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하사탕 한알로 할머니 살렸어요"우리 주변의 작은 봉사 하나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말이 쉽지 그만큼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전주지역에서 사탕 한 알로 위급한 노인의 생명을 구한 사연이 있는데, 이미 이 지역 건강보험공단 지사에서는 한바탕 유명세를 탔다는 '화제의 일화'를 들어봤다.건강보험공단 전주남부지사 노인장기요양보험 파트에서 수급자 관리를 맡고 있는 정지현 대리는 두어달 전, 여느 때와 같이 노인들의 건강상태 변화를 확인하는 갱신조사 차 한 할머니의 가정에 방문했다."당뇨병을 앓고 있던 홍 할머니 집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죠. 어르신이 식은 땀으로 온 몸이 흥건했었어요. 사지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저하된 상태였어요."식이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당뇨질환자였던 홍 할머니의 증세가 이상하다고 여긴 정 대리는 일단 옆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역시 끼니 때문이었다."할아버지께 여쭤보니 아침식사도 못하셨더군요. 저혈당 증세였는데, 병원에 가기 전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단 판단이 들더군요."간호사 출신인 정 대리는 일단 당뇨환자들이 가까이 하는 사탕을 주변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 때 방 안 한 켠에 놓여 있던 박하사탕이 정 대리의 눈에 들어왔다.황급히 박하사탕을 할머니 입에 넣은 정 대리는 할머니의 사지를 주무르며 상태를 주시했다. 사탕의 기운이 할머니의 몸에 퍼지는 게 보였다.몇 분 뒤, 다행히 할머니의 저혈당 증세가 조금씩 나아져갔다. 그렇게 할머니는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해 병원으로 이송,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긴박했던 순간이었다."홍 할머니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지난해 11월부터였어요. 사실 수백명의 어르신을 담당하고 있는 터라 모두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죠. 홍 할머니와도 마찬가지였어요."홍 할머니의 다급했던 그날이 마침 정 대리의 정기방문이었다니, 상담을 위해 몇 차례 유선상 통화한 것이 전부였던 홍 할머니와 정 대리의 기막힌 인연이었던 셈이다.이 일이 있은 후 정 대리는 적절한 응급처치로 미담을 선행한 공로로 이사장 표창을 받았다고."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건데, 주변에서 훌륭한 일을 했다며 모두 격려해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셔서 오히려 부끄럽습니다."장기요양서비스 담당으로 노인들을 많이 접하는 정 대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단다."어르신들을 보며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국가가 이들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대우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제가 하나의 밀알이 되고싶습니다."2011-06-13 06:40:00김정주 -
"조혈모 세포 기증약속 지켜 뿌듯해요"4년 전 어느날, 혜화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함남석(29)씨는 한국조혈모세포협회 봉사단의 권유로 조혈모세포 기증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그늘막으로 설치된 천막 아래서 혈액을 뽑아갔어요. 그 후론 잊고 있었죠."의대를 졸업하고 모교인 순천향대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 2년차를 밟고 있던 지난 4월. 함 씨는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조직적합성항원(HLA형)이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났는데 조혈모세포를 기증할 의사가 있느냐"면서 기증의사 재확인을 묻는 협회로부터의 전화였다.골수 기증 서약서를 떠올린 함 씨는 큰 고민 없이 "알았다"고 말했다.하지만 갓 결혼한 그는 "혹시라도 부모님과 아내가 반대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직 아이가 없는 지라 아내가 걱정을 하면서도 함 씨의 편을 들어줬다.이식일정을 조정한 그는 건강검진을 받고 순천향대병원에서 6월 1일과 2일, 양일에 걸쳐 말초혈조혈모세포를 채취했다.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입원 다음날 아침 성분헌혈을 하듯 4시간 가량 조혈모세포를 채취한다. 이튿날은 2시간 가량 소비됐다.혈액을 혈관으로 뺏다가 다시 넣는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조혈모세포 채취가 끝나면 몸이 붓고 피곤해지기 십상이다.지난 2일 조혈모세포 채취를 마치고 병실에 입원한 함남석 씨.'의사가 아픈 환자를 위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한다'는 좋은 취지 때문일까. 순천향대병원에서는 함 씨에게 공가 5일을 줬다."기증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는 함 씨는 "좋은 일을 하는 것도 뿌듯한데 더불어 칭찬까지 받게 됐다"면서 멋쩍어 했다.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나아지는 환자도 있지만, 더 안좋아지는 환자도 보게 된다는 함 씨.그는 "이번 일로 아픈 환자를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면서 뿌듯함을 전했다.인터뷰를 마치며 함 씨는 한 가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4년 전 조혈모세포 기증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만큼 조혈모세포기증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그는 "조혈모세포, 환자와 관계가 깊은 의료진도 스스로 서약을 할때까지는 기증 내용을 잘 모른다"면서 "많은 국민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2011-06-09 06:40:20이혜경 -
