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겔포스와 개비스콘 사이에 멈춰 선 약사
- 조광연
- 2012-07-07 08: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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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속쓰림 증상으로 약국에 들러 '개비스콘'을 찾았다. 지명구매다. 만원을 냈다. 거스름돈 5500원이 돌아왔다. 멈칫 했다. 지금껏 다른 약국에서 6000원을 돌려 받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이 업계에서 일하는 만큼 약값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리곤 습관적으로 물었다. "언제 먹죠?" "빈속에 드시는게 좋아요. 식사 전에 드세요." 당혹스러웠다. 전에 먹었을 때 '식후 또는 취침전'이라는 용법을 읽어둔 탓이다. 물론 알면서 시험삼아 "언제 먹죠?"라고 했던 건 결단코 아니었다. 사용설명서가 있다지만 약을 사면 당연히 약사에게 용법 등에 대해 묻는 건 '내장된 매뉴얼'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의 영역이지만 "다시 그 약사가 어떤 약에 대해 설명하면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 보았다. 대답은 간명했다. "나 그냥 사용설명서 읽을래."
통상 속쓰림 증상이 있을 때 빈용하는 유명 일반의약품으로 겔포스가 있다. 물론 둘의 성분은 다르지만, 일반인들은 두 약을 비슷한 것 쯤으로 생각한다. 그저 광고를 본대로, 또 생각나는 대로 약국에서 이야기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 약사가 "식사 전에 드시라"고 강조한데는 겔포스의 영향이 컸을지 모른다. 겔포스의 용법은 '식간과 취침전'이다. 어쩌면 개비스콘의 광고 탓인지도 모르겠다. 헐고 상처난 빈 위장에 소방관이 물을 뿌리듯 약을 바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부지불식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연유야 어찌됐든 그 단순 에피소드로 인해 그 약국에 걸었던 개인적 신뢰는 모두 무너져 내렸다. 단 한번의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 해 모든 약국의 험담을 늘어 놓으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고객들이 찾는 신제품에 대해 1분도 투자하지 않았던 그 약사의 무심함에대해서는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종전 약사의 역할은 테크니션과 조제로봇의 등장으로 쫓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말해 고급한 전문인력이 테크니션과 조제로봇이 하는 일을 해서는 존재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의 약사들은 단순 조제와 판매를 넘어 지속적인 환자관리와 함께 질병 예방적 관점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거나 정착시켜나가고 있다. 서태평양지역약사회 존 웨어 회장은 6일 대한약사회와 의약품정책연구소가 연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약사의 역할'이라는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약사는 의약품을 제공하고 치료를 시작하기 전 환자와 마지막으로 대면하는 사람"이라며 "그 만큼 약사의 역할은 단순 조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환자관리를 통한 약료서비스자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재택약료에 약사가 나서며, 필리핀은 비만과 금연 상담의 역할을 약사의 영역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한국 약사의 역할 정체성은 의약분업 이후 오히려 조제로봇화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심히 걱정된다.
이날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대한약사회 박인춘 부회장은 "보건의료환경이 변화하고 약사 역할의 패러다임도 변모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의약품 조제와 판매에서 역할을 찾았다면 이제는 약료서비스 제공이 약사들의 중요한 목표이자 역할이 됐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약사의 역할을 되돌아 보자. 의약분업 이전에는 '언제부터 콧물이 났어요? 기침도 나나요? 아이고! 많이 아프시겠어요' 같은 약사의 질문과 위로가 이어졌다. 기다리는 동안 약사는 조제를 하거나 유발에 약을 갈며 대화를 더 이어갔다. 분업 시행 12년, 약사들의 말은 변했다. "병원 다녀오셨어요?" 그리고는 처방전을 챙겨 종종 걸음으로 조제실로 들어가 버린다. 마치 동사무소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는 일처럼, 황도 복숭아가 담긴 통조림처럼 규격화된 게 오늘 날 환자와 약국간 관계다. 여기에 일반약이 의약외품으로 바뀌어 편의점 가고, 일반약까지 편의점서 팔리게 되니 약국은 '상품의 빈둥지화', 약사는 '심리적 빈둥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약사 사회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 상황은 이미 공습경보다. 그동안 경계경보가 울리지 않았을 수 없겠지만 리더도, 구성원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리더는 알았지만, 회원들 눈치를 보며 회피했다. 보건의료 환경이라는 큰 물줄기가 새로운 길을 내려고 매순간 강언덕에 부딪히는 상황에서 지류에 기대 생명을 부지하면서 리더로 내세운 사람들에게만 삿대질을 해 해결될 상황은 아니다. 이제라도 약사 사회의 구심점인 대한약사회는 길거리 놀이기구인 두더지 잡기처럼 불거지는 현안만 눌러 붙이려고 망치질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약사가 이 사회에서 건강증진 서비스 제공자, 다시말해 '지역건강센터'가 가 되도록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이에 따라 여타 보건의료전문가 집단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정부를 설득시켜나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원희목 전 약사회장이 내세웠던 '전문성, 배타성, 복잡성 강화론'은 여전히 유효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약사들도 급류에 배가 떠내려 가는데 돛만 부여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들의 약국에 대한 생각이 급류가 되지 않도록 약사라는 직업의 숭고함을 되돌아보고, 지금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사족 하나. 대부분 국민들은 여전히 약국에 가면 약사의 말 한마디를 그리워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 '빈속에 드세요'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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