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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기고] 원료약 산업 육성,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

  • 오창영 대표이사
  • 2025-09-10 06:15:06
  • 오창영 YS생명과학 대표이사(약학박사)

미국은 지난해 국가안보국 주도로 일본·한국·인도·유럽 등 5곳과 함께 자국의 안정적 의약품 수급 방안을 논의하는 테이블을 발족시켰다.

중국이 전 세계 원료의약품의 30~40%를 생산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제적·정치적 긴장은 국민 보건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논의다. 원료의약품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보건·산업 관련 주무부처가 아닌, 국가안보국이 직접 나섰다는 사실은 원료의약품의 수급 안정이 국가 안보 차원의 핵심 과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같은 미국의 움직임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 당시 가장 기본적인 의약품인 아세트아미노펜과 항바이러스제 수급난으로 온 국민이 곤란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유럽조차 인도의 아세트아미노펜 수출 금지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통해 공급망 다변화와 권역 내 생산 구조 확충 노력을 강화했다.

전 세계 의약품 공급망의 새 강자로 떠오른 인도도 마찬가지다. 인도는 미국 제네릭 의약품 시장의 40%를 점유할 만큼 완제약 분야에서 급성장했지만, 자국 의약품 산업 구조의 취약성도 문제로 인식했다. 특히 원료의약품 분야에 대한 문제 인식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최근 원료의약품의 단계적 국산화에 집중하는 중이다. 공격적인 생산 연계 인센티브를 통해 자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제조업체에 직접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생산설비 투자에 엄청난 지원을 쏟아 붓고 있다.

범세계적 자국 우선주의와 경제적 이권 쟁탈, 국지전 가능성이 증가하는 최근 국제정세 속에서 필수 원료의약품의 공급망 다변화와 자국 내 생산·산업 기반 확충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인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이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 원료의약품 산업은 작은 내수시장, 부족한 자원과 전문인력, 국민건강보험제도 하의 약가 억제, 그리고 국제적 트렌드에 민감한 산업·정책 방향성 등 여러 한계로 인해 자생적 생존과 발전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1988년 국산약 약가 인센티브제도 도입과 함께 대형 완제의약품 업체의 계열사를 중심으로 원료의약품 산업은 조금씩 성장해왔다. 그러나 2012년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직접적인 성장동력을 잃었다. 이후 2015년을 전후로 일본 수출을 통해 명맥을 유지했지만, 제네릭 육성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일본 정부가 약가 인하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동시에 인도·중국의 저가 시장 확대에 밀려 본격적인 침체기로 접어든 게 한국 원료의약품 산업의 현주소다.

이러한 와중에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작년 말 발족한 국가바이오위원회의 첫 회의가 올해 1월 열렸다. 투자 경색과 산업 위기를 겪는 제약바이오업계와 원료의약품 산업계는 기대를 가졌던 게 사실이다. 지난 5월엔 이주호 권한대행 주관으로 2차 회의까지 개최됐지만, 조기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하며 어떤 연속성이나 실효성 있는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 불확실해졌다. 인수위도 없이 출범하게 된 탓에 바이오·의약품 분야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은 추상적이고 지극히 간략히 언급되는 데 그쳤다.

서두에 언급했듯, 미국 스스로가 다급하게 원료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호재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5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첫 회의 참석 후 후속 움직임에 대한 참여는 오리무중이다. 다급한 그들은 한국의 참여와 무관하제 논의를 진행할 것이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굴러들어온 기회는 남의 떡이 될 것이 뻔하다.

안보의 측면에서, 그리고 미래 국가 성장동력의 확보를 위해 의약바이오와 원료의약품 산업 회생과 육성 발전에 범국가적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전략이나 묘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기존의 제안과 로드맵을 꾸준히 실행하면 된다. 기존에 발족된 국가바이오위원회를 중심으로 중장기적 정책을 수립하고, 연구개발·산업 육성·규제 해소를 위해 정부기관과 산·학·연·병·민간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중장기 전략 로드맵을 기반으로 한 꾸준한 투자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주도하는 의약품 및 원료의약품의 안정적 글로벌 공급망 구축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여기서 구체적인 역할과 포지션을 확보하고, 이를 계기로 국내 원료의약품 개발·생산 산업의 부흥을 꾀해야 한다. 동시에 그간의 경험과 기술력, 그리고 중국과 인접한 지정학적 이점과 K-브랜드 열풍의 후광 효과까지 살려 인도와 같은 가공 수출 분야의 시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국 원료의약품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다. 그러나 이 위기 상황에서 당면 과제를 하나씩 헤쳐 나가면, 궁극적으론 제약주권 확보를 통한 국민 보건 안보 실현은 물론, 글로벌 의약품 수급 체계 속에서 중요한 교량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한다. 원료의약품 산업이 한국의 위기 극복에 일조하고,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칠흑 같은 어둠 뒤 새벽은 올 것이고,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또 해낼 것이라는 믿음과 의지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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