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니 인천공항 입국장에 아내가 서 있는데...
- 데일리팜
- 2017-07-24 12: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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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혁 약사의 열흘간 몽블랑 트래킹과 단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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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6미터에 위치한 보나티산장의 아침공기는 다른 산장과 마찬가지로 최상급의 피톤치드를 실어와 가슴을 적시니 상쾌하다.
몸도 완쾌 되었고 설산이 하얀 모자를 벗어 정중히 인사를 하며 산메아리친다. 본죠르노! 나 역시 본죠르노!다.
오늘은 산장에 짐이 오질 않는다. 생필품만 배낭에 챙겨 산길을 나선다. 페레계곡의 마음이 확 터지는 경치를 내려보다가 우리가 프랑스서 이태리국경으로 넘어온 꼴 드 라 센느 고개쪽을 바라본다. 다시 '인크레더블!'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저기 저 까마득히 머나먼 곳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니. 미치지 않고선...
엘레나 산장앞 암봉들이 병풍을 둘러치며 길을 막아서고 프레 드 바 빙하가 엿가락을 늘인듯 떡하니 몽블랑의 어깨에 기대고 있다.
각도를 크게 이룬 언덕배기를 갈짓자로 오르니 이태리와 스위스 국경을 나누는 그랑 꼴 페레 고개가 안개속에 가는 방향을 감춘다. 설산에는 산안개가 빨아놓았는지 하얀 치마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스위스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꽃바구니를 들고 반기며 뛰어나올것만 같다. 몽블랑이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에 고루 걸쳐 있음을 실감한다. 세 나라가 나름 특성있는 아름다운 산세를 각기 뽐낸다. 길게 뻗은 초원의 산길을 자욱한 안개의 배웅을 받으며 내려오니 조용한 페레마을이다. 빨간색 바탕에 하얀 십자가 스위스 국기가 일행을 환영하듯 산바람에 나부낀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조그만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와 포도주도 마시고 커피와 다과도 나눈다.
페레서 상페까지 버스를 타니 상페호수가 명경처럼 고요하다. 숲길을 따라 사십 분 정도를 오르니 숲속의 아르페트 산장이 버선발로 달려와 문을 열어준다. 오늘도 산길 19키로미터로 8시간을 걸은 산나그네의 수고스러움이 안쓰러운듯 부둥켜 안으며...

어제 저녁 식사후 일행의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간 얼굴하나 안 찌그리고 잘 걷던 병원장의 따님이 발목통증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많이 아픈가 보다.
예쁜 얼굴에 전혀 아픈 티를 안 내더니 그제 내가 전해준 스테로이드제에 덕을 보았다고 고맙다고 하더니만 연일 걸으니 도진 것 같다. 실은 나도 오늘 오를 알프스산이 상당히 가파른 구간이 두 곳이나 있다는 사전 정보에 슬슬 꾀가 나던 터이다.
어쨌든 살아서 집에 가고싶다. 아름다운 스위스에 들어왔으니 스위스를 좀더 여유롭게 즐기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팀에게 모든걸 일임한다.
첫날, 트래킹 중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며 반 농담을 던지며 한 사람이라도 못가면 안 가기로 도원결의한 팀의 결정사항이 통보된다.
산을 타고 내려가 버스를 탄 다음 기차를 타고 마티니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시내를 구경하다가 네시 반에 택시를 타고 트리앙으로 가는 발칙한, 아니 깜찍한 발상을 했다.
오늘 하루가 널널하리라는 생각에 모두가 반긴다. 쥴리안은 우리의 결정이 다소 황당해도 부상병동이 있는 한 쾌히 승낙을 한다. 그리고 열심히 버스 시간표 기차 시간표와 택시예약 사항을 점검하고 쪽지에 적어 건네준다.
