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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약사 협력, 지불제도 개혁 뒷받침돼야어느덧 가을이다. 올해는 방문약료에 대한 약사회의 홍보 노력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약사 직능 확대의 좋은 기회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약사사회가 직능 확대를 시도할 때마다 어김없이 겪게 되는 일이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9월부터 의사가 주도하는 약물사용 검토 사업이 서울시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사업에서 의사의 파트너는 건강보험공단 근무 약사이며 지역약국 약사는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이다.방문약료에 대해 줄곧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의사회가 이렇듯 태도를 바꾼 데는, 마냥 거부만 해서는 방문약료 사업 확대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책적 대항마(가급적 의사가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는)를 내세워 원안인 약사 주도 방문약료의 입지를 축소시키려는 시도가 아닌가 한다.의사와 약사가 역할을 나눠 서로 견제와 협력을 다하는 것이 의약분업의 본질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작동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약사에 대한 의사의 견제 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의사가 약사를 경쟁상대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지불제도 탓이 크다.공급된 의료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 방식을 지불제도라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사가 의료행위를 할 때마다 돈을 받는다. 행위를 할수록 돈을 버니 중복과잉진료의 가능성도 크다.영국은 인두제를 시행하는 대표적 국가인데, 정부가 해마다 의사와 계약을 맺어 환자를 할당해주고 환자 수에 비례해 통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의사는 자신이 맡은 환자들을 책임지고 돌봐야 하며 당국은 다양한 지표를 통해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평가하고, 의사가 관리를 잘 했다고 판단된 경우 더 많은 환자를 맡기거나 인센티브를 지급해 보상한다.인두제에서는 행위를 얼마나 많이 하는 지가 아닌 건강 관리 실적을 기반으로 보상이 주어지므로 의사는 아예 처음부터 환자가 생기지 않거나 환자의 기존 질환이 악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된다. 즉 만성질환 관리나 질병예방에 유리한 지불제도다. 행위를 많이 한다고 보상이 늘어나지 않으므로 불필요한 진료행위는 스스로 줄이게 된다.행위별 수가제에서는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더 많은 행위를 할수록 보상이 커지므로 환자를 놓고 직능간 경쟁이 첨예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집단이 약사집단을 과도하게 견제하는 데는 행위별 수가제라는 틀이 끼친 영향이 크다.반면 의사가 할당 받은 환자 수에 따라 통으로 보상받는 인두제에서는 이런 경향이 감소할 여지가 많다. 의사가 받는 보상은 정해져 있으므로 환자를 놓고 직접 경쟁하지 않게 될 뿐더러 약사가 환자에게 건강정보를 제공하거나 약물치료에 조언하는 행위가 환자의 건강을 증진시켜 의사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므로 오히려 약사와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이익이 될 소지도 크다.인두제는 우리 상황에서 국민에게도 득이 많은 제도다. 인구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경제의 활력은 떨어져가는데 의료비 지출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인두제는 불필요한 진료를 줄여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우수하다. 고령화 시대에 중요한 만성질환관리와 질병예방에도 매우 적합한 지불제도이다.최근 복지부는 일차의료기관이 만성질환관리를 시행하면 수가를 지급하는 방안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이것을 ‘주치의제도’로 소개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불제도라는 근본적인 틀을 그대로 둔다면 만성질환관리에 대한 수가만 신설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점점 과도해지는 종합병원의 환자 독식으로 극에 달한 일차의료기관의 불만을 달래려는 선심성 미봉책의 성격이 짙다. 지금처럼 일차의료기관과 종합병원이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게 된 배경에도 행위별수가제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인두제가 통합의료를 지향하는데 반해 행위별수가제는 의료의 분절화를 조장한다. 파편화된 의료환경에서 환자를 놓고 의료기관들이 경쟁하면 더 크고 유명한 종합병원이 작고 이름없는 동네의원보다 우위에 설 것은 자명하다.또한 아쉬운 것은 대한약사회의 자세다. 언제부턴가 큰 그림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진 느낌이다. 새로 꾸려진 집행부가 밀고 있는 ‘전문약은 공공재’라는 아젠다를 보자. 대한약사회가 최우선 화두로 삼기에는 무게감이 떨어진다. 원희목 집행부가 제시했던 '약의 전문가'나 '셀프메디케이션과 약사의 역할'과 비교해봐도 그렇다.현재 우리 여건이 어렵고 전체 의료환경에서 약사가 차지하는 역할이 의사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미래상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지불제도처럼 보건의료의 틀을 좌우하는 화두 또한 마찬가지다. 크게 멀리 보고 담대하게 실천해가는 대한약사회를 기대해본다.2019-10-14 19:15:35데일리팜 -