"스테인드 글라스 매력에 빠져보세요"한국BMS 박지수 부장색유리를 쓰거나 색을 칠해 무늬나 그림을 나타낸 판유리로 각종 색유리편을 붙인 반투명 유리를 구리나, 납으로 이어 붙인 모자이크판 장식유리. 이것이 바로 스테인드 글라스의 사전적 정의다.스테인드 글라스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성당 유리창이 대표적이다. 아주 오래된 예술 장르의 하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까지도 대학 등에서 정규 수업 과정으로 편성된 적이 없어 전문가라고 할 만한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처럼 전문가마저도 생소해 하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취미 생활로 시작해 작가로 데뷔한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한국BMS 재경부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지수(44)씨다.그에게도 스테인드 글라스는 접하기 전까지는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뒤 이제는 주말마다 그를 공방에 머물러 있게 할 만큼 매료시켰다."직장 상사로 모셨던 분이 DIY 가구를 만든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 그걸 배우러 공방에 가게 됐어요. 그 분이 3개월 과정을 마친 뒤 스태인드 글라스를 배우고 있더라구요. 저도 그 분의 조언으로 처음 시작하게 됐어요."모든 일이 처음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겠지만, 스테인드 글라스 역시 초보자가 하기에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유리를 만져야하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수반됐기 때문이다.작품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색색의 유리판을 유리칼을 이용해 도안대로 잘라 이어 붙여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작품을 하나 만들 때마다 손도 많이 베고, 다치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을 해 땀도 많이 흘려요. 그래서 제가 만든 작품 하나하나에는 피와 땀이 서려 있어요.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실제로 피땀 흘려 만든 작품이에요."고된 작업임과 동시에 시간 역시 많은 시간이 투자된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말 내내 시간을 투자하고도 수 주가 걸린다. 또 기본 도안까지 구상한 시간까지 합한다면 그 시간은 배가 된다. 이제 그가 10개월 가량을 배웠으나 그가 만든 작품은 10여점이다.이렇게 피땀(?)흘려 만든 작품이 최근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에게 스테인드 글라스를 가르쳐 준 선생님과 제자들이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는 자리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의 전언대로라면 스테인드 글라스 전시회를 개최는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이라고."전시회에는 제 작품 두 점을 전시했는데, 초청된 지인들이 제 작품을 보고 많이 놀라워 화시더라구요. 평소에 제 성격을 봐서 이런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거든요."사실 그는 스태인드 글라스를 하기 전까지 야구장이나 농구장 찾기가 더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급했던 성격도 많이 차분해졌다. 또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공방에서 날려버리면서 업무 효율성까지 높아진 것은 덤이다.그에게 삶의 또 다른 재미를 알게 해 준 스테인드 글라스에 대한 열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당장은 아니지만 먼 훗날 나만의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 단독 전시회를 갖는 것이 목표에요. 그 전까지는 작품 하나 하나를 만들 때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께요."2011-06-07 06:40:10최봉영 -
