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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설사약 주세요"라는 말의 진실

  • 정혜진
  • 2018-08-09 06:25:33

얼마 전 '모기약'을 달라는 환자에게 약국이 관장약을 판매해 환자가 급작스런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실려간 사건이 일어났다.

환자가 '모기약'을 달라했는데 약사가 관장약을 건네준 사연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약사가 '모기를 잡는 약'을 달라는 손님에게 '모기를 피하는 약'이나 '모기 물린 데 바르는 약'을 건네주는 경우는 지금도 약국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상비약 6차 회의가 마무리됐다. 지사제와 제산제를 추가한다는 큰 틀은 정해졌는지 몰라도 '어떤' 지사제와 '어떤' 제산제를 추가할 지에 이르려면 또 한차례 진통이 예상된다.

이 와중에 약사들이 특히 걱정하는 것은 지사제다. '겔포스'와 '스멕타'가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상비약 품목인데, 약사들은 하나같이 "겔포스는 백번 양보한다 치자. 스멕타가 복약지도 없이 판매하기 적합한 약이냐"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곳에서 20년 넘게 약국을 운영해온, 내가 만난 '김 약사'도 이렇게 말한다.

"모든 약을 주의해야 하지만, 지사제는 특히 더 주의해야 하는 약이에요. 스멕타는 흡착성 지사제인데, 흡착성이라는 건 몸에 들어와 설사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붙잡아 흡착해 함께 배설한단 뜻이에요. 이렇게 들으면 '좋은 약이네' 싶죠. 그런데 생각해봐요, 스멕타 성분이 바이러스만 골라서 흡착하겠냐는 거에요. 다른 약을 같이 먹거나, 요즘 많이들 먹는 유산균을 일상적으로 먹는 환자라면요. 스멕타가 고혈압 약이나 고지혈증 약, 유산균까지 같이 흡착해 장으로 끌고 내려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김 약사는 20여년동안 약국에서 이렇게 복약지도해왔고, 전화로 '스멕타가 어떤 약인가요'라도 묻는 내게 똑같이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이밖에 스멕타를 복용할 때 주의할 점은 또 있다. 바이러스가 온전히 흡착되도록 공복에, 물 없이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 공복이라는 개념 역시 약사의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다반사다.

지사제는 그래서, 어떤 연유로 설사를 하는지, 다른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몇시간 간격을 두고 이 약을 먹어야 다른 약 흡수를 방해하지 않는지 설명과 함께 판매되는 약이다.

김 약사는 극단적인 사례도 소개했다. 대장암 환자의 경우다. 암조직으로 인한 것인지 모르면서 그저 설사를 멎고자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이 실제 약국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어떤 원인으로 인한 설사인지 모르면서 흡착성 지사제를 복용한다면, 안되죠. 대장암으로 인한 설사인지, 장염으로 인한 것인지, 과민성으로 인한 설사인지 알 수 없는데 스멕타를 그냥 자가 복용하면 진짜 위험해질 수 있어요."

김 약사는 지사제와 관련해 이런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지사제 처방이 나왔는데, 환자 상담을 하며 적절하지 않은 약이 처방돼 의원에 전화해 처방전을 수정한 사례다.

환자가 '설사약'을 달라고 했는데, 의사는 확인하지 않고 설사를 멎는 약을 처방했다. 그러나 변비로 인해 오래 고생해온 환자가 원한 것은 '지사제'가 아니라 '변비약'이었다.

"의사가 '환자가 그런 말을 했어요?' 라면서 돌려보낸 처방전을 수정한 적이 있다니까요. 환자들은 단어를 막 헷갈려서 써요. 설사약인지, 지사제인지, 변비약인지를 말이에요."

단 한 명의 약사와의 통화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대화였다. 또 다른 약사 역시 '도대체 품목 조정 위원회에 전문가들이 있기는 한거냐.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지사제를 상비약으로 풀 생각은 못할텐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사제는 약국에서도 복약지도가 상당히 까다로운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을 무조건 반대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6차에 이르기까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이 이뤄졌는지 의심할 만한 지금까지의 결과가 약사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이제 7차 회의로 공은 넘어갔다. 기존 위원들이 변동 없이 회의에 참석할 것이다. 지금까지 분위기로 보면 스멕타와 겔포스의 상비약 지정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종이에 인쇄된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약리학적 기전만을 논하기 전에 우리 환자들, 국민들의 언어 사용 환경을 보자. 모기약을 달라는 환자가 모기 잡는 약을 원하는지, 모기 기피제를 사려는지, 모기물린 데 바르는 약을 달라는 건지도 불분명한 상황이 왕왕 있다.

그런데 스멕타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상황을 상상했을 때, 변비 환자가 찾아와 스멕타를 구매하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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