아르페트 산장의 아침은 지난 밤 비가 내렸는지 촉촉하며 싱그럽다. 운무는 산장을 솜사탕처럼 품는다. 유명한 캠핑지란다. 알프스산은 짙게 드리운 구름으로 얼굴을 감춘다. 잘 되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조식 후 버스타는 데까지 쥴리안과 산을 내려와 9유로를 주고 버스표를 사니 덤으로 알피니즘 식물원 관람이 공짜다. 내려다 보이는 상페호수가 평화롭기 그지없다. 내 다리도 평화롭다고 주인장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 같다. 당연할 것이다. 그간 얼마나 혹사시켰는가. 12시 45분쯤 버스가 종점을 돌아오기에 올라탄다. 불어로 애나가에 푸시나가에 하며 안내방송이 계속된다. 내가 듣기에 꼭 '애 나가예'로 들린다. 우리 말로 지금 내리실 곳은 다음 내리실 곳은 아마 그런 뜻이리라. 애가나에 푸시나가에 반복되는 방송이 뇌리에 박힌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후다닥 기차역으로 간다. 갈아탈 시간이 일분 밖에 없다. 카드로 기차표를 결재하니 버스 정류장서 바로 기차를 탈 정도로 편리하다.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고 마티니로 향한다. 차창에 쓰러지듯 뒷걸음치는 나무와 알프스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스위스는 철도망이 잘 발달된 나라가 맞다.
마티니 시내는 일요일이라 상점들이 대부분 휴업이다. 현지의 한 청년이 자기 친구에게 전화까지 걸어가며 맛난 음식점을 알려주려 애쓴다. 친절한 총각이다. 그러나 그곳도 결국 점심은 깔끔한 중국집에 들러 몇가지 음식을 주문한다. 중국음식을 오랜만에 먹으니 정말 맛있다. 물론 와인과 맥주는 여기서도 빠질리가 없다. 특히 약주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기에.
네시 반에 예약된 택시가 미리 와 대기하고 있다. 역쪽으로 오는 우리 일행을 보고 기사는 금세 알아채고 친절히 맞는다.
오늘은 참 편하다. 아침에 산에서 걸어내려온 시간을 빼고는 이리도 트래킹이 편하고 쉬울 수가? 그간의 여독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마지막 트래킹인 내일을 불태우기 위한 보상이리라.
택시는 험준한 산을 굽이굽이 돌아 툴툴 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트리앙이다. 아침에 헤어진 가이드 쥴리안이 얼굴이 빨갛게 그을린 채 한참후 산에서 내려온다. 산장에 가져다줄 짐때문에 우리를 대표해 오늘 트래킹 전코스를 돌고 온 것이다.
다른 팀들이 의아해하며 우리 일행이 어디있냐고 물을 때마다 마티니에 있다고 말했단다. 하긴 마티니도 급조된 트래킹코스가 맞긴 맞다. 매일 하늘길만 걸었는데 때론 지상의 길도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상병동을 위해 문명의 이기를 조금 빌렸을 뿐 스위스에서 기차타는 법등 이색체험도 괜찮다.
미국인들과 한 팀이 되어 알프스산에서 내려온 캐나다교포 여성분은 무지 혼났다고 호들갑이다. 종일 산안개가 짙게 끼어 전망은 커녕 시야 확보가 안 되고 돌사닥다리길이 많아 쭉쭉 미끄러지며 위험구간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부상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팀에게는 천만다행의 결정이었고 휴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다.
내일 마지막 스퍼트를 위한 일보후퇴 숨고르기에 여유로운 하루는 행복을 전해주며 저물어간다.


트리앙의 산장호텔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뚜르 드 몽블랑의 마지막 일정의 종지부를 찍으려 너도나도 아침부터 서두른다. 어제 종일 구름으로 가렸던 알프스 산도 오늘은 알몸을 드러낸다.
걷기본능이 발동해 부릉부릉 다리에 시동을 건다. 트래킹이 오늘부로 종착역을 달린다니 마음도 가볍다.
