 819억원의 신규 외부투자를 진행했다. 미래 먹거리로 지목한 우주헬스케어 사업에 광폭 투자행보를 나타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9개 기업을 대상으로 231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펼쳤다. 대웅제약은 1년 만에 12건의 신규 외부투자를 결정했다.제약바이오기업들은 오랜 기간 공들인 R&D 노력이 언젠가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믿고 있다. 정부도 기업들의 역량 강화에 힘을 보태기 위해 R&D 지원 정책도 진정성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다만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 순위다. 숫자로 정책 목표를 제시하는 것보다 소통과 이해가 먼저다.2023-04-10 06:14:48천승현 -
[기자의 눈] 공공심야약국과 화상투약기 공생시대[데일리팜=강혜경 기자] 늦은 밤과 공휴일에 약사와 상담을 통해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원격화상투약기가 지난달 30일 가동을 시작했다. 공교롭게 같은 날 공공심야약국 법제화가 포함된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거시적 차원에서 국민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화상투약기와 공공심야약국이 함께 존립하게 된 것이다. 약사사회 내에서는 여전히 화상투약기에 대한 부정 여론이 적지 않지만, 약국이 문을 닫은 심야시간대와 공휴일에도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일반인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지난 3일 KBS라디오 '조우종의 FM대행진'에서는 '지금까지는 휴일이나 늦은 시간에 급하게 약이 필요하면 공공심야약국을 찾아가거나 편의점약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기계를 통해 약사를 만나 원격으로 약을 구매할 수 있는 원격화상투약기가 수도권에서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진료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면서 지난해 6월 정부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화상투약기 규제특례 과제를 승인했는데, 약국 앞 화상투약기를 통해 화면 속 약사에게 증세를 얘기하면 약사가 상담 후 원격제어로 약을 골라주기 때문에 약물 오남용을 막을 수 있고 상담 내용 또한 녹화돼 6개월 간 보관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도 가릴 수 있게 된다'고 화상투약기를 소개했다.쓰리알코리아에 따르면 운영 일주일간 사용량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내주부터는 SNS 등 국민 홍보를 병행한다는 계획이다.실증특례를 내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각 지자체 등을 통해 '실증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약사법 등에 관리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보건소 등 지자체 담당부서의 협조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협조를 당부했다.물론 정부의 공공심야약국과 겹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공공심야약국 법제화를 포함한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약사회는 약사 직능의 공공성이 법으로 인정된 것 같아 기쁘다며 국민의 편의를 위해 시범사업 보다 참여 약국 개수와 지역 등을 넓히겠다는 입장이다. 대한한약사회까지 나서 공공심야약국 법제화를 환영한다며 일반약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365약국·야간약국도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과기부 역시 '단, 정부의 공공심야약국 정책을 고려해 조화롭게 시행'이라는 단서를 실증특례사업에 붙여뒀다.화상투약기가 약사법에 명시된 약사와 환자의 대면 원칙을 깨는 첫 사례이자, 약국 밖 투약기를 통해 의약품을 판매하는 첫 번째 사례라는 데서 생기는 우려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약사가 환자의 의약품 선택을 핸들링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편의점 안전상비약을 확대하거나 배송해 달라는 대항마로써는 충분한 논거가 있다고 본다.남은 숙제는 홍보다. 화상투약기가 설치되고 공공심야약국이 법제화된다고 해서 산자부 실증특례 신청이 이뤄진 상비약 자판기와 배달의민족 상비약 배달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거주하는 곳에서 가까이 위치한 화상투약기가 어느 약국에 설치돼 있는지, 가까운 공공심야약국이 어디인지 홍보와 각인이 필요하다.무한 경쟁의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화상투약기와 공공심야약국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라는 측면에서 효과성을 들여다 보고, 산업계의 규제완화 요구에 대응할 만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2023-04-06 09:28:14강혜경 -
[기자의 눈]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왜 필요하죠?[데일리팜=정흥준 기자] 한시적허용 종료 시점이 오자 시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비대면진료 유지를 논의한다.국회 복지위 여야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법제화에 제동이 걸리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초법적인 방법으로 서비스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당정협의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료법 개정 전이라도 보건의료기본법 아래 시범사업으로 제한적으로라도 비대면진료를 이어갈 방안이 없는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갑작스런 서비스 중단 위기에 놓여있던 플랫폼 업체들에겐 희소식이지만, 이들 스스로도 의아하지 않을까. 지난 3년 동안 해왔던 서비스는 시범사업이 아니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진행한 비대면진료 찬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5875명 중 58.9%가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회 복지위 여야 위원들도 회의적인 입장이고, 의약단체 역시 무리한 비대면진료 추진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결과적으로 비대면진료는 지난 3년 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국회와 의약단체, 국민 중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 셈이다.