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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도(文字圖), 글자도 예술이다

  • 데일리팜
  • 2014-04-08 16:16:17
  • 문자에 종속됨 없이 독립적 회화 완결성 지녀

문자도(김혜경 作)는 말그대로 글자를 회화적 기법으로 승화한 민화다. 선비들의 학문숭배 사상을 예술적 관점으로 표현한 민화의 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다.

(39)문자도-학문숭상과 예술성 결합

요즘 손글씨로 쓴 글씨체가 디자인 분야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화된 글씨체가 아닌 곡선의 자연스러움이 예술화되면서 손글씨가 그림과 사진, 시 등과 결합하면서 예술성을 더욱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서예가 유행하면서 여러 서체들이 등장했고, 그림이나 건축물과 함께 결합하여 예술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설명해드리고 싶은 것은 서예가 아닌 글자 자체를 회화화시켜 예술로 승화시킨 문자도(文字圖)입니다.

문자도는 그야말로 문자와 그림이 결합한 그림입니다.

학문의 나라인 조선에서 문자와 책은 학문의 시각적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소재로 한 책가도와 문자도라는 독특한 그림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문자도는 서예에서 출발했지만, 본질은 전혀 다릅니다.

문자도는 의사소통과 기록의 수단인 문자를 미술작품으로 만들어 장식과 감상의 수준으로 끌어 올린 것은 학문을 숭배하는 사회적 정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자에는 다양한 글체가 있었으며, 내용이나 쓰임새에 따라 예서, 전서, 초서, 해서, 행서와 같은 글체를 사용했습니다.

같은 글자라도 서체에 따라 다른 느낌을 표현합니다.

초창기 문자도는 다양한 서체를 한 폭에 모아 배열하고 글자에 색상을 입히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서체에 색상을 입힌 문자도는 그림이라기보다는 글체의 장식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문자도는 같은 문자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서예와는 조형적 원리가 다릅니다.서예가 필치와 간격이라는 조형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문자도는 색, 구도, 왜곡, 축소, 변형, 상징, 합성 따위의 복잡한 미술 조형법을 사용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서예는 글자를 쓴 것이고, 문자도는 문자를 그린 것 입니다.

또한 서예의 창작자는 선비이고, 문자도의 창작자는 화가입니다.

서예를 하는 선비가 미술에 대한 조예가 있다면 더 나은 서예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며, 당연히 서예와 학문적 깊이를 가진 화가가 문자도를 창작한다면 금상첨화일 것 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글의 깊은 내용이나 사상을 모르는 화가도 얼마든지 문자도를 창작할 수 있으며, 화가는 문자를 그림의 소재로 다룰 뿐이지 학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 문자도의 발전은 글자 중심에서 그림 중심으로 이동해 가는 과정과 동일합니다.

처음에는 문자가 담고 있는 내용에 충실하지만 점차 표현 형식에 치중하게 되고 여러 조형적 상징과 결합하면서 풍부해집니다.

다양한 서체에 색상을 입히고 배열하는 수준이 초창기 문자도였다면 이후 기존의 글체에서 벗어난 기형적으로 변형된 글체가 등장하고, 변형된 글체의 일부가 그림의 형상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글자가 그림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글자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문자도의 단골 소재가 된 글자는 몇 가지로 한정됩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문자는 수(壽), 복(福),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염치(廉恥), 충(忠)과 효(孝), 따위이며, 문자도에 사용되는 글자는 모두 조선시대의 사상과 학문, 혹은 사회적 요구를 대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문자도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선비, 양반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 좋아했던 그림입니다. 문자와 그림의 결합은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선비들은 어려운 학문적 내용을 그림을 통해 백성들에게 교육할 수 있었고, 글을 모르는 백성들은 그림을 통해 학문이라는 고급 가치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형상이 필요해서, 물고기, 대나무, 새와 꽃 따위는 모두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문자는 검정으로 쓰고 그 위에 알록달록한 색상의 각종 형상들이 그림으로 그려졌는데 장식성이 강해질수록 글자의 모양보다는 그림에 치중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결국 문자는 그림에 덮어 알아볼 수 없는 지경까지 발전하게 되며, 문자를 읽고 그림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글자를 유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교훈적인 내용의 강조가 오히려 문자에서 그림 중심으로 옮겨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결국 문자도는 문자를 소재와 주제로 그린 그림이지만 문자에 종속되지 않고 그림으로 독립해 완결성을 가진 형식이 되었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그림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문자와 학문으로 융성했던 조선이었으나, 점차 후기에 다가갈수록 국운이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그 암울한 시대에 문자는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거리를 어슬렁거렸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짙은 화장으로 치장한 영혼이 없는 인형과 같았습니다.

문자 속에 담긴 사상과 가치는 수명을 다했으며, 청렴한 선비는 사라졌고 탐욕에 찌든 양반들만 활개쳤기에 백성들은 새로운 꿈과 희망을 문자를 녹여 그림 속에 담아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염원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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