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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세 원장님, 이러다 국산신약 다 끝장납니다"

  • 조광연
  • 2015-06-29 06:15:00
  • 공개편지| 시벡스트로 논란을 보며 손명세 원장께

손명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님. 느닷없이 공개 편지를 쓰는 건 '심사평가원의 정책적 선택과 연관돼 있는 국산신약 항생제 시벡스트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입니다. 시벡스트로가 직면한 문제는 사실 제약산업이 안고 있는 오늘의 문제이자, 미래 방향성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앞으로 개별 국내 제약회사들이 신약개발 R&D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문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아시겠지만, 시벡스트로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가능성이 큰 항생제라고 합니다. 동아에스티가 신물질을 발견, 미국의 기업과 함께 개발해 글로벌 시장 판매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신약입니다. 항생제 내성균을 치료할 수 있다하여 슈퍼항생제로 불립니다. 그동안 이 시장의 최강자였던 다국적사 '자이복스'와 견줘 안전성이나 유효성 면에서 못할 것이 전혀 없으며, 되레 그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입니다. 100%는 아니어도 이런 물건을 우리나라 제약회사가 해낸 것입니다.

한데 상업화 단계서 제일 중요한 약가 문턱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용을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해 간략하게만 설명드리겠습니다. 동아에스티는 3월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에 시벡스트로의 급여여부와 가격을 신청했습니다. 워킹데이가 120일, 대략 4개월이니 7월중에는 약평위 심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한데 이게 8월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며 업계가 우려를 내놓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인 동아에스티는 쉬쉬하는데, 다른 제약회사 약가담당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양상입니다. 다들 제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7월과 8월' 별차이 없어 보이는데 무슨 문제냐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한데 심사평가원이 급여등재여부를 가리기 위해 7월에 급여평가를 하느냐, 8월에 하느냐에 따라 시벡스트로의 운명과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는 크게 달라진다는 겁니다. 심평원이 신약의 약가를 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대체약제 가중평균가'의 변동 때문입니다. 예컨대 대체약제라는 자이복스가 작년 경쟁 제네릭 등재로 1000원(예시)에서 700원으로 떨어졌고, 가격인하 2년차를 맞는 올해 7월 이후 535원으로 제네릭과 동일한 가격이 됩니다. 시벡스트로는 7월에 약평위 평가가 이뤄져 등재되면 700원이 기준선이 되고, 8월에 심사 등재되면 535원이 기준선이 됩니다.

건강보험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경제성과 효율성을 최대한 높여 사용하는 게 심사평가원의 근본 미션이고 보면, 8월로 급여등재 심사를 미루는 것을 마냥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리혀 박수를 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비록 국내 시장이 크지 않아 동아에스티의 내수 매출도 크지 않을 것으로 추청되며, 따라서 시벡스트로 약가심사를 8월로 미뤄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더라도 금고를 단단하게 책임지려는 태도는 보험 가입자들에게 꽤나 미덥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수를 벗어나 글로벌 진출이라면 이야기의 스케일이 달라집니다. 신약개발 국가에서 낮은 약가를 받았는데, 이를 받은 약가보다 고가에 사줄 나라는 지구상 어느 나라도 없습니다. 7월과 8월의 차이는 이래서 중요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라기관인 심평원에겐 '정책적 판단'이라는 중책이 맡겨진다고 하겠습니다. '워킹데이 120일을 조금 넘기는 게 뭔 대수냐'는 인식을 뛰어넘어 국내 제약산업, 나아가 국가 성장산업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2월25일 한국제약협회 총회에서 원장님의 축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심평원이 보유한 (빅데이터 등의) 역량을 갖고 협력하겠다"고 말씀하셨죠.

차세대 항생제는 얼마 받을 생각으로 개발해야 합니까

원장님 말씀과 산업에 대한 그 의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주력 산업이 중국 기업들에게 모두 따라잡히는 상황에서 그래도 해봄직한 산업이 남아있다면 바로 1000조원이 넘는 의약품 산업일 것입니다. 해서 정부도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신물질 탐색부터 임상개발, 허가, 약가, 병원 등재, 판매까지 모두 관리돼야 국산신약의 활로가 생기는 탓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산신약은 어땠습니까. 아시다시피 신약개발 R&D에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하면서도 상업적 성공엔 등한시 한 게 사실입니다. 낮은 약가 역시 등한시한 것들중 하나입니다.

지금처럼 대체제 가중평균가를 기준삼아 국산신약을 저울에 다는 시스템을 '창조를 위한 파괴적 시스템'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국산 신약, 나아가 국내 제약산업은 고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장님 혹시 아시나요? 국내 제약회사들 사이에서 '국산신약 가격정책은 신차 가격을 중고차 가격에 맞춰 책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탄식' 말입니다. 자이복스는 아주 오랫동안 특허로 보호받으며 국내시장에서 누릴 것 다 누린 제품입니다. 한데 국산신약, 그것도 블록버스터 가능성이 높다는 세계적 신약을 '자이복스와 그 제네릭 가격'에 맞춰 책정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그리 온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렇다고 한다면 국내 제약회사들은 신약을 개발할 동기마저 잃게 됩니다. 예컨대 최근 감염병 치료제, 즉 항생제 개발이 세계적 트렌드로 재부상했다지만 국내 가격정책 아래서는 어느 누구도 개발에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자이복스가 100% 가격을 받다가 제네릭이 나와 53.5%로 떨어지고, 시벡스트로가 53.5%를 기준으로 약가를 받고 시간이 흘러 시벡스트로의 제네릭이 나온다고 쳤을 때 다음번 항생제는 대체 얼마를 목표로 삼아 신약개발을 해야 할까요. 계산이 나오지 않습니다. 동아에스티가 시벡스트로를 개발할 때 목표했던 가격은 아마도 자이복스의 100% 가격 혹은 그 이상 이었을 겁니다. 지금처럼 8월 약평위 평가같은 이야기 때문에 자이복스의 53.5% 가격을 받을 처지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신약개발은 고부가가치라는 믿음만 있었을 것입니다.

원장님, 시벡스트로를 한 기업의 민원으로 가벼이 처리하고자 한다면 필연 제약산업과 국가의 불행이 될 것입니다. 워킹데이 120일만 지켜도 될 문제를 7월이네, 8월이네 하는 논란까지 나오도록 한것 자체가 제약산업육성법까지 만들며 국내 제약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워보려는 사회적 대의와 견줘 너무 옹색하기만 합니다. 기업에게 R&D를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은 이윤의 원천인 약가일 것입니다. 국산신약에게 특혜를 부여하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건보재정과 산업의 미래를 균형잡히게 바라볼 수 있는 정책 결정자들의 재량 안에서 바람직한 선택을 이야기 하려는 것입니다. 7월과 8월 조차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사회라면,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 같은 말은 그저 허무할 따름입니다.

제약산업에 대한 원장님의 관심만큼, 부디 재정 중심의 경제성 판단 못지 않게 산업도 함께 아우르는 정책적 판단을 검토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시벡스트로 뿐만 아니라 국산신약 전체와 관련된 정책적 판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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