"메신저 켜면 약사들과 소통 문제 없지요""회원 약국 125곳으로 메신저로 한 데 묶었지요. 약국 경영정보, 교품, 공동구매, 고충처리도 해결할 수 있어요."올해 1월 경북 구미시약사회장에 취임한 김승철 회장(예명약국)은 가장 먼저 추진한 사업이 약사간 소통부재 해소였다.이를 위해 김 회장은 권혁만 정보위원장(국제약국)과 함께 1인 1메신저 갖기 운동을 시작했다.지난 4월부터 진행된 메신저 갖기 운동에 약국 125곳이 참여, 그 결실을 보고 있다."매일 아침 메신저를 통해 의약품, 약국경영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약국들의 어려움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지요."결국 소통이 부족한 조직은 하나가 될 수 없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조직은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약국들의 반응도 좋다. 손쉽게 가입, 사용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 메신저를 사용하기 때문에 번거롭지도 않다.메신저 설치에는 제약회사 직원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약국들이 메신저 설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약국에 메신저 설치를 강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김 회장은 결국 제약회사 직원들이 각자의 거래처 약국을 방문해 직접 메신저를 설치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지금과 같은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약사회 홈페이지에서는 약사들이 직접 찍은 사진 콘테스트도 한창이다. 제약회사 직원들도 참여할 수 있다.메신저를 통해 사진 파일을 제출할 수 있고 홈페이지에 직접 올려도 된다. 회원 약사와 제약회사 직원 모두 하나가 된다.김 회장은 "회원-회원, 회원-약사회 간의 소통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소통의 결과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지를 지켜보는 것은 아주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2011-06-02 06:49:46강신국 -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뭉치다지난해 KBS 예능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방송을 타며 직장인 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직장인 대부분 악기 하나쯤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젊은 시절 그룹사운드에 속해 멋지게 공연을 하는 모습을 한 번쯤은 꿈꾸어 봤을 것이다.밴드 활동을 위해서는 멤버 구성이나 악기 구비 등 여러 가지 제약이 많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JW중외신약 'JW밴드’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직장 생활의 애환을 음악으로 분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일요일 오전 한적한 JW중외신약 송탄공장 한켠에서 쿵작쿵작 리듬을 맞추는 소리가 들린다.이날은 JW중외신약 밴드 동호회 ‘JW밴드’가 평소 개별적으로 연습한 연주 실력을 함께 모여서 맞춰보는 날이다.2평 남짓한 공간에서 만난 ‘JW밴드’ 멤버들은 그동안 연습한 곡들을 선보일 생각에 조금은 들뜬 분위기다.JW밴드의 탄생 배경은 조금 남다르다. 2008년 가을 회사 한마음 전진대회에서 임직원들이 신나게 응원할 수 있는 이벤트를 한번 마련해보자는 생각에서 프로젝트 팀이 구성됐다.결성 당시에는 보컬도 드럼도 없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한다는 한 가지 공통점으로 팀을 꾸리게 됐다.“음악을 전공한 멤버는 없어요. 저도 여기서 드럼 스틱을 처음 잡았죠. 저희와 같은 사내 밴드는 그저 음악이 좋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드럼을 담당하고 있는 고경안 대리는 멤버들 모두 아직은 실력보다는 음악에 대한 열정에 더 큰 점수를 얻고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현재 JW밴드는 보컬 겸 동호회 회장인 류성철 차장(물류팀)을 필두로 기타 임상한 사원(생산지원부), 드럼 고경안 대리(생산부), 키보드 김해영 주임(품질보증부), 베이스 김범길 주임(연구소) 등 총 5명의 멤버로 구성돼 있다.멤버 모두 다른 파트에서 근무하다 보니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합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대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개별적으로 연습을 하며 기본적인 연주 실력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최근 회사 내 유휴 공간을 직접 리모델링해서 연습공간을 마련했어요. 연습실의 방음벽은 계란 판을 사다가 일일이 붙여서 만들었죠.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들었습니다.” 임상한 사원이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나온 유행어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표현했다.이들에게 음악과 밴드 활동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들은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라고 입을 모았다.“처음 연습하는 곡들은 모두 부조화된 굉음에 지나지 않지만 서로의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금씩 맞춰가다 보면 하나의 화음이 만들어지는 걸 느낍니다. 음악처럼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류성철 차장은 밴드 활동을 통해 회사와 동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됐다고 말한다.JW밴드의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JW중외신약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기대가 크다. 실제로 지난해 송년회에서는 그동안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며 전 임직원 모두가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한마음 전진대회 이후 공연을 2회 정도밖에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2010년 송년회 축하 공연을 하며 다시 하나 된 사운드를 통해 따뜻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죠. 