프랑스 할아버지 두 분이 길을 잘못 들어서자 쥴리안이 소리를 질러 코스를 안내하는데 다리부분서 또 길을 벗어난다. 또 소리를 쳐 바른길로 인도한다. 내가 더 나이들어 오면 저렇겠지 하는 생각에 쓴 웃음이 난다.
침엽수림이 울창한 산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여긴 대부분 등산로가 갈짓자로 나있어 지루하지 않아 좋다. 시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오르고 또 오르니 못 오르리 없건만은‥.'
아무리 높은 산도 결국 시간과 끈기 앞에 손을 든다. 너른 개활지가 나타나며 스위스와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콜 데 발므 고개 2191미터가 저 멀리 파아란 하늘아래서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있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낭떠러지 아래서는 야생 염소들이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타고논다. 파란 하늘아래 푸른 초원에는 토끼만한 마우모트가 토굴을 파고 짝을 부르다가 매종류인 천적 발콘이 하늘을 날자 경고성 신호를 보낸다.
꼭 새소리 같다.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서 꽃마차를 타고온듯 꽃잔치를 벌인다.
내 뒤를 큰 배낭을 지고 금발의 여인이 따른다. 선글라스에 금발머리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다. 산을 타는중에 행운의 여신이 설산에서 내려온듯 눈이 부시다. 발므고개까지 동행이 되어 같이 오른다. 스위스를 넘어 프랑스로 넘어오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몽블랑은 지상의 천국이라할까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피날레를 장식하려는듯 그간 가리고 있던 구름도 & 51922;아내고 찬란한 민낯이다. 바라던 파라다이스가 바로 저기리라 와! 숨이 멎을 것 같은 환상적인 경치가 감동으로 밀려온다. 감탄사가 절로난다. 바로 저거다. 저 광경을 보고 느끼기 위해 몇날 몇일을 오르고 또 걸은 것이다.
조금전 만났던 노르웨이서 온 카이샤라는 젊은 여성과 몽블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상당히 상냥하고 목소리가 곱다. 몽블랑을 6일간 걸었고 내일이면 노르웨이로 떠난단다.
숙소를 물으니 쓰시 호텔이란다. 저녁 와인파티에 초대하겠다고 하니 생각해 보겠단다. 숙녀의 전화번호를 딴다. 연락하겠노라며?
발므산장은 작고 협소하다 할머니와 아들이 운영하는데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커피나 음료수를 사먹어야한다. 일행이 음료수를 먹고 화장실을 이용하려니까. 기다리란다. 시간이 흘러도 자꾸만 기다리란다. 이유인즉슨 재래식화장실이 푸세식이라 꽉차 다 풀 때까지 기다리란다. 산장 할아버지가 푸고 계시다. 으악! 모두들 참고 아름다움이 절정인 포제트 능선을 따라 몽록을 향해 내려온다. 잘도 참는다. 자연보호 정신이 투철한듯이 .
중간에 풀밭에서 점심을 먹는다. 발므산장의 화장실 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어릴적 시골집 그곳과 대비되며 그래도 펼쳐진 대자연과 함께하는 점심은 꿀맛이다. 잘 먹지 않던 치즈도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다.
긴 능선을 힘차게 내려오니 어느새 첫날 트래킹을 시작한 몽록이다. 시간이 훌쩍 흐른 것이다.
샤모니를 가는 버스에서 다시 카이샤를 만난다. 오랜 친구인양 반갑다. 환한 미소가 매력적이다. 전화 제스처를 보낸다. 그리고 쥴리안에게 110유로짜리 패러글라이딩 예약을 부탁한다. 내일 아침 8시 30분에 내가 묵을 이사벨르 호텔로 픽업하러 온단다.
그러나 은근히 겁도난다. 천여 미터의 고도 절벽에서 노련한 교관과 같이 한 몸이 되어 뛰어내린다지만 솔직히 두렵다. 고민에 빠진다. 급기야 카톡으로 온 아내의 문자 한 방에 호텔에 도착해서 예약회사를 묻고 물어 겨우 찾아가 취소한다.