[데스크시선] 정쟁에 맞불 징계안으로 치달은 국감[데일리팜=김정주 기자] 국회 모든 상임위원회들이 정쟁을 일삼아도 보건복지위원회는 달랐었다. 민생과 가장 밀접한 위원회이기 때문에 자칫 국민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 때문이다.매번 새로운 복지위가 꾸려질 때마다 이를 공식화 하진 않더라도 기록에 남는 국정감사에서 공공연히 '전통'으로 언급해 온 사실로, 그 부분에 대해선 여야 간 이견이 없다. 논쟁이 생기더라도 보건의료와 복지 부문 중 민생과 밀접하거나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이슈에 대한 논쟁이 주류였던 것은 온전히 이 때문이다.조국 법무부장관 취임과 관련한 공세가 타 상임위에서 맹위를 떨칠 때부터 복지위도 조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야당의 맹공과 논리가 개발될 수록 여당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녀 논문과 학술포스터 문제 등 역공 논리가 나왔고 복지위 안에서 거론될 수 있는 수준 치고는 꽤 컸다. 결국 여야 합의로 모든 정쟁 관련 질의는 배제하기로 한 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직전의 일이다.그러나 이번엔 말 뿐이었다. 초반 잠잠하게 이어지던 복지부 국감에서 "대통령 치매" "대통령 기억력"이란 발언이 언급되면서 둑이 터졌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일단 현장에선 복지부를 둘러싼 주요 이슈와 쟁점을 뒤덮기 충분한 다툼으로 보였다. 삿대질과 고성이 오갔고 성명 발표와 반박, 재반박이 계속돼 몇 시간동안 금 같은 시간이 날아갔고 국감 말미 늦은 시간 본격적으로 정쟁과 관련한 질의가 여야 의원들의 입에서 쏟아졌다. 결국 "특검 가자"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까지 튀어나왔다.이달 초 복지위 '스타트'를 끊은 복지부 국감은 그렇게 오점이 생겼다. 그 뒤로 여당은 치매 발언의 정점에 있었던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후속조치로 징계안을 제출했고, 김 의원 측에서도 맹렬하게 반발했던 기동민·김상희 민주당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해 맞불을 놨다. 통상 정쟁으로 징계안과 제소안이 부딪힌다고 하더라도 '보여주기'식 혹은 '겁주기'식으로 곧바로 매듭지어졌던 경우에 비춰 본다면 전체 상임위 갈등에 속도를 맞추는 모양새다.민주당 기동민 의원(왼쪽)과 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지난 4일 복지부 국감 당시 문재인 대통령 기억력 발언을 놓고 언성을 높인 바 있다. 14일은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 국감이 진행된다. 건강보험과 보험급여, 보건의료와 급여보장이 주요한 업무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들 기관의 국감은 복지부 보건 부문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야 갈등과 정쟁이 여기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은 현재 복지위 안에서 여야 정쟁으로 촉발된 이슈와도 연계된 기관들이기 때문이다.그것이 보여주기식으로 의도된 갈등인지, 내년 총선을 앞둔 특정 당 혹은 국회의원 개인의 일탈인지 국민은 그 속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계속되는 정쟁과 갈등, 이로 인해 희석되는 주요 보건의료 이슈의 무게감으로 볼 때 최종 목표가 성공하리란 관망은 접어야 한다. 외부의 눈은 그렇게 흐리멍덩하지 않다.2019-10-14 06:15:41김정주 -
[기자의 눈]K-바이오, 투자자 신뢰회복이 우선[데일리팜=안경진 기자] "주식투자 대상의 기업탐방이나 기업설명회(IR) 행사 참석은 자제하는 편입니다."얼마 전 한 인기 경제 팟캐스트에 출연한 공인회계사가 밝힌 소신이다. '재무제표 모르면 절대 주식투자하지 마라'라는 책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 회계사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통해 기업가치를 평가하고, 종목을 고르는 투자 철학을 고수한다. 간혹 주가흐름이 예상을 벗어나 궁금증을 풀기 위해 IR 행사에 가보기도 하지만, 기업탐방이나 IR 행사에서는 대부분 좋은 얘기만 나오니 오히려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기업탐방 다녀오면 투자하고 싶지 않은 회사가 없더라"는 동료 회계사의 말도 농담삼아 전했다.한 회계사의 개인적인 투자원칙이 정답은 아니다. 더욱이 매출 자체가 발생하지 않거나 개발 중인 1~2개 파이프라인만을 보유하는 바이오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하는 경우에는 다소 동떨어진 발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주식시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제약바이오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곰곰이 곱씹어볼만한 얘기인 듯 하다.지난 몇주간 코스닥에 상장한 일부 바이오기업의 주가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개발 중인 신약후보물질의 3상임상 실패로 주가에 큰 타격을 입었던 한 회사는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신청을 시도한다고 발표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임상 중단 선언 이후 시총이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가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지분을 늘렸다는 소식에 주가가 회복세로 돌아선 사례도 있다.