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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보험약 무더기 퇴출

  • 데일리팜
  • 2007-06-18 06:30:19

수년간 생산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처방이 나오지 않는 의약품이라면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될 이유가 없는 것이 맞다. 복지부는 이 같은 취지에 근거해 올 들어 2년간 미생산·미청구된 4,160품목을 급여목록에서 무더기로 삭제했다. 급여목록 등재 품목 수는 당연히 대폭 줄었다. 작년 2월에 2만1,855개였던 것이 올 4월에는 1만7,008개로 정비됐다. 이처럼 약가만 받아놓고 장기간 생산조차 하지 않는 보험약에 대해서는 급여목록 정비가 사실 필요하고 타당하다.

하지만 복지부는 현실을 찬찬히 살피지 않는 무리수를 뒀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6개 제약사가 제기한 ‘급여삭제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에서 정부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판결로 업체의 손을 들었다. 이번 판결로 8개 품목은 급여목록에서 살아남을 여지가 커졌다. 그런데 급여삭제 이의신청 품목이 329개에 이른다. 제약업체들의 대정부 소송이 계속 이어지게 됐고, 정부의 잇따른 패소가 예상된다. 정부의 중요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또 다시 추락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정부는 올해 중으로 미생산·미청구 3천여 품목을 추가 삭제할 방침인 것으로 안다. 지난해 5·3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수순을 계속 가겠다는 의지로 본다. 더불어 궁극적 목표인 포지티브제를 연착륙시키기 위한 징검다리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미숙한 업무처리 상황에서 그것이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보는가. 법원이 내린 판결은 결정적 걸림돌이지만 정부 스스로 자초했다. 그렇다면 복지부는 좀 늦더라도 업계의 현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가는 것이 옳다.

복지부는 업계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선 2년이라는 기산점이다. 포지티브제 시행일인 지난해 12월 29일을 기점으로 삼은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 이후가 아닌 2년이나 거슬러 역주행 하는 소급적용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더구나 불과 3개월 전인 같은 해 7월에는 삭제대상 기간을 미청구 3년간으로 했었다. 잘못된 소급적용은 고사하고 적용기간 조차 임의로 예고조차 없이 단축시켰다.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이런 식이라면 업체는 작년 7월에는 3년 전부터, 작년 12월에는 2년 전부터 정부의 정책을 2~3년 내다보고 알아맞히는 신기에 가까운 예지능력을 갖고 품목관리를 해 왔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억울한 삭제다. 이의신청 품목들 중에는 생산이 되고 있으나 이런 저런 타당한 이유로 미청구한 품목이 있다. 수탁업소와의 계약관계나 공장이전 등으로 불가피하게 생산을 못하기도 했고 품목허가 후 추가적인 제제연구나 안정화 시험 등으로 역시 생산차질을 빚은 품목 또한 있다. 원료공급의 차질 사례도 있다. 정부는 이들 개별 사례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다. 고의적인 미생산이 아닌 출시를 준비하거나 이미 출시를 한 업체들이 급여목록 삭제라는 억울한 처지에 몰렸으니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이해가 간다.

간과할 수 없는 더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오리지널 품목의 특허만료와 관련된 것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국내 제네릭 품목은 오리지널의 특허가 만료되기 훨씬 전에 품목허가를 받고 약가등재 절차를 밟는다. 특허 만료 후 진행하면 시장경쟁에서 밀려나고 약가를 낮게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지배력이 큰 제품의 제네릭 경쟁이 가열되면 업체들의 이런 사전준비 기간은 더 늘어난다. 2년을 넘겨야 하는 사례가 숱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허만료 이전에는 특허소송에 휘말리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런 품목들이 모두 미생산·미청구에 걸려 삭제된다면 국내 제네릭 산업의 목줄을 끊고 그 봉오리조차 꺾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고혈압치료제 ‘코자’의 특허만료는 2008년 11월인데, 2년의 기한 때문에 특허만료일 이전인 올해 10월까지 생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제네릭이 당장 3품목이다. 또 46품목은 내년 6월까지는 청구실적이 나와야 한다. 기능성 소화불량 치료제 ‘가나톤’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제네릭이 30여개에 달한다. 이로 인해 관련 업체들은 발만 동동 구른다. 출시를 아예 포기하려는 업체들이 일단 많다. 일부 업체는 특허소송을 당하더라도 출시를 강행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장기간 미생산·미청구 품목의 폐해를 모르지 않는다. 목록에만 있고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면 유령품목에 다름 아니다. 그런 품목들은 여차하면 출시돼 덤핑품목으로 종횡무진 시장을 휘젓는가 하면 리베이트 품목이 되어 유통시장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삭제품목에 대한 엄정한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 억울하게 삭제되는 품목들이 있다면 정작 삭제돼야 할 품목들을 제때 삭제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복지부는 업체들의 이의신청을 귀담아 듣지 않고 밀어붙이는 식의 일방주의적 행정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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