기다리고 기다린 저녁시간 분명 한국에서 독실로 예약된 내 방이 여성분에게로 돌아간다. 이유는 프런트에서 체크인할 때 병원장이 나랑 술 한잔 더하며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어 내 독실을 수녀원서 갓 나온 여인에게 내주었으니 안 된다고 말도 못하고 끙끙거린다. 카이샤와 꿈꾸던 여름밤의 꿈 와인파티는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내가 부르지도 못한 카이샤여? 몽블랑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별탈없이 대장정의 뚜르 드 몽블랑 트래킹 종주를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멀리 뉴질랜드 남섬서 응원해준 사랑하는 딸과 돈들여 사서 고생한다며 트래킹 떠나기 전전날까지도 늦지 않았다며 가지 말기를 종용하던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위험하니 가지 말라면서도 막상 간다고 하니 무사히 다녀오도록 고급 트래킹 폴을 사준 내 친구 중화 행여 덥고 땀띠날라 기능성 티를 사준 내 친구 여송유선 기를 돋우고 여행길 외로울라 여자인형을 사준 내 친구 해향 각종 산행정보를 주며 몸보신을 위해 맛난 음식을 사준 내 친구 고수이처럼 격려를 아끼지 많은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고자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마음마저 가볍다. 블레방쪽서 날아오는 패러글라이딩 그룹이 여러 마리의 새가 된다. 시도하였다면 나도 오늘 아침 새가 되어 샤모니 창공을 날았으리라. 아쉬웠지만 고국의 공항에서 기다린다는 아내의 문자에 안전하게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했던 나는 결국 포기 했고 후회는 없다.
호텔 체크 아웃을 정오로 미루고 샤모니 시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상점에서 간단한 선물도 사고 몽블랑종주 기념티도 산다.
14시 15분 알피 버스가 날 데리라 온다. 막상 떠나려니 몽블랑이 가지말라고 등산화를 당기듯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이유는 뭘까. 산드라? 캬이사?
아니다. 몽블랑의 절대적 매력이리라. 몽블랑은 너른 가슴으로 나를 받아들였고 대자연을 통해 비움과 겸손을 깨닫게 하였으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토록 끈기있게 다독여 주었다. 산행을 통해 고행과 인내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가르쳤고 동시에 뒤를 돌아다 보라는 자성의 시간도 손에 한 웅쿰 쥐어주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좋아하는 산악자전거로 다시 찾고픈 심정이다.
스위스 제네바 공항이다. 사람들로 붐빈다. 딴 생각을 하다가 그만 털석 프랑스인 전용 수속입구로 들어가고 만다.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단다. 아뿔싸!
홍콩출신 면세점 여인이 한국이 가까운 나라라며 자기들의 전용 출입구를 통해 나가도록 상점까지 맡겨가며 친절히 안내한다.
터키항공 1920편으로 이스탄불 공항에 내리니 입국하려는 승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입국 수속이 늦어지고 재수속 받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한국행 터키항공 90편이 기다리는 230A 게이트로 달음박질한다.
이미 탑승이 시작되고 있었다. 비상구 좌석을 부탁했기에 두 다리를 겨우 뻗고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니 인천 국제공항이다. 아내가 입국장서 기다리고 있다. 반가움과 그간 고생한 생각이 겹쳐져 울컥하는 내 눈을 피하며 '이 인간이 멀쩡히 잘 갔다오면서 왜 이래?' 하는 눈치다. 쑥스럽다
그래도 픽업 나온 것이 고맙기만 하다. 이야기 보따리를 두서 없이 푼다. 험불킨 여인들 이야기만 빼고.
아! 인생길의 신기루로만 여기던 에델바이스의 꿈을 찾아 홀로 떠났던 대장정의 몽블랑 종주 트래킹은 나 자신을 충분히 위로하였고 유종의 대미로 장식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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