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바이오기업의 기술력에 대한 정확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소위 '카더라' 통신에 휩쓸려 무분별하게 투자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단일 파이프라인이나 불투명한 재무운용 구조 등을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한계로 진단하는 언론보도도 쏟아져 나왔다.투자자들에게는 언론보도나 주식 카페, 지인 등을 통해 얻는 정보 대신, 회사의 재무상태나 기술력을 토대로 투자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현명한 태도가 요구된다. 문제는 주식시장에서의 정보가 비대칭적이라는 데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고 지표를 분석하는 기관투자자나 기업 내부 관계자들과 개인 투자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기업의 IR은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바이오기업 CEO들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실패한 임상을 성공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임상 실패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교묘한 용어를 사용하는 모습에서는 투자자들을 혼란시키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상습적으로 공시 규정을 어기는가 하면 임상 지연, 실패 등 주가에 민감한 경영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도 빈번하게 제기되는 실정이다.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비롯된 IR을 주가부양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지난 몇년간 수많은 국내 투자자들은 신약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배우는 과정에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기업이 제시한 목표대로 신약이 허가를 받고 시장에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혹여 임상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발매 성적이 좋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신약개발 본연의 신성한 가치를 훼손한 채, 투자자들을 기만하려는 태도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력과 더불어 그에 걸맞는 IR 원칙을 정립해 나가길 기대해본다.2019-10-11 06:10:59안경진 -
[기자의눈] '발암 위장약' 프레임이 안타깝다[데일리팜=이혜경 기자] 완제의약품 원료에 발암물질이 검출되면서 '라니티딘' 성분 위장약이 연일 이슈다. 과거 페놀 사태, 멜라민 분유 사태에 이어 지난해에는 고혈압약 원료가 되는 발사르탄 성분에서 발암을 유발하는 NDMA가 검출되면서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이번 라니티딘 사태는 발사르탄 사태와 유사하다. 지난 9월 13일 미국 식품의약국이 속쓰린데 먹는 위장약으로 유명한 '잔탁'을 비롯한 라니티딘 성분 제품에서 미량의 NDMA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국내 라니티딘 성분 원료의약품 수거해 검사했다. NDMA가 잠정관리기준(0.16ppm)을 초과한 라니티딘 사용 완제의약품 268품목은 잠정적으로 제조·수입·판매 및 처방 중지 조치가 내려졌다.이 발표에서 지켜볼 점은 강제회수가 아니었고, 이미 처방전이 발행됐거나 조제의약품을 가지고 있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재처방', '재조제'를 하겠다는 점이었다. 먹고 있던 약을 중단하지 말라는 경고도 없었다. 라니티닌 성분 의약품은 매일 복용해야 하는 고혈압약과 달리 소화 불량이나 속쓰림, 그리고 단순 감기나 해열제를 처방하면서 소화불량 부작용을 막기 위해 처방하는 의약품으로 알려져 있다.처음엔 발사르탄 파동 당시 고혈압약 복용 환자 14만명 보다 10배 많은 144만명의 의약품 교환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약을 처방하는 병의원이나 조제하는 약국에서 일반 환자 진료를 보지 못할 정도로 업무 마비가 올 것이라 예상했다. 의문을 갖고 여러 전문가, 보건당국 행정 전문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여러 답변은 똑같았다.이번에 식약처가 검출한 라니티딘 NDMA 기준은 0.16ppm이다. 라니티딘 성분이 들어간 위장약 600mg을 매일 70년간 섭취해야 발암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잔탁 70mg을 하루에 9알씩 70년을 먹어야 한다는 얘긴데,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고혈압약은 매일 복용해야 했고, 발사르탄 NDMA 검출기준은 라니티딘보다 높은 0.3ppm이었던 만큼 꾸준히 오래 복용하면 발암 노출에 더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라니티딘에 '발암 위장약' 프레임을 씌워 국민에게 혼란을 제기하는 부분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식약처는 발사르탄 사태를 교훈 삼아 라니티딘 성분에서 발암 물질이 검토됐다는 FDA 보고에 따라 발빠르게 대처했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혈압약과 다른 특성의 위장약의 제조·수입·판매 및 처방 중지 조치를 해놓고 발생한 국민들의 혼란과 의구심을 해결하는 몫은 현장의 의·약사에게 던져놨다.식약처의 역할은 위해의약품 차단 뿐 아니라, 정확한 위해 사실을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제2의 발사르탄 사태가 불과 1년만에 발생했고, 또 다시 어디에서 불순물이 검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식약처는 위해의약품을 찾아내는데 급급하기 보다 제3, 4의 발사르탄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의약품 안전관리 강화와 의약품 안전성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된 국민들을 위한 다양한 홍보전략을 마련해야 한다.2019-10-07 11:17:51이혜경 -
