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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사무장이 챙겨도 '덤터기'는 의약사가 쓴다

  • 최은택·김정주
  • 2014-09-24 06:15:00
  • 사무장엔 공단부담금만...의약사엔 환자부담금까지 환수

[내러티브 기획]사무장병원·약국 환수처분의 '불편한 진실'①

얘기를 풀기 전에 이 말부터 시작할게요.

#무자격자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하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의약사에게 개설독점권을 준 것은 국민을 위해 면허범위에서 책임을 다하라는 사회적 '정언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어기고 무자격자와 공모해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불법 개설하다니요. '일벌백계', 엄히 처벌받아도 할말이 없겠습니다.

그런데도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또다른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명문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까지 취득한 의사 A씨. 그는 지난해 꿈에도 그리던 본인 명의의 의원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A씨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의원을 개설하고 채 3주도 되지 않은 어느날 경찰에서 출두명령이 왔죠. 청천병력같은 일이었습니다.

2005년 5월부터 2007년 2월 1년 9개월 간 명의를 빌려주고 월급쟁이 병원장으로 일했었던 #사무장병원이 순탄하게만 여겨졌던 그의 삶을 지옥문 앞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동료의사 소개로 서류상 개설자로 이름을 올렸었지만, 그건 오로지 서류상일뿐 실제 소유주는 의사인 B씨로 알고 있었다고 항변해도 소용없었죠.

그는 지금 51억원의 환수처분을 내린 건강보험공단과 힘겨운 법정 싸움 중입니다. 그런데 A씨를 고용해 병원 수익의 대부분을 챙긴 무자격자(사무장)은 어디로 갔을까요?

건강보험공단은 A씨에게는 행정제재 수단인 환수처분 조치하고, 사무장에게는 민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의약사에게는 건강보험법을 근거로 부당이득을 전액 환수할 수 있지만, 사무장에게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무장들은 재산을 은닉하거나 이미 빼돌린 상태에서 적발되기 일쑤여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건보공단이 승소해도 손해를 회복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반면 의약사들은 대개 속수무책으로 재산을 다 환수당합니다. 면허정지 처분기간이 지나면 면허를 계속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페이닥터'나 근무약사로 취업해 임금 중 절반을 건보공단에게 줘야하는 '차압인생'을 살 수 밖에 없죠. A씨의 경우 환수액수가 너무 커서 임금의 반을 내놔도 원금은 커녕 눈덩이처럼 커지는 이자의 10분의 1도 감당 못하고 있습니다.

A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평생 빚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소식을 들어보니 그 사무장은 잠깐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서 또다른 의료사업을 준비 중이라더군요. 1년 9개월 간 잘못된 선택에 내 삶은 파탄났지만, 사무장은 버젓이 또 다른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게 우리사회의 현실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의약사에 대한 환수금과 사무장의 손해배상금 간의 차이입니다. 건보공단은 공단부담금 뿐 아니라 환자본인부담금까지 요양급여를 통해 발생한 모든 금액을 명의를 빌려준 의약사에게 돌려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무장에게는 실제 발생한 손해액인 공단부담금만 청구 가능합니다.

어차피 사무장에게는 돈을 받기도 어렵거니와, 처음부터 청구하는 돈의 규모가 사무장보다 고용된 의약사가 훨씬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불합리는 지난해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이 대표발의한 건강보험법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해소됐습니다. 사무장과 의약사가 연대책임을 지도록 근거규정을 마련한 법률안이었는데요. 법률이 시행된 지난해 5월22일부터 개설자 통장에 입금된 돈부터 적용받습니다.

그러나 계속 적발되고 있는 사무장병원이나 면대약국 사건의 대부분이 지난해 5월 이전의 요양급여에 대한 것인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앞으로 수년 이상동안 이런 불합리는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데일리팜에 자신의 이야기를 제보해온 #면대약국 고용 약사 C씨는 어떨까요? 흔히 약국은 면허를 대여해주는 것이니까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와 면대약국 약사는 다르다고 하지만 명의를 대여해 무자격자 대신 개설자가 됐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C씨는 한 때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불법공모 사실을 자수했습니다. 이로 인해 형사처벌(벌금) 받았지만 다행히 약제비는 무자격자가 내기로 했습니다.

형사처벌을 줄이기 위해 무자격자 측에서 선조치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C씨도 경제적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바로 공급받은 약품비 채권 때문입니다.

C씨는 약국명의로 받은 은행대출금과 도매업체 등 납품업체 9곳의 거래잔고, 부가가치세, 직원들의 4대보험료까지 1억8000여만원의 빚을 떠안게 됐습니다. 책임이 개설자에게 귀속되는 채권들입니다. 채권자 명단에 자신을 고용한 무자격자가 운영하는 도매업체가 포함돼 있는 것도 황당한 일입니다.

이런 채권채무관계자는 실소유자가 누구인 지 실체적 진실을 따지는 게 아니라 개설자에게 모두 귀속된다는 '불편한 진실.'

법은 무자격자에게 고용된 의약사에게 결코 관대하거나 인정을 베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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