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깨어나는 제약 1세대의 '도전과 모험 유전자'
- 조광연
- 2015-06-18 06: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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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이 그려진 지폐와 모래뿐인 울산 미포만의 사진, 미포만이 나타난 5만분의 1 지도 한장.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배짱 하나로 영국은행을 설득해 조선소를 지을 돈을 마련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72년 일이다. 국민 주머니와 나라 재정이 함께 빈약했던 시절 유일한 자산은 '배고픈 모험정신' 뿐이었다. 무엇이든 몸으로 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보다 15년 앞선 1957년 혈혈단신 독일로 날아간 제약 1세대가 있다. 故 김신권 연합약품(현 한독) 사장은 현지에 도착해 무려 40여일 동안 발이 닳도록 연구인력만 1600명이던 제약회사 훽스트로 출근했다. 다짜고짜 기술제휴를 하자고 요청한 것이었는데, 훽스트 입장에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1957년 외국에 비친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허덕이며 늘 연민을 불러일키는 후진국이었다. 그런 나라의 작은 회사가 제휴를 요청하고 있으니, 아마 기가 막혔을 것이다. 결과는 알려져 있는대로 해피 엔딩이다. 김신권은 훽스트 원료를 들여다 제품화하는 기술제휴 체결에 성공했다. 한국 제약기술 선진화에 적지 않게 기여했던 이 사건도 '배고픈 모험정신'의 승리였다.
현존하는 국내 제약회사 창업자나, 창업자가 타계해 일찍 회사를 물려받은 1세대 같은 2세대 중에 탄탄대로를 달려온 인물은 없다. 기업을 반석에 올리는 일에 배가 고팠고, 해서 더큰 성공에 대한 꿈이 간절했다. 그런 만큼 그들은 밤낮없이 뛰었다. 열심히 뛴 발자국 만큼 기회를 잡았다. 일상이 '도 아니면 모같은 모험'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펼쳐진 시대적 상황이 그랬다. 맨땅에서 일어서야 하는 척박한 환경만이 모두에게 공평했을 뿐이다. 부족한 기술은 성실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열정은, 경제발전과 함께 의약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호황기를 만나 비로소 풍요를 맛보게 됐다. 한데 풍요는 나른한 부작용을 낳았다. 다른 산업처럼 벌어들인 돈은 번듯한 사옥을 짓고, 사장실을 넓히며, 부동산을 구입하는데 쓰였다. 연구개발(R&D)이나 투자라는 말은 간혹 미래를 근사하게 이야기하는데 동원되는 미사려구일 뿐이었다. 지금도 좋은데 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정부가 1987년 물질특허제도를 받아들이자 큰일났다 싶었던 소수의 기업들이 부랴부랴 연구소를 짓고, 사람을 모으며 R&D에 눈뜨기 시작했다. 오늘날 국산 신약 24개의 기반은 이때 마련됐고, 그 주인공들 역시 이때 먼저 움직인 기업들이 대다수다.