[데스크 시선] 식약처의 승부수, 해피엔딩으로 끝날까[데일리팜=천승현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매우 파격적인 의약품 안전관리 정책을 단행했다.지난달 26일 ‘라니티딘’ 성분 원료의약품에서 발암가능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초과 검출됐다는 이유로 전 제품 판매중지 조치를 내렸다. 불순물 검출을 이유로 특정 성분 의약품의 사실상 퇴출을 결정한 것은 초유의 사건으로 평가된다.의외의 과감한 결정이다. 해외에서 라니티딘제제의 회수를 시작한 일부 국가가 있지만 아직시장 퇴출에 버금가는 강력한 조치는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일부 기업의 자진 회수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조치는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라니티딘 약물 자체가 갖는 불안정성이 크다는 게 식약처 판단의 가장 큰 배경이다. "문제가 없는 원료의약품도 시간이 지날수록 NDMA 생성 가능성이 있다"며 라니티딘의 안정성에 낙제점을 줬다. 식약처는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라니티딘 중 NDMA 발생원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보다 정확한 원인을 분석할 계획이라는 추가 단서를 달았다.제약업계에서는 식약처의 결정에 의문부호를 제기하는 시선이 많다. 라니티딘제제의 퇴출 결정을 납득할만한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아직 라니티딘 완제의약품의 유해성 여부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원료의약품 조사만으로 전 제품 판매중지를 결정한 것은 너무 성급한 조치가 아니냐는 불만이 가득하다.제약업계의 불신은 지난해 불거진 발사르탄 의약품의 후속조치에서 비롯됐다. 업계에서는 발사르탄제제의 판매중지 과정에서도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강경한 조치를 내렸다는 비난이 많았다.불순물 발사르탄의 경우 식약처는 2015년 1월부터 문제의 원료를 한번이라도 사용한 완제의약품을 대상으로 판매를 중단했다. 미국에서는 제조단위별로 구분해 제지앙화하이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서만 회수가 진행됐다. 제약사들은 상당수 제품은 문제의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판매가 중지되면서 막대한 금전적인 손실을 입었다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근에는 정부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고지서도 날아왔다.더욱이 발사르탄 완제의약품의 유해성이 끝내 밝혀지지도 않았다. 식약처는 지난해 12월 "NDMA가 검출된 화하이 발사르탄 사용 완제의약품을 실제로 복용한 환자의 개인별 복용량과 복용기간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추가로 암이 발생할 가능성은 무시할 만한 정도의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라고 결론내렸다.발사르탄과 마찬가지로 라니티딘 완제의약품에서도 최종적으로 유해성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 제약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의미다.식약처의 라니티딘 조치는 과학적인 판단 뿐만 아니라 국내 의약품 시장 환경도 고려된 것으로 파악된다.식약처는 판매중지 결정 브리핑에서 “국내에 제네릭이 많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제네릭을 포함해 200개가 넘는 제품을 모두 수거 검사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조치내렸다는 의미다. 또 발사르탄과 마찬가지로 선별적으로 판매중지와 회수를 결정할 경우 소비자들로부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라니티딘이 시장에 퇴출되더라도 대체 약물이 많다는 점도 식약처의 과감한 결정의 배경으로 지목된다.정부 입장에서 의약품 안전관리 정책은 참 어려운 영역이다. 모든 약물은 근본적으로 부작용과 같은 유해성을 지니고 있지만 환자에게 제공하는 실익이 월등하게 크다고 판단되면 판매를 유지시킬 수도 있다.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판단이 이뤄져야 하지만 국민 건강 뿐만 아니라 불안감도 고려해야할 요인이다.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의약품 안전관리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의약품의 NDMA 검출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발생한 새로운 고민이다. 과거에는 NDMA라는 유해물질을 짐작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유해물질이 원료의약품에 혼입된 것을 확인했으니 판매중지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게 식약처 판단이다.