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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행정독재' 비판받는 차등수가 폐지

  • 최은택
  • 2015-10-05 06:14:50

변신술도 이쯤대면 제천대성과 견줄 법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의료질평가지원금' 신설안을 내놨다. 당시 복지부는 의사 선택비용(선택진료비)을 축소하는 대신 우수한 의료기관 선택비용을 건강보험 급여체계로 전환한다고 신설 취지를 설명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투입되는 비용만 1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건정심은 선택진료비 등 비급여 급여화에 따른 의료기관의 손실보상 필요성 등에 공감해 원안대로 수용했다.

그런데 두 달 뒤인 지난 2일 복지부는 '의료질평가지원금'을 다시 건정심 회의장에 올렸다. 이번엔 의원급 의료기관 진찰료 차등제를 폐지하는 대안이 됐다.

수가차감 형태의 의원급 진찰료 차등수가제는 폐지하고 의원급보다는 병원급 이상의 적정 진료시간 확보 유도를 위해 '의료질평가지원금' 지표에 차등수가제 구조를 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6월 복지부가 안건 상정한 차등수가제 폐지안을 부결시켰더니 3개월만에 반쪽짜리거나 아니면 엉뚱한 해법을 대안이라도 내놓은 것이다.

복지부 대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먼저 의료질평가지원금의 용도는 선택진료비 급여화에 따른 병원 손실보상용이었다.

이 지원금도 의사에게 주던 선택진료비 중 일부를 병원에게 보전해 준다는 취지의 이해안되는 수가항목이지만 그 부분은 차치해 두자.

지난 6월 건정심 회의에서 차등수가 폐지에 반대했던 위원들은 차등수가를 의원 뿐 아니라 병원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병원용 차등수가제를 고민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기왕에 신설하는 수가에 병원만 엮고 의원은 제외시키는 방안을 대안이라고 들고 나온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차등수가 폐지에 반대한 위원들이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건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설령 복지부 주장대로 의사 1인당 외래 진찰횟수 등을 의료질평가지원금 지표로 삼는 게 의미있는 일이라고 해도 차등수가 폐지논란이 병원 외래 진찰료 차등화가 초점이 아니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안치고는 너무 옹색하다.

차등수가 적용을 받은 요양기관 대부분이 의과 의원과 약국이고, 약국의 조제행위 자체가 균질화돼 있어서 상대적으로 차등수가에 민감도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치과의원, 한의원 등 의원급 의료기관 전체와 약국에 도입된 제도를 의과 의원만 제외시키는 것도 명분이 없어 보인다.

결국 '우는 아이나 성난 민원인 달래기' 식으로 복지부가 공급자단체 각자의 입맛에 맞게 선택하도록 선택지를 주고, 표결로 대사를 치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특히 가입자단체 위원들의 주장처럼 차등수가제에 대한 복지부의 태도는 이해되지 않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건정심은 설립취지는 물론이고 그동안 운영 과정에서 합의를 최우선으로 해왔다.

소수의 반대의견도 존중해 숙려기간을 두고, 적절한 대안을 찾으면서 이견을 좁히거나 해결해 왔다. 그런데 차등수가 폐지안은 3개월여 만에 두번의 표결이 강행됐다. 그것도 이번엔 무기명이 아니라 찬반여부를 위원들이 공개적으로 밝히도록 했다.

그러면서 복지부, 건보공단, 심사평가원 측 위원들은 일사분란 찬성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차등수가는 전체 요양기관에 적용되지 않는다. 의과의원 10곳 중 2~3곳, 약국 10곳 중 2곳 정도가 이른바 '손실'을 입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손실' 운운하는 이들 기관은 적어도 의약사 1명당 일평균 75건 이상 진료 또는 조제하는 요양기관이다. 시쳇말로 잘 나가는 의원과 약국인데, 차등수가 폐지는 곧바로 이들 기관의 '순이익(없던 것이 생겼다는 점에서)'으로 귀결되고, 같은 금액만큼 건보공단은 요양급여비를 이들 기관에 더 지급해야 한다.

막말로 이 제도를 그냥 놔두면 건보공단은 매년 800억원 가량 급여비를 절감할 수 있다. 폐지주장이 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반대입장을 표명하거나 발전적인 해소방안이라는 명분으로 무언가 다른 장치를 남겨두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가입자들의 돈을 관리하고 지급해야 할 돈이 새 나가지 않도록 심사를 담당하는 보험자 기관들이 복지부와 손발을 맞췄다니 납득 안되는 행동이긴 마찬가지다.

가입자단체 위원들은 이날 복지부가 건정심의 정신을 무시하고 '행정독재'를 일삼으려 한다고 발끈했다. 4명의 위원은 표결처리에 불만을 품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협의기구의 3주체 중 하나이면서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가입자)을 대표하는 가입자단체들을 이렇게 밖으로(퇴장) 내몰면서까지 복지부가 14년이나 이어온 차등수가제, 그것도 '의과 의원만을 위한 차등수가제 폐지'를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하필 의사 장관에, 의사 건보공단 이사장, 의사 심사평가원장이 재직중인 상황에서.

우리는 그 속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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