직원들이 우리의 연주를 들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김범길 주임은 지난 연말 행사를 회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JW밴드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김해영 주임이 앞으로의 각오를 내비쳤다.“올해는 우리 밴드가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연습도 열심히 할 거고요. 음악이나 밴드 활동에 관심 있는 JW중외가족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각기 다른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JW밴드’의 연주는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2011-05-30 06:40:20가인호 -
"우리나라 제약, 할 수 있습니다"술자리가 무르익기 전인데도 그의 입에선 같은 단어가 몇번이고 반복됐다.컨슈머. 그는 국내 제약사들은 이제 '컨슈머(consumer)'를 생각할 때라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지난 24일 만난 장관영(44) 현대약품 바이오파마티스 개발기획팀장은 요즘 제약계 사람들과는 비교되게 활력이 넘쳐났다.그는 지금 현실이 절망적이지만 하나로 뭉치면 못할 것이 없다고 기운을 불어넣는다.제약업계 개발 담당자 커뮤니티인 PMS(Pharmaceutical Manager Society·제약관리자모임)도 '함께 살 길'을 모색하고자 만들었다."한미 #FTA 논의가 한창이던 때였어요. FTA가 체결되면 '내수에만 머물러선 힘들다'는 생각에 뜻있는 사람들과 모임을 가진 게 시초였죠"작은 오프라인 모임으로 시작한 PMS는 데일리팜 클럽에 자리를 잡고 나서 지금은 45개 제약사에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PMS에는 제약사 개발부 직원뿐만 아니라 라이센싱 업체 대표, 특허 전문가 등 다양한 직종군의 사람들이 소속돼 있다."요즘 개발부 직원들은 말그대로 '멀티 플레이어'입니다. 기존 허가업무 외에도 특허나 시장동향을 파악해야 뒤쳐지지 않죠. 이러한 정보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PMS는 생동성시험 등 개발현황부터 특허, 해외시장 동향까지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자연스레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종도 다양해졌죠"그는 의약품 트렌드를 파악해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내야한다고 강조한다. 트렌드 중심에는 '컨슈머(소비자 또는 고객)의 성향'을 정확히 읽어내는 게 관건이라는 설명이다.그가 일하고 있는 현대약품 바이오파마티스도 컨슈머를 공략해 해외 성과를 얻었다. 국내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제제기술'을 가지고 1년 반만에 세계 5개국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공룡같은 해외 제약사들이 국내에 들어와도 버틸 수 있으려면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잠재적 경쟁자와 싸워 이기려면 무엇보다 국제적 트렌드를 읽는 능력과 다양한 지식을 키워야 합니다."그는 삼성이 해외시장에서 브랜드를 키운 것처럼 제약업계가 똘똘 뭉치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컨슈머와 함께 '강강술래' 정신을 강조한다."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들어온 사실을 아세요? 지금은 어느나라보다 고추를 가장 잘 활용하는 민족이 됐죠. '작은 고추가 맵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리가 서로 공유하고 함께할 때 못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2011-05-26 06:40:45이탁순 -
"아파트까지 팔아 산 회사 들여다보니…"'주인의식을 가져라." 직장인들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듣는 말이다. 대부분 샐러리맨들은 '교장선생님의 훈시'처럼 이 같은 말을 들으면서 출근하고 퇴근하며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문득 문득 "내가 오너였으면…"할 뿐이다.비씨월드제약 홍성한 사장(53)도 2006년 6월 이전까지는 직장인이었다. 인연에 얽히지 않았다면 홍 사장 역시 오너의 길을 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그가 극동제약을 인수해 비씨월드제약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을 때 제약업계 사람들은 '어떻게 된거냐'며 호기심을 잔뜩 드러냈었다."직장을 다니면서 내 회사를 가져보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아예 없었어요. 정말 내 회사, 마지막 직장이라는 생각을 다지며 열정을 쏟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기회가 왔어요.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내 편한대로 여기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배짱도 들더군요. 까짓것 한번 해보자, 이래서 하게 된겁니다. 거창한 꿈도 세밀한 계획도 없었죠. 지금와서 보면 식은 땀 나는 일이었죠."서울약대 출신으로 동화약품 개발부장과 아주약품 부사장을 거친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제약회사를 꾸려갈수 있는 역량은 갖고 있었다. 단, 한가지만 빼놓고 말이다. 직장인들의 취약점이 '그 놈의 돈'이 아니던가. 