다만 정부는 정책의 명분에 대해 과학적 근거로 납득시켜야 한다.미국 식품의약품국(FDA)은 라니티딘의 NDMA 검출량이 극미량이어서 회수나 판매중지 조치를 내리지 않은 상태다. FDA는 최근 일부 샘플에서 NDMA가 과다 검출됐다며 확대 조사를 시사했지만 아직까지는 식약처보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안전관리 정책이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식약처와 FDA의 NDMA 점검 결과가 왜 상이하게 나왔는지는 우리 정부가 증명해야 할 숙제다.업계 일각에서는 식약처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안전관리 늑장대응을 비판하는 지적에 대비해 과잉대처를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실제로 식약처는 라니티딘제제의 조치에 대해 전 세계 규제기관 중 가장 선제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단행했지만 과거 라니티딘의 NDMA 검출 가능성이 제시된 적이 있다는 이유로 늑장대응이 아니냐는 억울한 비판도 제기되는 실정이다.식약처는 “아마 우리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만큼 NDMA 시험을 많이 한 규제기관이 아마 세계적으로 없을 것이다”라며 과학적 판단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한민국 식품의약품 안전관리 컨트롤타워가 앞으로 과학적 결정에 대한 근거를 어떻게 제시할지 관심갖고 지켜볼 일이다. 만약 이번 조치가 추후 과학적 근거가 부실하다거나 중대한 허점이 노출된 것으로 판명될 경우 그 책임은 식약처가 스스로 져야한다.2019-10-07 06:10:55천승현 -
[기자의 눈] 녹십자그룹의 '자금 조달' 승부수[데일리팜=이석준 기자] 녹십자그룹이 승부수를 던졌다. 방식은 외부 자금 조달과 상장사 늘리기다. 사업 지속성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다.녹십자그룹은 최근 외부 자금 조달이 잦다. 1년새 상장사 4곳과 비상장 해외법인 1곳에서 3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수혈했다.올 9월 녹십자엠에스(단기차입금 300억원, 유상증자 528억원), 7월 녹십자랩셀(단기차입금 150억원), 5월 녹십자(일반사채 1200억원), 지난해 12월 녹십자셀(단기차입금 70억원)과 Green Cross Bio Therapeutics Inc.(유상증자 750억원) 등이다.지주사 녹십자홀딩스도 사상 첫 공모채(1000억원 규모) 발행을 검토 중이다. 녹십자웰빙은 조만간 10월 상장을 통해 공모 자금 500억원 이상을 끌어모을 계획이다.녹십자그룹의 또 다른 승부수는 상장사 늘리기다.상장사 늘리기도 결국 외부 자금 수혈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볼 수 있다. '기업공개=자금조달'은 하나의 공식으로 봐도 무방하다.녹십자그룹은 2014년 이후 2년마다 자회사 상장에 나서고 있다. 2014년 녹십자엠에스(진단시약 사업), 2016년 녹십자랩셀(제대혈과 세포치료제 사업), 2018년 녹십자웰빙(건강기능식품)이다.녹십자웰빙 상장이 마무리되면 녹십자그룹 상장사는 6개로 늘어난다. 1978년 녹십자홀딩스(지주사), 1989년 녹십자(제약사), 1989년 녹십자셀(옛 이노셀) 등과 함께다.향후 녹십자헬스케어(의료서비스 사업), 녹십자지놈(유전자분석 사업) 등도 차기 상장후보로 꼽힌다.시장이 바라볼때 녹십자그룹의 전방위적인 외부 자금 확보는 양날의 검이다.운영자금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현 사업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후자의 경우 주가 등에 부정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 그룹 대표 사업회사 녹십자 주가는 10월 2일 종가 기준 11만2500원이다. 1년전 10월 2일(16만3500원)과 비교하면 31.19% 빠진 수치다.녹십자그룹의 선택은 전자다. 시장의 반응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사업 지속성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동시다발적 외부 자금 조달을 택했다. 일종의 승부수다.2019-10-04 06:11:48이석준 -
[칼럼]의약품 수급 불안, 우려를 표한다간암치료용 조영제, 안압저하제, 한센병 치료제, 경장영양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대답은 최근에 공급 중단 사태를 겪은 의약품이라는 것이다. 제약사들은 원료 수급, 생산 차질, 허가기준 차이, 약가 인상 등의 다양한 문제로 해당 의약품의 공급을 중단하거나 중단하기 직전까지 이르렀고, 그 때마다 환자들은 심각한 불안과 공포를 느껴야 했다. 눈부신 기술 및 생산시설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의약품 공급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그 때문에 ‘의약품 접근성 강화’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주요한 모토로 자리잡고 있다.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2012년도 약가제도 개편 당시 도입한 '3개사 이하 가산제도'이다. 