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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윤식당의 인기와 제약업계의 노동현실

  • 안경진
  • 2018-03-19 06:19:32

지난주 방송된 인기 예능프로그램 '윤식당2'에서는 스페인 손님들이 한국의 노동문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노부모와 함께 윤식당을 찾은 딸은 "인도여행 중 한국인을 만난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다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그 곳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한다"며, "전 세계 노동시간 1위가 한국, 2위가 멕시코다. 나는 조금 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삶이 좋지, 하루 중 10시간 넘게 대기업에 바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부모 역시 "말도 안된다. 완전 끔찍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장면에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쉽사리 반박할 수 없는 건 그들의 대화가 틀린 표현만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회원 35개국 평균(1764시간)보다 305시간 많다. 1위를 차지한 멕시코(2255시간)와는 186시간, OECD 국가 중 연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363시간)과는 자그마치 706시간 차이다. 반면 연평균 실질임금은 구매력평가(PPP) 기준 3만2399달러로, OECD평균(4만2786달러)의 75% 수준이었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근로시간 단축을 올해 역점사업으로 꼽으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워라밸 열풍은 제약업계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 외국계 회사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연말휴가제를 도입하거나 공휴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데이에 전사 휴무를 실시하는가 하면, 1년치 지정연차일을 미리 공지하는 국내사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3·1절 연휴를 활용할 수 있도록 3월 2일을 지정연차로 시행한 기업은 GC녹십자, 동아쏘시오홀딩스, 종근당, 한미약품, JW중외제약 등 24곳에 이른다. 이들 중 다수 기업이 5월 21일과 10월 8일 징검다리 연휴에 지정연차를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여전히 대부분의 회사들은 여름휴가를 극성수기인 7월 말~8월 첫주로 고정하고 있다. 회의나 월례조회를 출근시간보다 2시간 빠른 오전 7시 등으로 잡는가 하면, 영업사원들에게 지급한 태블릿 PC를 통해 수시로 위치를 파악하는 등 인권침해 수준의 행태를 보이는 기업들도 존재한다. 얼마 전 GPS 조작 앱(Fake GPS)을 사용해 허위로 거래처 방문보고를 했다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모 회사의 영업사원 사례는 제약업계의 워라밸 수준을 다시한번 곱씹어보게 만든다.

외국계 기업들의 현실도 크게 다르진 않은 모양이다. 5년 연속 여성가족부가 인증한 '가족친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며 워라밸의 대명사로 꼽혀온 모 다국적 제약사 한국법인의 대표는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여직원에게 "3개월 뒤 보자"라는 작별인사를 날리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3개월의 출산휴가를 마친 후 퇴직 수순을 밟았던 기자의 지인에 따르면, 전체 직원의 40%, 임원진의 무려 50%가까이를 여성 인력으로 채우고 있는 이 회사조차 법으로 보장된 1년의 육아휴직 기간을 채우는 직원은 찾아보기 드물다고 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불과 며칠 전, 정시퇴근을 권장하는 회사가 건물 전기를 차단하는 바람에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이동해야 했다는 또다른 지인의 사례는 허울뿐인 워라밸 열풍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금요일 밤 윤식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월~금까지 매일 출근하는 회사에서 삶의 질이 회복될 순 없을까. 업계 리더들로부터 일과 삶을바라보는 의식개혁이 일어나지 못한다면, 퇴근 후 일할 곳을 찾아헤메는 직장인들을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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