제약산업 발전사에서 대개 제약 1세대들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GMP 제조시설을 마련하고, 연구기반을 닦는데 차근차근 전진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내수를 벗어나 세계를 경영하겠다는 큰 꿈을 꾸지는 못했던 만큼 의욕적이지는 못했고 철저히 내수 최적화 형으로 추진됐던 게 사실이다. 경영측면에서도 안분자족(?)할 만한 정도의 기반을 닦은 후 제약기업들은 오히려 가업화 양상을 띠면서 야성을 잃어갔다. 기업들은 스스로 관행을 만들었고, 이 관행에 기업들은 다시 길들여졌다. 배고팠던 1세대들의 ' 모험정신'은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들에게나, 가업을 물려받은 다음 세대들에게나 글로벌로의 진출은 언감생심 도전의 마음조차 떠올리기 힘든 딴 세상으로 이질화, 고착화됐다. 이같은 업계 환경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 것은 2000년 8월 시행된 의약분업이었다. 몇백프로 할증을 주며 제값을 받지 못하던 기업들이 실거래가제 도입으로 제값을 받게되면서 현금을 쌓았다. 이렇게 쌓여진 돈은 마케팅이란 명목으로 시장에 풀려나가며 불법 리베이트라는 굴레를 만들어 스스로 목에다 썼다. 지금은 이 굴레를 벗으려 몸부림치는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도 몇몇 기업은 개량신약이다, 국산신약이다며 R&D를 했지만 대세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미래가치 현금화엔 아픔도 따른다…김성욱 사장이 그 경우일지 모른다
2012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행한 정부의 일괄약가인하 정책은 의약분업 10여년 잔치를 끝내는 신호탄이 됐다. 아니 과거로부터 이어온 내수형 비즈니스에 조종(弔鐘)이 울렸다. 모두, 함께 풍요로웠던 터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한 여름밤의 꿈처럼 몽롱했던 풍요속에서 잠자던 제약 1, 2세대들의 배고픈 모험 유전자'들이 그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에게서 도전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기업마다 늘어나는 R&D 투자액이나, FDA 허가 절차를 밟는 꽤 많은 파이프라인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될성부른 외국 기업에 투자를하고, 글로칼리제이션이란 화두를 던지며 외국에 기업을 사들여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R&D 투자 그 자체를 비판할 수 없어 인사치레로 '잘한다'고는 했던 제약업계 관객들은 최근 한미약품이 계약금만 500억원을 받는 계약을 성사시키자 크게 박수를 쳤다. 동시에 자극도 받은듯 보인다. 한미약품은 '제약산업= 미래가치'라는 사실을 입증, 여러 상장제약사들의 주가를 견인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미래가치를 현금화하는 도전'에는 환희보다 아픔이 더 많이 따른다. 젊은 2세로서 누구 못지 않게 R&D에 몰두했던 김성욱 한올바이오파마 대표가 이 경우에 속할지 모른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제약회사로서 특허 출원이 많았던 한올바이오파마의 경영권은 얼마전 대웅제약에게 넘어갔다. 창업 2세로 의욕에 찼던 젊은 김성욱 사장이 심었던 신약의 씨앗과 꿈은 이제 글로칼리제이션을 외치며 세계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웅의 꿈과 하모니를 이루게 될 것이다. 산업계의 시각으로 보자면 '의미있는 좌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와 두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을 때 보여줬던 진정어린 그의 눈빛을 떠올리면 안타까움이 먼저 든다. 그는 희귀의약품을 국내 제약기업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통로로 봤다. 해서 희귀약 허가를 받아 적응증을 확대하는 방법을 전파하는 전도사였다. 기존에 나와있는 물질들도 새 아이디어로 연결하면 부가가치가 생성될 것으로 확신했으며, 국내 기업들이 R&D를 통해 반드시 퀀텀점프를 할 수 있다고 흔들림없이 믿었던 인물이었다.
지금 1000조원이 넘는다는 세계 의약품 시장은 다국적 제약기업부터, 한가지 혁신 아이템으로 고군분투하는 버추얼기업까지 각축장이나 다름없다. 액면으로 말해,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점령한 유리한 고지는 없다. 특히 신약개발의 뉴 트렌드 근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잠자고 있던 도전과 모험의 유전자가 깨어나 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약개발의 첨단영역은 아니더라도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총 동원해 무엇인가 해보려 안간힘 쓰고 있다. 거의 모두 자기방식대로 칼을 갈고 있다. 이렇게 형성돼 가는 분위기에서 아래로부터 올라온 보고서 대신, 유럽의 거대 제약기업을 느끼고 배워보겠다며 제약계 젊은리더들이 기꺼이 떠난 것 역시 깨어나는 유전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에 젊은시절, 의지 하나 만으로 독일 훽스트사에 매일 출근하던 김신권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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