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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출발은 약국인데"…조제 매달리다 떠나버린 화장품

  • 정혜진
  • 2015-04-10 12:25:00
  • 화장품법, 약사법서 분리…의약분업 겪으며 약국 떠나

한 때는 의약품 뿐 아니라 생활필수품 대부분을 약국에서 판매했었다. 사람들은 지금도 약국 한켠을 차지하는 마스크 등 계절상품을 비롯해 치약, 기저귀, 생리대 등을 '약국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화장품, 특히 기능성 화장품도 그중 하나였다.

◆연금술에서 약학으로, 화장품 발달 기반돼

참존화장품 김광석 CEO(출처:참존 홈페이지)
송인갑의 저서 '향기의 역사, 향수'에 따르면 중세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들지 못한 대신 알코올을 발명한다. 알코올은 향수 발전의 밑거름이 됐는데, 그동안 원료로만 머물던 향료를 알코올과 섞어 '향수'로 상품화하는 데 기초가 된 것이다. 이때 개발된 몇몇 향수는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향료'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삼국시대에 여인들이 체취를 없애고 좋은 냄새를 풍기기 위해 사용하면서 점차 화장품으로 사용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실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마리아노벨라 약국이 지금도 판매하는 것은 의약품이 아니라 화장품이다. 약사가 없던 시절,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이 약초를 재배해 치료제와 연고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성당은 약국으로 자리잡았다. '산타마리아노벨라'라는 브랜드명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보습크림, 장미수 등은 지금도 백화점, 면세점 등에서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강원약대 허문영 교수는 "역사적으로 제조업의 출발은 약사였다. 특히 중세 이후 유럽에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역할은 대부분 약사들의 몫이었다"며 "연금술의 영향을 받은 약사들이 화장품 개발의 밑바탕이 됐다는 사실이 예술 작품에서 여러번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약학대 수업과목 중 하나였던 향장학

국제약품이 출시한 약국전문화장품
1990년대까지 화장품 판매 뿐 개발에 있어서도 약사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1993년 대학에 ' 향장학과'가 따로 개설되기 전까지, 화장품에 대한 이론 수업을 담당했던 곳은 약학대였다.

약학대에는 향장학이 있었으며, 약대생이라면 누구나 이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했다. 국내에 피부에 좋은 화장품, 일명 '영양 크림' 붐을 가져온 참존화장품 역시 김광석 약사가 만든 브랜드다. 참존은 1980년대 후발부터 1990년대까지 주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우리나라에 최초 화장품학과를 만든 숙명여대 원격대학원 향장미용전공 김주덕 교수는 "의약분업 이전에는 약국에서 연고를 직접 만들어 판매했다"며 "피부를 재생시키고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연고를 개발하며 이를 기능성 화장품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약사는 대학에서부터 기본적인 물질과 원료, 효능, 임상 등을 배운다. 연고에 제형과 원료 차이만 줘도 화장품이 되므로 약사들이 화장품에 쉽게 접근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같은 분위기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화장품법의 독립과 의약분업이었다. 2000년 7월, 약사법안에 있었던 화장품법이 분리·독립됐고, 이를 기점으로 미백, 주름개선,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는 제품은 허가를 받아 '기능성화장품'이라고 따로 표기할 수 있게 됐다. 기능성 화장품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김 교수는 "의약분업이 될 당시, 약사들은 동네약국이 몰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화장품에도 잠깐 관심을 보이는 듯 했다"며 "그러나 막상 의약분업이 시행돼도 동네약국이 예상만큼 어려워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의약분업 초반, '판매제품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급격히 사그라들었고 이전까지 약국에서 많이 판매된 기능성 화장품도 판매량이 급격히 떨어졌다. 약사들이 결과적으로 조제에 더 매달렸기 때문"이라며 "복수의 기업들이 약국 유통을 겨냥한 화장품을 내놓았지만 실패하면서 대중적인 기능성 화장품은 약국에서 멀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약국에서 화장품이 실패한 주요 원인을 김 교수는 ▲조제 매출 위주의 사고방식 ▲화장품 전문 판매인 부재 ▲약국의 보수적인 분위기 ▲약사 화장품 교육 실패 등을 꼽았다.

약사가 화장품 산업의 기반이 되기 좋은 환경과 여건이었지만 조제와 매약에 집중하는 사이 화장품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다.

◆의약분업·약국 환경 변화…틈새에 대기업 진출

산타마리아노벨로 화장품 생산라인(출처:산타마리아노벨로 홈페이지)
약국이 화장품을 외면하면서 이 틈새를 치고 들어온 것은 대기업이었다. 기업들이 화장품 산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 LG생활건강은 약국 전문 기능성화장품을 론칭해 유통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약국업체 관계자는 "약사의 전문적인 상담이 뒷받침되면 승산이 있다고 예측했으나 의약분업 이후 약국은 지나치게 의약품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며 "이후 비쉬 등 약국화장품을 내세운 외국제품들이 약국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으나, 최근에는 이 마저도 헬스&뷰티스토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들어 진정한 의미의 '드럭스토어'를 꿈꾸는 약사들이 의약품 뿐 아니라 화장품, 건기식 등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지만 이미 소비자에게 약국과 화장품의 거리는 너무 멀어졌다.

아울러 약사가 주축이 될 수 있는 기능성화장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것도 화장품 시장에 약사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주덕 교수는 기능성 화장품 표시기재가 외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엄격하며, 이것이 약사의 전문성이 접근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임상결과가 있어도 화장품은 효능을 표시하지 못한다. 외국보다 규제장벽이 높아 외국 제품이 수입될 때에도 효능을 표기하지 않도록 라벨링을 다시 한다"며 "기능성의 효과를 강조할 수 있어야 보다 전문성을 가진 약사와 약국이 화장품시장에 더 활발히 진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국은 고급 기능성 화장품을 약사가 상담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규제 완화에 따른 산업 발전, 화장품 수출 활성화가 약사와 약국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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