기본적으로 제네릭 의약품이 출시되면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가 일정한 비율로 인하되고, 제네릭 의약품의 개수가 일정 수 이상으로 많아지면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가 한번 더 인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개사 이하 가산제도는 특정 의약품의 공급 회사가 3개 이하인 경우에는 해당 의약품의 약가에 지속적으로 가산을 적용함으로써 공급 회사가 비교적 높은 약가로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특정 의약품을 3개 이하의 회사만이 공급한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해당 의약품의 시장성이 떨어지거나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3개사 이하 가산제도는 이처럼 제약회사 입장에서 매력적이지 않은 품목에 일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해당 의약품 공급을 유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그런데 우리 정부가 올해 7월 행정예고한 약가제도 관련 고시 개정안을 보면, 3개사 이하 가산제도가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미 등재된 의약품들에 있어서는 2년 내로 모든 가산이 중단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실제 일부 회사는 채산성 악화를 이유로 해당 의약품의 철수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일부 기사에 따르면 행정예고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약 800억원 정도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정부는 3개사 이하 가산제도를 축소하여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행정예고안을 통하여 기대되는 재정 절감액은 2018년도 기준 건강보험 전체 지출 규모의 약 0.13%에 불과한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기존에 의약품 수급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아울러 업계와의 충분한 논의 없이 행정예고안을 내년부터 당장 모든 의약품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경우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게 되지 않을지 심히 걱정된다.특히, 행정예고안에 따른 가산제도 축소 및 중단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관련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환자들의 의약품 선택권까지도 해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정부 및 보건당국은 현재 개정안으로 인하여 초래될 수 있는 의약품의 공급 차질 가능성, 이로 인한 국민들의 불이익, 철수 품목에 대한 대안 등에 대하여 개정안 시행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은 의약품들에 대해서는 그 적용에 예외를 두는 등 별도의 대안도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2019-10-02 14:09:17데일리팜 -
[기자의 눈] 위장점포를 보는 약사-보건소의 다른 시선[데일리팜=정흥준 기자]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한 편법약국 개설 논란을 쫓다보면, 약사들과 보건소의 좁히기 힘든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최근 병의원들이 건물 1층에 의원과 카페 등의 다중이용시설을 입점시키면서, 약국을 임대하는 시도는 늘어나는 추세다.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점점 더 기승을 부리는 것만은 틀림없다. 일부 지역에서는 4평 규모의 의원을 등록한 뒤 약국 개설을 시도했다가, 결국 의사를 구하지 못 하며 약국이 문을 닫게 되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다.이같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나오는 지적이 '위장점포' 문제다. 약사들은 보건소가 약국 개설을 위한 위장점포인지를 조사·검토해 허가의 판단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가령 병원 건물 외부에는 간판도 없는 카페가 높은 임대료를 내고, 하루 열명의 손님만을 받으며 병원 건물 1층에서 운영을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유사 편법약국 개설 사례를 겪은 서울 모 약사는 "만약 하루에 손님이 10명 아래로 찾아오는 상가가 서울 한복판에서 높은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그건 정상정인 운영이라고 봐야하느냐"고 되물었다.따라서 보건소는 위장점포로 의심되는 상가들이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조건인지까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지난 2010년 국민권익위는 약 1평 규모의 네일아트가게를 위장점포로 해석해, 지역 보건소에 약국 개설처분에 대한 시정권고를 내린 적이 있었다.당시 권익위는 네일아트가게의 면적, 하루 이용 방문객, 약국과 의원의 독점적 처방관계 등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약사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렸다.지역 약사들은 보건소들도 권익위처럼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의약분업의 취지에 어긋나는 자리의 개설 시도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하지만 대부분의 보건소는 다중이용시설의 운영 현황을 근거로만 약국 개설을 허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약사들은 편법 개설에 동의하는 행정편의적 허가 방식이라고 비판하고, 보건소는 약사법상 위반사항이 없고 위장점포를 입증할 증거도 없다고 맞선다.결국 유사 사례들은 논란 끝에 개설 허가가 이뤄지고 있고, 이는 일부 과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네약국으로 확산되고 있다.약사들은 편법 원내약국 차단을 위해 국회 발의된 약사법 개정안과 복지부의 약국개설등록업무협의체에 희망을 걸고 있다.복잡한 이해관계로 법안 통과는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누구보다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는 복지부가 먼저 협의체를 통해 합리적인 가이드를 제시하길 기대해본다.2019-10-01 18:37:31정흥준 -
