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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의료 AI가 '빈칸'을 읽어야 하는 이유

  • 황병우 기자
  • 2026-02-04 12:04:03

[데일리팜=황병우 기자]의료 AI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더 많은 데이터, 더 촘촘한 기록, 더 정교한 숫자를 떠올린다. 빠짐없이 채워진 전자의무기록, 결측(Missingness) 없는 데이터셋이 곧 성능 향상의 지름길이라는 인식도 여전하다.

하지만 현장은 다르다. 의료 데이터에서 빈칸(Null)은 단순한 전산 누락이 아니다.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살핀 후 '현재 이 검사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내린 고도의 임상적 판단의 결과다.

환자가 안정적일 때 굳이 잦은 채혈이나 영상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의료 현장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즉, 기록되지 않은 침묵 그 자체가 환자가 안정적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데이터인 셈이다.

이는 데이터의 본질은 기록된 값만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맥락까지 포함한다는 의미다. 이를 데이터 과학에서는 정보적 결측(Informative Missingness)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의미 있는 빈칸을 기계적인 잣대로 채우려 할 때 발생한다. 데이터 분석 효율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빈칸을 인위적인 숫자로 보정하는 순간, AI는 현장의 맥락을 잃어버린다.

학습 환경과 실제 임상 현장의 분포가 어긋나는 도메인 시프트(Domain Shift) 현상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깔끔한 테이블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 선택이지만, 이 순간 의료 데이터가 가진 맥락은 훼손된다.

실제로 임상 현장의 처방 패턴을 무시하고 데이터를 강제로 보정했을 때, AI의 예측 정확도가 10% 가까이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 모델이 비어 있어야 할 곳에 억지로 주입된 숫자를 마주하며 일종의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를 살리기 위해 보내는 의료진의 미세한 신호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지점에서 의료 AI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좋은 의료 AI란 복잡한 알고리즘을 쓰는 모델이 아니라, 현장의 의사결정 구조를 얼마나 왜곡 없이 반영하느냐다. 숫자를 맞추는 기술보다, 의료 시스템의 흐름을 이해하는 감각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가 의료 AI의 조기 도입과 확산을 이야기하는 지금,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 만큼 '그 데이터를 어떤 철학으로 다루는가'도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빈칸을 채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비어 있음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의료 AI의 성능을 지키는 길이다.

의료진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남긴 침묵을, 우리가 데이터 정제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료 AI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를 채워 넣는 기술이 아니라, 그 빈칸 속에 담긴 의료진의 목소리를 듣는 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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