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기업의 영리한 판단 '제약업은 미친 짓'
- 조광연
- 2013-12-17 06: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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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손에 쥐는 꿈인 줄 알았다. SK케미칼이 1999년 국산 신약 1호로 제 3세대 백금착제 항암제를 개발하고, LG생명과학이 2003년 미국 FDA에 퀴놀론계 항균제 팩티브를 신약으로 등록했을 때, 그것은 국가적 경사였다. 1987년 7월 물질특허제도 도입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신약개발이 암흑기에 빠졌을 때 연이은 두 사례는 터널 끝을 보여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국내 제약산업계가 그토록 목소리를 높여 반대했던 '대기업의 제약산업 진출 폐해론'은 흔적없이 잦아 들었다. 오히려 대기업의 긍정적 역할론이 득세했다. 그래서 매출 1조원은 물론 영업이익 1조원의 시대도 곧 달려올 줄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잔치는 짧았다. SK케미칼과 LG생명과학의 두 신약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신약개발=엄청난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공식을 증명하지 못했다. 국내 제약산업계에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두 회사는 그럼에도 이후 국내서 매출 R&D비를 가장 많이 쓰는 회사로 자리매김하며, 전통의 국내 제약산업계에 방향타를 제시했지만, 글로벌 블록버스터 같은 스스로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R&D를 지속한 탓에 국내 신약을 내는 한편 미국과 EU허가 관청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둘은 통상의 비즈니스에서 수익을 창출하며 블록버스터를 꿈꾸는 장기전에 돌입했다. 안타깝게도 2013년 12월 '대기업의 제약산업'은 안녕하지 못하다. 화끈한 맛에 붙이고 떼었던 파스시장에 DDS개념을 적용한 케토톱을 출시해 일반의약품 시장에서 혁신을 이뤘던 태평양제약 의약품사업 부문이 국내 최초의 합작사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한독에게 팔렸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 인터페론과 B형간염 백신 개발로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등장했던 CJ제일제당 의약품 사업부문도 매각이냐, 독립이냐의 기로에 서있다. 또다른 대기업 한화가 세운 드림파마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해있으며, 한 때 변비약 개발과 광고로 존재감을 내비쳤던 코오롱제약도 대기업 계열의 제약사라고 하기엔 매우 평범한 모습이다.
대기업 제약회사들이 갈등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크게는 '만만한 이익만 노렸 대기업의 그릇된 판단'과 '신약개발=미친 짓일 수 밖에 없는 환경'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대기업들은 '혁신의 깔대기'가 작동하는 대표적 산업이 제약회사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한방에 승부를 볼 수 있다는 달콤함'만 크게 보고 진출했다. 오판이었다. 지지부진한 전통의 제약사들이 차지한 시장을 자본으로 독점할 수 있다고 봤지만 현실은 달랐다. 신약개발은 독점 후에 충분하다고 봤지만 독점의 길은 멀었다. 더구나 애초에 마음에 두지 않았던 신약개발은 밑빠진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매년 이익을 따지는 대기업에게 R&D는 사치일 뿐이었다. 최근들어 리베이트 등으로 자칫 그룹 전체 이미지에 먹칠을 할 수 있는 고 리스크 사업부문이 된 것도 그룹차원에서 부담이다. 영락없는 계륵이다.
제약산업에 있어 '혁신은 신약개발'이다. 그런데 신약개발은 어떤가. 5000개의 새로운 화합물 중 단 하나만이 약국의 진열대에 오르고, 이중 3분의 1만이 R&D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정도라는게 정설이다. 최초 발견에서 의약품으로 상업화되려면 약 15년이 걸리며 총 비용도 5000억원 이상 소용된다. 물론 글로벌 블록버스터 이야기다. 국산 신약이 20개 나왔다지만 이중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고 말할 만한 건 거의 없다. 일본 의료계가 자국 제약사의 신약을 지지하며 처방하는 것과 다르게 대한민국 신약은 외면받기 일쑤다. 'R&D 투자 신약개발 돈이 된다'는 공식은 2013년 제약산업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꽃보다 할배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제약업계에선 '신약개발보다 도입품목'인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R&D 투자 신약개발, 돈이된다'는 믿음이 무너졌다
철저히 제약 비친화적 정책 탓이다. 얼마전 의약품 유통업체 지오영이 매출 1조원을 달성, 약업계 최초로 매출 1조클럽에 진입했다. 지오영에 앞서 제약업계에서 동아제약은 몇 차례 1조 문턱을 바라봤지만 실패했다. 왜? 1조에 가장 근접했던 2012년엔 일괄약가인하가 발목을 잡았다. 사실상 1조원 벨을 누르기만 하면 됐는데, 뒤에서 목덜미를 낚아 챈 건 약가 일괄정책이었다. 제약산업에 대한 평가는 이중적이다. 세계 1000조원 시장으로, 자동차 시장 600조원 보다 크며, 우리도 이제 황금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입달린 사람들은 죄다 말한다. 화이자 리피토 하나가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몇 조니 하며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서 제약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칭송한다. 약가를 깎을 때 고부가가치라는 칭송은 정반대로 작용하지만 말이다. 정책은 늘 180도 후방에서 산업의 바지춤을 잡아 당긴다.
정부는 지난 7월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을 표방하며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약가를 깎기 전 '국내 제약산업은 영세하고, 투자를 게을리해 연구개발력이 낮다'고 폄하했던 정부가 국내 제약산업의 연구 역량은 신약 20개를 개발할 만큼 높은 수준이라고 한껏 치켜 세웠다. 정부의 진심, 과연 어디에 있는가. 어지럽다. 단번에 시행하는 일괄 약가인하가 업계에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크니 '5년 분할 방식'으로 해달라는 업계의 간절한 요구를 단칼에 내리쳤던 정부가 이젠 저가구매인센티브를 다시 시행하겠다고 나선다. 가장 완벽하게 정책 목표에서 벗어나 실패한 저가구매인센티브가 왜 이토록 질긴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병원을 돕는 일이 더 급한 때문일까? 아니면 낙장불입, 한번 시행된 정책은 거둬들이면 왜 안된다는 것일까? 누구를 위해 말인가.
정부는 제약산업의 성장 원천인 약가를 깎는 대신 보상차원의 정책을 내고 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미FTA를 체결했을 때도, 일괄약가인하를 단행했을 때도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대부분 그게 그거라는 한계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제약산업계에 투자욕구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R&D를 해 신약을 개발하면 로또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다시말해 투자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신뢰가 무너졌다. 건보재정 곳간 만 바라보는 정책 일변도에다, 어설픈 시장개념의 이식 때문이다. 최근 만난 모 제약사 오너의 말이 떠오른다. "솔직히 전통 제약사들은 이 업 말고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돈은 많이 들지, 리베이트 등으로 그룹 이미지 손상 받지…미친짓 일 수 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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