[기자의 눈] 라니티딘 사태, 책임공방 벌일 시간 없다[데일리팜=이탁순 기자] 항궤양제 '라니티딘' 성분 제제에서 발암우려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돼 판매가 금지되면서 벌써부터 책임공방이 뜨겁다.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이어서 정부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늦장대처 지적도 나오는 형국이다.하지만 이번 사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며 시간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과 향후 이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일단 작년 발사르탄 사태도 그렇지만, 검증기술의 발달로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리란 보장이 없다. 우리 나름대로 완벽한 준비를 한다해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미국FDA나 유럽EMA보다 정보습득이 늦었다고 식약처를 크게 나무랄 필요도 없다. 어차피 두 기관의 인력규모나 검증시스템, 경험과 노하우에서 식약처에 비할 바가 아니다.중요한 건 미국FDA와 유럽EMA가 독점하고 있는 의약품 위해정보를 재빨리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이번 사건에도 드러났듯 FDA가 라니티딘에서 소량의 NDMA가 검출됐다고 발표했지만, 해당 품목의 원료 생산지, 시험·검사법, 추정되는 원인 등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 우린 부랴부랴 원료 전수조사를 거쳐야 했다.물론 해외정보를 검증하기 위해선 국내 유통품목 조사가 불가피했지만, FDA가 확보한 구체적인 정보를 사전에 알았다면 어느정도 결과에 대비할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면 제약사들이 스스로 공급을 중단하면서 유통과 요양기관의 혼란도 최소화됐을 것이다.해외기관 간의 협력 시스템 마련은 정부가 그 중요성을 깨닫고 핵심의제화해서 상대방 국가와 논의해야 한다. FDA, EMA와 협력이 어렵다면 주변 국가간 실시간 정보교류를 통해 예측가능한 위기관리 시스템 마련에 나서야 한다.두번째는 사태 수습으로 발생한 비용 분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식약처도 업계 설명회에서 이야기했듯 이번 사태는 누구 잘못으로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교환·환불 및 회수에 따른 비용은 대부분 민간이 책임지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발사르탄 사태 때 손실된 건강보험 비용을 제약사에 구상권을 청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역시 제약사 책임이 아니라고 하면서 손실을 민간에 떠넘긴다면 앞으로 누가 정부정책에 신뢰를 갖겠는가.앞에도 언급했지만, 이런 사태가 또 안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처리비용에 대해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의약품 회수나 교체 과정에서 불만이 일어나지 않고 신속 수습이 가능하다.마지막으로 일반 국민들도 의약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성분명 처방이나 국제일반명(INN) 등 보다 소비자 친화적인 정책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유관단체들과 협의가 필수적이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합의 전 검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모쪼록 이번 일을 교훈삼아 전 국민이 불만없는 의약품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길 바란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라니티딘 제제 판매금지 이후 곧바로 보건당국과 직능단체 간 양방향 소통과 위기상황 대응매뉴얼 확립 의견을 복지부와 식약처에 전달한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2019-09-30 16:53:48이탁순 -
[데스크시선] 통계의 미학 역행한 라니티딘 사태질병퇴치 최후의 보루인 신약 개발은 통계에서 시작해 통계로 끝난다. 바꾸어 말하면 임상 프로토톨에 설계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면 신약으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A제약사가 폐암 신약 개발에 있어 1000명의 임상참여자 중 중대한 부작용 발현치를 5% 안에서 설계 후 이를 달성했다면 임상 성공으로 평가한다.대체약물을 배제하고, 해당 약물을 복용함에 따른 유의성이 부작용 위험도를 월등히 상회할 경우 치료제로 공식 인정받을 수 있다. 이는 개발사와 허가당국과의 법적 구속력을 가진 약속이자 시스템이다.9월 중순경 GSK 항궤양제 잔탁에서 잠정적 발암물질로 간주되는 NDMA 성분이 검출됨에 따라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물론 제약바이오산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미국 FDA의 간이실험에서 시작됐지만 정작 폭탄은 한국과 스위스를 비롯한 극히 제한적 일부 국가에서 터졌다. FDA는 "잔탁을 비롯한 라니티딘 성분 제품에서 미량의 NDMA가 검출됐다"고 발표한 후 지금까지도 신중한 입장으로 확실한 결과 도출에 방점을 찍고 있다.여기서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위기적 사안을 바라보고 대응하는 마인드와 행동요령이다. 