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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테라노스가 제약업계에 남긴 교훈

  • 안경진
  • 2018-04-23 06:22:20

지난주 코스닥과 코스피시장에 상장한 제약바이오기업들은 힘겨운 한주를 보내야 했다. 금융감독원이 제약·바이오업계의 개발비 무형자산화 현황에 대한 테마감리 실시를 예고한 데 이어 한미약품의 신약개발 포기소식이 더해진 탓이다. 한동안 뜸한듯 보였던 제약바이오주의 '거품 논란'이 고개를 들면서 투자자들의 불신도 하나둘 커지는 분위기다.

이 같은 혼란을 지켜보다 보면 한 인물이 떠오른다. 천재 과학자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해버린 #테라노스(Theranos)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다. 19세의 나이에 스탠퍼드대학을 중퇴한 뒤 테라노스를 창업했던 홈즈는 에디슨이란 혈액진단키트를 개발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젊고 미인에 고(故)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하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등장한 그녀가 "50달러 짜리 에디슨 키트만 있으면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혈액 몇 방울로 260여 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수많은 매체는 열광했다. 미국의 경제지 '포춘(Fortune)'은 홈즈를 2014년 6월호 잡지의 커버스토리로 내세우면서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를 90억 달러로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4년이 채 지나기 전에 포춘지는 사과기사를 내고, 테라노스의 가치를 0달러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이 테라노스 기술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뒤 존재하지 않는 기술로 사기행각을 벌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홈즈가 투자자들을 속여 유치한 금액은 7억 달러가 넘는다.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던 홈즈는 결국 지난달 벌금 50만 달러를 지불하고, 테라노스 의결권을 박탈당했다. 향후 10년간 어떤 상장사에서도 임원급 관리자가 되지 못한다는 조건도 수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테라노스 사태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와 투자자들에게 시사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바이오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홈즈 역시 처음부터 사기를 목표로 하진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그런데 유명세의 단맛에 취해버린 그녀의 거짓말은 사회 전체에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낳았다. 연구에만 집중하기 위해 검은 터틀넥만 입는다던 그녀는 갈색 머리카락을 금색으로 염색한 뒤 PR 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한다. 어떤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TED 등 컨퍼런스의 연사로 자주 등장하면서 유명세는 날로 더해졌다. 혹자는 그녀가 PR 활동에 드는 수고를 줄였더라면 진짜 기술개발에 성공했을지 모른다고 말했을 정도다.

사업가에게 있어 투자유치가 필수불가한 요소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테라노스와 같은 스타트업에게는 속도 역시 중요하다. 다만 그녀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간과했던 것 같다. 테라노스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헬스케어 업종이라는 것. IR 활동을 하는 제약바이오기업들에게 보다 신중하고 정확한 태도가 요구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신약개발 과정에서 속도보다 안전성 점검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끈질긴 취재 끝에 테라노스의 사기극을 밝히는 데 성공했던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 존 카리유(John Carreyrou)는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을 향해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나 소셜네트워크를 개발 중이라면, 미처 준비되기 전에 대중에게 알린더라도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관련 기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진 모르나 테라노스의 교훈을 새기고, 투자자 및 대중과의 신뢰를 쌓아나간다면 제약바이오업계를 향한 거품론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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