매달 수지를 맞추기도 어려운데 뭘 새롭게 한다는 것은 직장인에게는 모험이다.홍성한 사장은 직장인이었다가 제약회사를 인수해 탄탄한 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이는 매우 드문 사례로서 많은 직장인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아파트도 팔고…현금이 될만한 건 다 처분했어요. 제가 사실, 학비를 벌어가면서 어렵게 대학을 나온터라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어요. 그러니 아파트는 모든 직장인들처럼 전 재산인 셈이었죠. 약사인 아내가 그러더군요. '한번 해봐라. 실패하면, 한적한 시골가서 작은 약국이라도해서 밥은 먹고 살지 않겠느냐'고요. 지금도 아내의 격려를 고맙게 생각합니다."그는 2006년 6월 비씨월드제약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를 꿈꾸며 바이오(Bio)와 케미컬(Chemical)의 약자를 앞에 내세워 비씨월드제약이라는 사명도 지었다. 사명은 근사했고, 그의 취임사는 힘이 넘쳤다. 그러나 그 앞에 펼쳐진 과제는 만만하지 않았다."들어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본은 잠식 상태였고, 매출채권 회수 가능성도 낮은데다, 단기채무가 많았습니다. 아찔하더군요. 왜 미리 더 꼼꼼하게 살피지 못했을까 가슴이 조여오는데 6개월 동안 밤잠 한번 제대로 이룬적이 없었어요. 성실하고 착한 직원들의 눈빛이 유일한 자산처럼 보였는데, 그 눈빛도 부담으로 다가오는 겁니다."그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인천 남동공단에 있던 한방과립제 공장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비장한 결심을 했지만 수차례 망설였다. "GMP 를 갖추지 못한데다 향후 기업의 진로에도 맞지 않는 공장이었죠. 하지만 60명의 일터였어요.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직원들에게 나가달라고 말할 때 내 스스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겁니다. 눈물겨웠고, 가슴이 쓰리고…."어려운 과정을 거친 그에게 남은 것은 여주공장과 100명의 직원들 뿐이었다. 한방과립제를 처분한 그는 치료제 전문기업으로 기업 체질을 개선하기로 하고 내과, 외과, 정형외과, 혈액종양과 중심의 60여품목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우수 인재를 영입해 3본부체제의 회사로 정비했다.인수 당시 매출액 80억원 규모였던 비씨월드제약은 2010년 기준으로 매출액 250억원, 직원 200명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명의 직원 중 연구인력이 45명에 달할 만큼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작년에도 여주공장 cGMP 공장부지를 매입했으며 서울에 신약연구소를 세웠고 서울연구소도 증설했다.매출규모는 작지만 '연구개발을 통한 신약 등 신제품 개발이라는 방향성이 선명한 오너 리더십'을 바탕으로 신약, 원료의약품, 퍼스트제네릭, 개량신약, 플랫폼 기술 개발을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재정이 어려운 회사를 인수한 탓일까. 그는 탄탄한 재무여건을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매입채무 결제를 모두 현금결제로 바꿨어요. 자가어음 발행도 중지했고, 은행도 어음 할인 약정도 해지 했습니다. 작은 기업일수록 빚을 지면 안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직장인에서 CEO로 변신해 좋은 점은 뭔가요."젊은 시절 내가 오너라면 이런식으로 할텐데 하던 것을 실현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힘든 일도 많지만 직원들 표정에서 회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보았을 때, 고객으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직장인 시절이 그립지는 않은가요."가끔 있어요. 무한책임감 때문이죠. 뭔가 두 어깨를 누르는 실체가 책임감인 것같아요. 생기 발랄했던 신입사원 때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회사 CEO라면 제 심정 이해하실 겁니다."-약대 시절은 어땠나요."전공인 약학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타 전공 친구들과 경영에 관한 그룹스터디 같은 걸 하면서 어울렸죠. 친구들을 많이 사귄거죠. 아마 이런 배경이 CEO가 되는데 밑거름이 된 것같아요."-그러면 기업인수 때도 인맥 네트워크가 작동했다는 건가요."물론입니다. 대학때 하도 다른과 친구들과 놀아서 그런지 변호사, 회계사 등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이 많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인연을 중시합니다."-기업인수 때도 인연이 역할을 했나요."말씀드린 것처럼 직장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10여년쯤 전에 극동에 개발업무와 관련해 도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극동 회장님이 보자해서 갔다가 여기까지 오게된 겁니다."-비씨월드의 비전은."글로벌 제약기업과 존경받는 기업입니다. 정직하고 투명하며 룰을 지키는 회사, 취업하고 싶은 1등 회사입니다."-롤모델 경영인은 누구인가요."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에요. 도전정신과 열정이 존경스럽습니다."-경영인으로서 감명깊에 읽은 책은."앤서니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죠.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헌신적인 리더십을 이야기 합니다."-최근에 인상적인 일은."프로들의 경연인 나는 가수다를 시청한 건데, 임재범이 인상적이었요. 