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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제약사들

  • 조광연
  • 2014-09-03 06:14:56

숱한 조사와 처벌을 겪으며 단련이 되었다고는 하나, 제약산업계에서 리베이트라는 말은 그 자체로 늘 민감하다. '사랑에 속고, 돈에 속았던 사람들'처럼 가까이 하기에 두려운 '어비'다. 8월31일 일요일, 한국제약협회(KPMA)는 이례적으로 바빴다. 협회는 이틀 전인 8월29일 39개 제약회사가 CP(공정거래자율준수 프로그램) 운영 등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료를 냈었다. 결국 사달이 났다. 윤리경영사를 1차 취합하는 과정에서 10개 회사가 누락됐기 때문이다. 협회는 일요일인데도 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고 메일을 보내 부랴부랴 명단을 추가했다. 명단 취합 과정서 협회가 진짜 실수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건 제약회사들이 리베이트 문제를 얼마나 예민하게 대하는지 다시한번 명확히 확인됐다는 점이다. 윤리경영 실천 명단에 포함됐다는 것이 불법 리베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증표가 아닌 것처럼,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리베이트를 하고 있다는 방증도 아닌데 말이다.

'이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도 손을 씻지 못하는 제약회사들의 오래된 '불법 리베이트 현상'은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매우 흡사하다. 죄수의 딜레마가 뭔가. 차포 다 떼고 말해 죄수 두명이 협력해 여죄를 불지 않으면 둘은 합리적으로 가장 낮은 벌을 받게 되지만, 내 입장(이익)과 상대방을 의심하는 순간 최악(높은 벌)으로 가게된다는 내용이다. 제약회사들은 각자 자사의 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위로하며 '불법 리베이트'를 감행하지만, 이는 필연 다른 경쟁사의 리베이트도 촉발시킬 것이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제대로 된 이익을 회수하기는 만만하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 제재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이익을 취하려면 둘은 협력해야만 한다. 제약사에게 주어진 협력의 방법론은 두가지 밖에 없다. 리베이트 조건을 '기준'으로 만들어 같이 행동하거나 아예 리베이트를 함께 하지 않는 것뿐이다.

법적으로나, 사회적 요구로 볼 때 불법 리베이트 공모(협력)는 어불성설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리베이트가 개별 제약회사들의 약점을 가장 쉽게 장점으로 바꿔주는 촉매제일지 모르지만, 그건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고강도 마약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약이 결국 개인의 육신을 모두 허물어 트리듯 불법 리베이트는 기업의 건전성을, 산업계의 발전적 토대를 갉아먹는 악마일 뿐이다. 그래서 미래지향적 협력의 방법론은 한가지 일 수 밖에 없다. 죄수의 딜레마를 차용해 여러 조건을 따져보자. 만약 모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떤 일들이 빚어질까. 검찰, 공정위에 이은 국세청 세무조사는 연중 계속될 것이며, 언론은 제약산업계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공격하고 궁극적으로는 제약산업 관련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표적인게 약가 정책이다. '리베이트 줄 여력이 약가에 숨어있었네'라고 반기며 '낮추고, 낮추고, 또 낮추게 될 것'은 자명하다. 여론? 지금껏 '임상경험상' 뜨거운 박수를 칠 것이다. 정부, 참 잘한다고 말이다. 개별회사들은 불안한 가운데 매출을 맞추고, 이익난 재무제표를 투자자들에게 제시하겠지만 오늘을 견디고 살뿐 건강한 내일을 도모하기 힘들 수 밖에 없다. 연구실로 가야할 R&D 투자비용이 애먼 곳으로 향할 때 미래는 암담하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만약 모든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기로 한다면 어떤 현상이 펼쳐질까. 틀림없이 제약산업의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아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산업발전의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대소 제약회사'들의 역량 차별성을 단숨에 메꿔줬던 리베이트가 빠져나가면 중소 제약사들에겐 고통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제약사별로 특성있게 성장할 것이라는데 이견을 다는 제약계 관계자들은 거의 없다. 애먼 주머니로 들어갔던 돈들이 연구실과 해외시장 개척에 쓰일 것이며, 산업친화 정책도 적극 주장하고 관철시킬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리베이트로 실현시킬 눈앞의 이익에 비하면 참으로 한가한 전망이지만 '싱크홀 없는 토대' 위에 안전한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짓고하려면 이 방법이 유일하다.

만약 나(일부 제약사)만 리베이트를 제공한다면 어떤까. 예상할 수 있는 대로 '대박'이다. 독점적 매출 증가로 인한 빠른 성장이 예견된다. 제약산업을 긍정적으로 말할 때 흔히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산업'이라고 하지만 '나홀로 리베이트' 역시 같은 궤적에 있다. 제약회사들이 책임질 사람을 예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너나 대표이사 CEO 역시 늘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 악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나만 불법 리베이트를 안한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업이 최우선으로 삼는 가치가 이윤 추구에 있다는 측면에서 참으로 바보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경쟁사들에게 '나를 잡아 잡수시오'라고 선언하는 것과 매 한가지다. 고객을 잃고 매출은 급락하며, 이로인해 경영이 다급해질 것이다.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 지고, 진행중인 R&D 파이프라인도 지지부진하거나 내려 놓아야만 한다. 역설적이다. 리베이트를 하는 곳과 하지 않는 곳이 뒤엉켜 있는 작금의 현실에선 R&D에 총 역량을 몰아가는 곳이 휘청거리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시장 밖으로 쫓아내는 현실, 과연 정당한가.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은 한층 중요해 진다.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해야 한다지만, 목표가 뚜렷한 정책을 이끌어 가려면 처벌 단계서는 아니더라도 조사 단계서 만큼은 정상을 참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강력하게 리베이트를 억제하되 R&D 투자에 적극적이거나 외국 시장 개척에 불철주야 노력하는 곳에 앞서 리베이트만 내세워 영업에 올인하는 곳이 어딘지부터 찾아내 강력하게 끝장 조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를 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잡아가고 그 방향으로 길을 터주면 물길은 기다렸다는 듯 그 곳으로 흐르게 될 것이다. 제약회사들 역시 '어비, 어비'하며 남의 눈치를 살필 것이 아니라 산업의 기틀을 다진다는 대의와 그 효과를 신뢰하고 서로에게 등을 내밀어 '어부바'를 다정다감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최근 윤리경영 선포 신드롬은 바로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협력은 정당한 사안과 지점에서만 유효하다. 불법 리베이트에서 협력은 음험한 공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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