이번 사태에서 FDA는 경거망동·부화뇌동 격인 즉각조치는 유보하고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위해성 유무를 평가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환자에게 라니티딘 복용을 중단하도록 요구하지도 않았다.다만 사용 중단을 원하는 환자라면 의사와 상의해 다른 약으로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 복용의 이점이 건강에 미치는 위험보다 중요하다는 판단과 앞서 살폈던 개발사의 임상 프로토콜 설계 절차와 결과를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FDA 의지의 반증이다.반면 우리의 대응은 어땠을까.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야단법석 그 자체였다. FDA 발표 후 보름여 만에 라니티딘 성분의 위장약 133개사 269품목에 대해 사실상 시장퇴출을 감행했다. 이에 따라 이들 치료제는 지난 26일 0시를 기해 잠정 제조·수입·판매 중지됐다.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국민보건 안전과 신뢰회복' 이라는 절대불가침 영역에서의 선제적 대응이라는 헌법의 영역과 잣대를 들이댄다면 모든 것이 정당할까. 이번 식약처의 조치로 40여년 간,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로 환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잔탁을 비롯한 티딘계 약물은 졸지에 똥물을 뒤집어썼다.수십년 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 온 금자탑이 무너진 것은 말한 것도 없고, '티딘계 약물=먹으면 큰일 나는 약'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과 주홍글씨를 남겼다. 당장 판매가 중지됨에 따라 연간 24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 손실도 고스란히 제약사들의 몫으로 전가되고 말았다. 티틴계 약물이 그동안 이룩한 외형적 가치는 단순히 '돈'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제약사 각 부문에서 일하는 연구자들과 영업사원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결과물이다. 이 같은 기업의 실적 손실은 인력감축과 연구개발 투자에 직접 영향을 미칠 악재로 작용될 문제도 안고 있다.풍림화산(風林火山)의 자세를 확립하지 못한 식약처의 각 부처 대응방식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국민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정부기관의 수장은 모름지기 바람처럼 빠른 결단력과 숲처럼 고요한 집중력, 불처럼 맹렬한 돌파력, 산처럼 무거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이여야 한다. 병법에 이르기를 전장의 장수는 현장 상황에 따라 수도에 있는 왕명도 거스를 수 있다고 못박고 있다. 대표적 선례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해전이다.식약처는 식품과 의약품에 관한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부처다. 이번 라니티딘 사태에 있어 식약처는 국민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위임받은 사령관이나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한 모든 통제권은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아니다.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소신껏 밀어붙였어야 했다. 국회의원이 부른다고 쪼르륵 달려가서 이러쿵저러쿵 보고할 때가 아니다. 과감하게 서면보고로 마무리 지을 담대한 업무 추진력이 필요했다. 국회 보고할 시간에 NDMA 부작용 연구결과 수집과 전문가회의, 직능단체 커뮤니케이션 등의 체킹을 한번이라도 더해야 함이 옳다.국회 역시 초동대응 미흡, 안전불감증, 재난의 반복이라는 해묵은 꺼리로 이번 사태를 바라봐선 안된다. 일부 국회의원의 전문지식이 배제된 라니티딘 사태에 대한 왈가왈부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직까지 NDMA의 정확한 생성 원인과 인체 위해성은 밝혀진 바 없고, 기준치와 가이드라인의 과학적 미확립 그리고 '잠정' 발암유발 물질로 간주돼 있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부작용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단계지만 티틴계 약물 복용자의 이렇다할 중대한 사이드이팩트 발생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곧 FDA의 입장처럼 아직까지 라니티딘은 여전히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시된다.아직까지 기사회생의 여지는 있다. 바로 조만간 발표될 FDA의 라니티딘제제에 대한 최종 결론이 긍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몇 미국계 임상기관에 따르면 현재 FDA는 라니티딘 사태에 대한 확인 작업과 결과 도출에 있어 NDMA 성분 자체에 대한 위해성과 함께 약물에 포함된 극미량이 암 유발과 사망 등 중대한 부작용례 유무 그리고 40년 간 축적된 안전성 데이터 등을 비교형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가닥 희망이지만 FDA의 라니티딘 판매지속이라는 역전결과 시, 이를 집행한 식약처와 이를 추궁한 국회도 '역할론적 관점에서의 잠정 제조·판매 중지'라는 국민적 지탄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2019-09-27 12:30:00노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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