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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리피오돌, 우리에게 '게르베'는 없나

  • 김민건
  • 2018-07-05 06:23:13

간암색전술에 쓰이는 조영제 리피오돌을 구할 수가 없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가 아니라 제약사가 공급하지 않기 때문인데, 약가가 원인이다.

약가 인상 상한가인 26만원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있는 환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참 황당해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리피오돌의 주인은 다국적사 '게르베'다. 1998년 게르베코리아가 설립돼 국내에서 조영제 등을 판매하고 있다. 리피오돌의 1998년 국내 약가는 8410원, 2012년에는 5만2650원이었다. 그리고 올해 게르베코리아, 아니 정확히 그 뒤에 있는 게르베 본사와 협상 중인 약가가 26만원대다.

리피오돌은 양귀비에서 추출한 유기성 요오드 조영제로 마르쉘 게르베 박사가 1901년 처음으로 발견했다. 1926년 최초의 X-레이 조영제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후 자궁난관과 림프 조영제 등으로 쓰이다 간암 조영제가 추가됐다.

2014년 미국에서 희귀약 지정을 통해 2021년까지 독점권을 부여받았지만 국내에서는 특허권이나 별도 독점권이 없다. 단, 리피오돌 생산에는 원료인 '천연양귀비 오일'이 필요한데 현재 천연양귀비 오일을 제조하는 곳은 전 세계 단 두 곳으로 알려진다. 게르베와 게르베 자회사다.

국내 마약법을 적용 받는 양귀비 과를 들여올 때 식약처 허가가 필요하다. 해당 종류는 파파베르 솜니페룸 엘(Papaver somniferum L.)과 파파베르 세티게룸 디시(Papaver setigerum DC.), 파파베르 브락테아툼(Papaver bracteatum) 등 3개다. 외에는 허가 없이 들여올 수 있다. 일부 지자체 축제에서 양귀비를 심어놓는 경우가 이런 예다. 원료만 있으면 누구나 국내 생산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리피오돌에 쓰이는 양귀비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게르베가 제조·생산하는 '천연양귀비 오일'이 국내에선 특허나 독점권이 없음에도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고, 단 26만원대 의약품에 자국민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에게 게르베 같은 전문 분야에 특화된 제약사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수 있다. 게르베는 조영제 전문 제약사다. 따라서 리피오돌같이 수요가 많지 않은 의약품도 꾸준히 생산해 온 것이다. 첫 발견부터 100년이 지났지만, 이제서야 그 가치가 높아진 것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낸 대가로 볼 수 있다.

물론 기업의 최우선 목적이 이익을 내는 것임에도 인류애적 측면에서 '제약사' 기업 가치는 '건강'이다. 수요가 증가했다고 약가 인상을 빌미로 공급을 중단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제약 강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 1조원이 넘는 유한양행과 신약 기술수출로 국내 제약산업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한미약품이 있다. 바이오의약품 CMO와 개발 분야에서 전세계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도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특정 분야에 특화된 전문제약사가 필요한 시기다. 국내사 대부분 고혈압, 고지혈, 당뇨 등 소위 돈이 되는 분야 의약품에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예로 내분비순환기계가 있다.

과연 국내 제약산업이 건강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져야 한다. 팔과 다리는 얇은데 배만 나온 '비만형'은 아닐까. 제네릭만 만들어도 전문 분야에 특화된 제약사가 필요하다.

정부 한 관계자는 "수익이 나오는 시장만 형성되면 국내 제약사들이 뛰어들 것"이라고 얘기한다.

의약품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공공제약사 설립이나 필수의약품 공급 콘트롤타워에 대한 얘기가 몇년 동안 나오는 이유일 터이다. 정부의 선제적 개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 모두 무너져 가는 단 하나의 다리를 받치기 위한 '버팀목'에 그칠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신약만 많이 만든다고 제약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러 분야에서 자신만의 전문성을 가진 제약사가 많다면 제 2의 리피오돌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국내 제약사들은 특정 질환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건너지 않아도 소수를 위한 다리가 많이 있었다면, 우리 마을에 있는 단 하나의 다리가 무너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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