프로들의 진지함과 열정을 회사 임직원들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하."-여유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시는지."사람 만나는 것을 태생적으로 좋아해 개인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아요. 가끔 공연 감상이나 독서를 합니다. 골프(보기 플레이어)와 바둑(아마 4단)도 합니다."-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신뢰, 커뮤니케이션, 목표공유, 일관된 업무 추진입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자는 것도 그중 하나죠. 사실 3본부 체제로 잘 운영되는데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제게 숙제로 맡깁니다. 이건 제가 사력을 다합니다."-회의는 얼마나 자주하나요."중역회의는 30분정도 합니다. 15분 논의, 15분 여담이죠. 출근해 9시전까지 간단하게 팀장 보고를 받습니다."-요사이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무엇인가요."1982년 약업계에 들어온 후 지금이 가장 예측이 어려운 시기같습니다. 그래서 중장기적인 선택과 집중의 R&D를 수행하고 있어요. 장차, 국내는 물론 글로벌에서 좋은 성과를 확신합니다. 저같은 사례가 흔치 않은 만큼 후배들에게 모범적이고 희망을 주는 선배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2011-05-25 06:35:00조광연 -
"꿀피부가 되는 비결, 들어보세요""여름이 되면 아토피 환자들은 더욱 고생이 심해지죠. 먹거리와 일상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많은데 이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해요."산업화로 인한 환경의 변화, 먹을거리와 식습관의 변화, 주거형태의 변화와 기후의 변화 등환경적인 영향과 가족력, 스트레스 등으로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강원도약사회는 여약사회장 손순주 약사(49)는 이 처럼 증가사하는 아토피 피부질환을 예방하고 해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학부모나 가정주부 등을 대상으로 약물교육을 실시하다보니 아토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2007년부터 아토피 예방사업을 여약사위원회 사업으로 채택했고 2009년에는 도에서 사회단체 보조금을 지원받아 본격적인 사업으로 확대했죠."손 약사는 약사업무와 연계해 질환홍보와 예방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춘천에서 열린 봄내예술제에 참가해 아토피 예방 시민캠페인 및 아토피비누 만들기 체험행사를 가졌다."해마다 하고 있지만 아토피 비누만들기 등 체험행사에 대한 호응이 좋아요. 참여하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재미도 느끼고 아토피 예방과 관리 중요성도 깨닫게 되죠."손 약사는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아토피 질환이 심해지지 않도록 먹거리 선별과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아토피 예방 생활지침에 관한 내용을 홍보하고 있다.이를테면 집먼지 진드기 제거를 위한 카페트, 방석 등의 세탁, 냉방기 필터 청소, 애완동물 기르는데 주의사항, 금연권고 등이다.또 아토피 환아 가족모임에 참가해 고민을 상담하고 여성단체와 연계해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노력한다."도에서 아토피 환자들을 위한 지원사업은 산림욕정도예요. 실제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예방하고 호흡기 질환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직접적인 지원은 없는 셈이죠. 충청도에는 아토피 환아들을 위한 학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원도도 그런 학교를 지정해주길 여성단체와 연계해 도에 요청하고 있어요."아토피 환자 당사자들보다는 질환을 발견하고 옆에서 케어해줘야 하는 가족, 학부모, 보육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늘려야된다는 것이 손 약사의 생각이다."아토피 환자가 늘고있다는 반갑지 않은 뉴스를 접하다보면 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죠. 교육대상을 학부모에서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확대할 생각이예요. 모두 피부 종결자(?)가 되는 날까지 노력해야죠."2011-05-23 06:40:10이현주 -
"자전거 타면서 제약영업 끼 발견했죠""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정상을 정복한 이후 찾아오는 희열감, 그리고 내리막 길을 달릴 때 느낄 수있는 산뜻한 바람은 자전거 최대 매력입니다."자전거를 접하면서 성격이 활동적으로 바뀌었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영업을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파마킹 병원영업팀 최태승 대리(31).자전거를 타면서 자유를 만끽해서 일까? 쌍벌제 시행 이후 제약영업이 어려움에 처했지만 특유의 친화력을 가진 그는 영업전선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2006년 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향인 강원도 강릉에서 지인들과 함께 자전거 동호회를 만들면서 자전거 세계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특별히 자전저 하이킹을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그는 돌이켜 보면 자전거가 그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자전거 타기라는 하나의 취미 생활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발견, 현재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자전거를 타면서 제 성격에 변화가 일었다는 겁니다. 