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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제약산업 초석 닦은 비운의 1세대"

  • 박찬하·한승우
  • 2007-03-08 07:02:43
  • 87세 일기로 타계...의약품광고·학술마케팅 등 기반 닦아

|삼가 명복을 빕니다| 한일약품 창업자 고(故) 우대규 회장

한일약품 고 우대규 회장.
현재는 CJ로 흡수합병된 한일약품 창업자 고(故) 우대규 회장의 빈소에는 일본 다나베제약과 에이자이사 조문단도 모습을 드러냈다.

신제품의 국내 도입선을 찾는 일본 제약사라면 맨 먼저 한일약품을 찾았을 정도로 두터운 일본 내 인맥을 자랑했던 우 회장은 10년을 앓아온 지병(뇌졸중 등)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지난 6일 오전 9시 30분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우 회장이 한일을 이끌던 전성기에는 다나베, 에이자이, 다께다, 산쿄 등 내로라하는 일본 제약사들과의 제휴선을 유지하며 막강한 파이프라인을 자랑했다.

80년대 칼슘길항제 붐을 일으켰던 고혈압약 '헤르벤정'을 비롯해 콜레스테롤 치료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시발점이 된 '메바로친정', 방어인자 개념의 위염·위궤양치료제로는 첫 도입된 '셀벡스', 간장약의 간판스타였던 '프로헤파롬' 등 치료약 분야를 선도하며 업계 2위에서 5~6위권을 80년대까지만해도 유지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건강상 이유로 장남인 우정익 사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고 이후 IMF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부도사태를 겪었다. 이후 98년 대한생명으로 넘어갔던 경영권은 2004년 CJ에 인수된 이후 경영정상화를 이뤘고 2006년말 CJ제약사업본부에 흡수합병되면서 한일의 40여년 역사는 마무리됐다.

우 회장은 국내 제약산업을 개척한 1세대로서의 공적을 남겼지만 개인적으로는 평생을 두고 일궜던 기업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했던 '비운의 경영인'으로 남게 됐다.

삼성의료원에 마련된 우대규 회장의 빈소.
1920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난 우 회장은 15세때 일본인이 운영하던 '국명약국'에 취직하면서 약업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23세 때는 대일약방(大一藥房)을 직접 차려 큰 돈을 벌었고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내려온 그는 평양에서부터 알고지낸 김신권 회장(한독약품 창업자)과 의기투합해 '동서약품'을 설립했다.

전쟁이 끝난 1954년 서울로 올라 온 우 회장은 김신권 회장 등과 한독약품 전신인 '연합약품'을 설립, 전무직을 맡으며 영업과 광고업무를 통해 회사성장을 이끌었다.

우 회장은 특히 의약품 광고분야를 첫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한일약품 설립 이후에는 당시 MBC 방송국의 일일연속극을 스폰서하는 등 제약 광고분야에서 기록적인 일들을 많이 남겼다.

"오직 의약품만"...선진 학술마케팅 도입 등 업적

어쨌든 우 회장은 1960년 '대풍신약'이라는 의약품 수입업체를 설립했고 4년 후 당시로서는 초기 영업활동에 머물렀던 한일약품을 인수해 업계 대표기업으로 키우는 역량을 발휘했다.

"약업일로(藥業一路)를 신념으로 의약품 외 드링크나 건강식품 등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유영호 CJ 공장장(한일 출신)의 말처럼 우 회장은 선진 학술 마케팅을 국내 도입한 인물로도 꼽힌다.

"의약품을 아는 사람이 판촉도 해야한다"는 원칙하에 70년대까지 영업사원을 약사로만 뽑았다든지,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해외연자 초청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든지, 80년대 중반에 PM 시스템을 첫 가동했다든지 등등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영업·마케팅 방식을 이미 도입하고 뿌리내리도록 한 주인공으로 업계에 기록돼 있다.

1966년 입사 이후 30여년을 넘게 우 회장을 지켜본 김영남 전 한일약품 사장은 "순환기계 분야 원로들은 지금도 공로를 인정할 정도"라며 "국내 제약산업에 선진 학술마케팅을 사실상 첫 도입한 것은 우 회장의 큰 공적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부도위기에도 희망주려 애써...인재경영에 애착

제약업계에 한일약품 출신들이 많이 퍼져 있는 것 역시 인재경영에 대한 우 회장의 애착 때문이라고 지인들은 평가한다.

우 회장을 회상하는 김영남 전 사장.
대풍신약 경영 당시부터 우 회장은 직원들에게 1,200%의 보너스를 줄 만큼 사람을 아꼈고, 경영일선에 있을 당시에는 신입직원 최종면접을 직접할 정도 였다고 한다.

김영남 사장은 "부도위기일때도 직원들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희망을 주려고 노력했던 분"이라며 "남의 손에 넘어간 한일약품을 생각하면 나 조차 가슴이 새까맣게 타는데 그 분 심정이야 어떻겠느냐"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87세 일기 중 70여년을 약업계에 투신한 고 우대규 회장. 제약산업 초창기의 기반을 닦았지만 자신이 일군 기업이 사라진 비운을 감내하며 약업 1세대의 일기를 그렇게 마무리했다.

빈소를 지킨 막내딸 우미숙씨는 "고기잡는 법을 통해 평소 자식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다"며 "자식된 도리를 다 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좋은 곳 가셨을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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