최근 복지부는 비대면진료 3년 간의 데이터를 발표했다. 2020년 2월 이후 3661만건의 비대면진료가 이뤄졌고, 국민 3명 중 1명은 이용했지만 의약품 오남용과 오진 등의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비대면진료 관련 사고 역시 처방 과정에서의 누락·실수 등 5건에 불과해 우려했던 부작용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그렇다면 정말 의약품 오남용, 오진에 따른 부작용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비대면진료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코로나 재택환자에게 적정 처방이 이뤄졌는지, 혹은 부작용이 발생했는지 파악할 보고 체계가 작동했을까.안타깝게도 3년의 서비스는 앙상한 데이터만을 남겨 놨다. 비대면진료의 고도화는 이루지 못했고, 부작용으로 우려되는 지점들에 대한 보완책 마련도 이뤄지지 않았다.플랫폼 업체의 환자 정보 이용 및 유출에 대한 대책도 없고, 오진이나 잘못된 약 배송에 따른 책임 소재도 불명확하다. 전자처방전 전송과 표준화의 문제, 비대면 진료와 복약상담의 질을 보장하는 것도 3년 동안 개선되지 않았다.급박하게 시행된 한시적 허용 서비스가 무결점이었다기 보다 결점을 찾아내 보완할 의지나 능력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더 개연성이 높지 않을까.아울러 시범사업이 다시 한번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3년 간의 한시적 허용이 실패로 끝났다는 걸 얘기하는 것과 다름없다.윤석열 정부의 비대면진료 추진과 규제 개혁에 대한 의지, 위기에 놓인 영세한 플랫폼 업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마음은 느껴진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라는 명분도 사라진 상황에서 초법적인 시범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를 보건의료 종사자들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2023-04-05 17:24:46정흥준 -
[모연화의 관점] 고려,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6계단(28)인스타그램에서 매일 스쿼트 백 개를 실행해 뚱뚱 배가 홀쭉 배로 변신하는 과정을 본다. 오늘부터 운동하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생각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한탄하지만, 안심하라. 인간은 원래 그렇다.변화에 관한 결심 그 자체는 쉽지만, 변화를 이루는 과정은 단계를 거쳐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게다가 잠깐 한눈을 팔면 스프링의 관성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변화의 단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1970년대 후반, 로드 아일랜드 대학의 암 예방 연구 센터의 심리학과 교수인 제임스 프로카스카(James O. Prochaska)와 메릴랜드 대학 심리학 교수인 카를로 디클레멘테(Carlo DiClemente)는 변화의 단계를 범이론모델(TransTheoretical model; TTM)을 통해 설명했다.이 이론은 300개 이상으로 분할된 변화의 심리치료이론들을 통합하여,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변화 단계(stage of change)를 정립하였다. 행동 변화에 관한 모태가 될 수 있을 만한 이론이기 때문에 '범이론'으로 불리며, 건강 영역에서는 불안과 공황 장애, 고지방 식습관, 복약 이행, 중독 치료, 금연, 다이어트, 운동 증진과 같은 다양한 사례에 적용되고 있다. 범이론모델의 단계는 시간적 차원을 포함하며, 행동변화를 유한한 사건이 아닌 무한한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론에 따르면, 변화는 크게 여섯 단계로 이루어진다. 변화는 그림에서 보듯 사전고려 단계, 고려 단계, 준비 단계, 행동 단계, 유지 단계, 종료 단계이며, 계단을 오르내리듯 퇴보와 전진을 거듭한다.사전고려(precontemplation)단계는 무관심 단계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행동 변화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여러 차례 변화 시도 실패 후 동기를 상실한 상태이다. 고려(contemplation) 단계는 사람들이 향후 6개월 이내에 변할 마음이 있는 단계이다. 변화의 이익과 비용 혹은 위험 간의 계산을 하며 망설이는 단계라고 볼 수도 있다.준비(preparation) 단계는 변화의 행동을 막 취하려는 혹은 살짝 그 행동을 한 단계이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금연이나 비만 클리닉 같은 행동 지향적 프로그램에 관심을 둘 수 있다. 행동(action) 단계는 지난 6개월 이내에 자신의 기존 행동을 분명하게 바꾼 단계이다.하지만 이 행동 단계가 변화의 완성 단계는 아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쉽게 중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단계인 유지(maintenance)가 필요하다. 이 단계는 사람들이 원래의 행동으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변화과정을 유지하는 상태이다.참고로 미국의 금연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12개월 동안 금연 상태를 유지한 사람 중 40% 이상이 다시 흡연자로 돌아갔고 5년 정도 금연을 유지해야 다시 흡연자가 될 위험이 7%로 떨어진다고 한다.마지막으로 종료(termination) 단계는 더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행동에 관한 완전한 자신감을 느끼게 된 단계이다.단계마다 수용자가 변화에 관해 갖는 마음가짐은 다르다. 그러므로 수용자의 변화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메시지는 수용자의 마음에 닿기 어렵다. 요즘 말로, 'fit' 이 맞지 않게 된다.예컨대 사전고려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변화에 관해 별 관심이 없으므로 지식을 넣어주거나, 현재의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인식시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고려 단계에서는 행동의 이득을 강조하거나, 비용이나 장애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메시지 전략이 필요하다.준비 단계에서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해 주고, 긍정적인 응원 메시지가 필요하다. 행동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칭찬을 포함한 피드백 메시지가 중요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지지 메시지가 필요하다. 유지 단계에서는 모호한 칭찬보다는 유지 행동 그 자체에 관한 확실한 인정이 필요하다.만약, 사전 고려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갑자기 목표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제시되면 어떨까? 혹은, 유지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위험해집니다"라는 메시지가 제시되면 어떨까?전자는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에게 서울대 갈 방법을 알려준다는 메시지와 비슷하다. 후자는 이미 삶을 열심히 개척하고 있는 사람에게, 열심히 안 살면 큰일 난다고 겁주는 메시지와 비슷한 결이다. 속된 말로, 맥락에 맞지 않는 꼰대 메시지라 할 수 있다.2023-04-05 15:13:31데일리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