지인들이 활발해진 제 성격을 보며 '넌 영업이 체질이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약을 파는 제약영업사원이 됐습니다."하지만 그는 자신을 제약 영업사원의 길로 인도해준 자전거 타기와 잠시 이별을 했다고.2008년 파마킹 입사 이후 바쁜 업무로 시간을 낼 엄두가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2년 가량 쉬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전거를 타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2010년 '소울라이드'라는 동호회를 통해 자전거 세계에 재입문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매주 회원들과 함께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이토록 그를 자전거 애찬론자로 만든 이유는 멀까."모든 취미생활에는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자전거는 정해진 길만을 따르지 않고 다양한 동선을 활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특히 희열감은 자전거 타기의 최대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페달을 밟고 정상에 섰을 때의 희열감 말입니다."자전거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올 여름 휴가에 맞춰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일본열도 횡단을 하고 싶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만큼 올 여름 휴가 기간에 맞춰 일본 큐수 또는 훗카이도 지방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연인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2011-05-19 06:39:55이상훈 -
"아낌없이, 그리고 후회없이 저를 팔았어요"그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던 날 집무실은 난향으로 뒤 덮였다. 의사들이 보낸 난 화분만 300개에 달했다.입사 이후 35년간 병원영업의 현장을 누벼온 정연진 일동제약 대표이사 사장(62)은 제약업계에서 인맥쌓기의 달인으로 통한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필부라도 의료계 인사 몇 단계만 거치면 그 사람의 인적사항까지 파악해 낼 정도다. "머릿 속에 전국 의사 인맥이 네트워크로 구축돼 있습니다. 지역과 지인들의 얼굴이 그대로 매칭되는 것이죠."17일 오전 양재동 일동제약을 방문했을 때 그는 순백색 셔츠에 분홍색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어색함도 잠시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자 긴장감은 이내 사라졌다. 그는 누구라도 금세 무장해제시키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듯 했다.직장생활 35년 만에 그는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평사원도 자기하기 나름인 회사의 문화'가 토양이었다. 그는 이 곳에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고 싹을 틔웠으며 순도 높은 노력을 기울였다."말끔한 정장 차림에 반해 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서울약대 출신. 약사를 영업사원으로 뽑았던 일동제약에 1975년 입사했을 때도 남다른 선택을 했다. "당시 회사의 매출은 약국에서 99%, 병의원에서 1%가 나왔어요. 그야말로 약국영업 기반이 탄탄했거든요. 그 때 전 병원영업을 하겠다고 자원했어요. 지금도 도전적인 골프 코스를 좋아하는 걸보면 원 성향이 그런가 봅니다."정연진 일동제약 대표이사 사장은 병원 영업에 관한한 약업계의 레전드로 불린다. 순수한 인간관계에 위에 쌓은 인맥은 전국 네크워크로 연결될 정도다. 그는 이제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더 넓고 더 깊게 창사 70주년의 일동제약을 들여다보고 끌어나가야하는 자리에 앉았다. 의욕은 넘쳤으나, 현장은 낯설고 냉정했다. "선임자와 병원 업무 인수인계를 나갔는데 병원으로 가지 않더군요. 그러더니 멀찌감치서 '저기 건물 보이지? 저기가 OO병원이야' 하는 겁니다. 그것으로 인수인계가 끝이 난 겁니다. 후회할 겨를도 없었죠."말 한마디 제대로 걸어볼 사람조차 없는 곳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인맥 확보였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물론 고등학교 동문, 재수시절 알았던 지인, 아내의 친인척까지 상상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찾아냈어요. 제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영업은 무슨 영업입니까. 우선 사람이 급했고, 병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했거든요."궁즉통. 그는 궁하면 통한다는 이 말을 좋아한다. "절박함으로 임하니까 길이 조금씩 보이더군요. 다음으로는 알게된 인맥에 정연진이라는 사람의 신뢰를 불어넣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시간이 지나니 인맥이 전국에 연결됐습니다. 아들 결혼식에 직접 찾아오셔서 축하해준 의사분들이 200명이 넘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역에서 은퇴하신 선생님들이 오셨을 때 느끼는 반가움은 이루 표현할 수 없습니다."그의 인맥은 의리로 엮여있다. "은퇴하신 의사가 돌아가신 때 꼭 문상합니다. 인연을 쌓았으니 배웅 인사는 드려야 하잖아요. 뜻하지 않게 고인의 제자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Heart touch.' 그는 또한 촉촉하다. "매년 지인들에게 연말카드를 300장 정도 보냅니다. 하루에 20장씩 보름에 걸쳐 작성하는데 이 때가 아주 즐겁습니다. 지난 한해동안 쌓았던 인연을 서너줄로 쓰면서 저도 행복해집니다. 카드를 받으신 분들이 제 카드는 꼭 뜯어본다고 하더군요. 하하." 그는 사장 취임 후 자신이 문안을 작성하고 국선 작가인 아내가 한지 위에 붓글씨로 일일이 쓴 인사장도 보냈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습니다." 도무지 좌절이란 없을 것같은 그지만 "단맛 쓴맛 다 봤다"고 말한다."사장 취임후 필름을 거꾸로 되돌려 봤다"는 그는 "술 때문에 응급실에도 두어번 실려갔었고, 밤에 의사집에 찾아갔다 셰퍼드에 쫓겨 계단에서 굴러 뇌진탕이 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자긍심에 상처를 받아 사표도 꽤 쓰려고 했었죠."그 마음, 어떻게 다스렸을까. "아내에게, 가족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79년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한시간 가량 산에 오르면서 스트레스를 정리하고, 그 날의 할일을 챙기고 새로운 꿈을 다졌습니다."2011년 2월6일까지 그는 병원영업 현장에서 누구보다 뜨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대표이사 사장. 회사를 더 넓게 바라보고, 더 깊게 고민해야하는 자리에 앉았다."선배님들이 쌓은 기반위에 또다른 가치를 창출하고 싶습니다. 가족적이며 온정적인 문화가 회사의 자랑이지만 내부적으로, 타업종과 경쟁하려는 투쟁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내부고객, 다시말해 직원들이 만족하는 회사가 되어야 하겠고, 보수적 흐름에 진취적인 물줄기도 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는 틈나는대로 병원 영업 담당자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직원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종류입니다.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스스로 목표를 세우는 사람,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 겁니다. 제가 했던 성공적인 방법도 공유하려하지만, 답습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죠."그는 모 제약회사 PM인 아들에게도 같은 말을 한다. "영업사원 위에 군림하려들지 말고 겸손하라고 합니다. 저 역시 우리 영업직원들을 야단쳐 현장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는 그들을 격려해야 밖에서도 힘을 쓸것 아닙니까. 그리고 일을 찾아서 하고, 할일은 당장하라고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다, 실천해야 힘이 된다고도 합니다."그는 요즘 리베이트 쌍벌제 등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가지 화두를 붙잡고 있다. 기업 브랜드 이미지 향상, 연구개발(R&D) 집중투자, 정도마케팅 안에서 고객만족 방안이 그것이다.-일동제약이 공장을 많이 지었다."작년 700억원을 들여 최첨단 세파계 항생제 공장과 세포독성항암제 공장을 신축했다. 항암제 공장은 국내 유일의 별동 및 전제형 생산 가능한 강점이 있다. 두 공장 모두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전략과 수탁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유럽과 일본 GMP를 추진중이며 이곳 제약회사 관계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연구개발도 본격화하고 있는데."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중앙연구소는 내성균, 종양, 알츠하이머, 비만, 노화 등 다양한 연구과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임상시험에 진입하게 된다."-창사 70주년의 일동제약은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이름이다."우호적인 기업이미지와 고객 신뢰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국민건강연구소라는 카피와 함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노력해온 지난 70년을 조망하고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기업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70년 기념행사를 단출하게 치러 아낀 비용 1억원도 청소년 복지증진 기금으로 내놓았다. 또 매칭 그랜트 제도를 통한 기부활동 강화, 자원봉사활동 강화, 송파재단 장학사업 규모 확대 등 사회 공헌 활동계획도 발표했다.2011-05-18 06:35:00조광연
오늘의 TOP 10
- 1갑상선안병증 치료 판 바뀐다…FcRn 억제제 급부상
- 2성인·소아 PNH 치료제 로슈 '피아스카이주' 허가
- 3약가제도 개편 의료계도 반대 목소리..."중소제약 존립 위협"
- 4성북구약, 동덕여대 약대생·관내 고등학생에 장학금 전달
- 5국제약품, 안산공장 안전보건경영 'ISO 45001' 인증
- 6경기도약 "돌봄통합업, 방문간호-방문약료 협업이 핵심"
- 7성남시약, 이수진 의원에 한방의약분업 건의
- 8이창운 전 금감원 국장, 세계 60개 도시로 본 지역경제 전략서 출간
- 9경기도약 감사단, 분회 지도감사 마무리...회무·회계 점검
- 10"간호·간병통합서비스, 국가 책임 인프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