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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이 들려주는 '남산의 숨은 역사'

  • 노병철
  • 2022-10-06 06:00:00
  • 에세이 '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 아름다운 남산' 출간
  • 조선·대한제국·일제 거쳐 오늘날까지 남산의 역사적 현장들을 담아내
  • "71세, 이제 인생 3막 시작...민족의 역사·뿌리 알리는 데 열정 쏟고 싶어"

[데일리팜=노병철 기자] "나에게 남산은 사색의 공간이자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 고향이다. 어떤 날은 그저 남산의 풍경에 취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직도 남아 있는 오래된 흉터 같은 흔적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끝난다."

윤도준(71·사진) 동화약품 회장이 최근 출간한 '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 아름다운 남산'.

이 책은 지난 10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남산에 오르며, 그곳이 간직한 역사적 상흔에 대해 보고듣고 깨달은 점을 에세이로 담아냈다.

이제는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3시간여 동안의 남산 탐방은 조부 윤창식 회장(1890~1963)과 선친 윤광열(1924~2010) 회장과 교감의 시간이기도 하다.

고인(故人)들은 동화약품을 반석에 올린 1·2세대 창업·기업가로 조국 광복을 위해 군자금 모금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펼친 애국지사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본 남산 전경, 겸재 정선의 작품 목멱조돈(아침 해 돋아 오르다), 인왕산에서 바라 본 남산 전경.
남산에 자리한 유적으로는 1396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목멱산 자락 도성과 봉수대, 1877년 개항 후 일본 공사관으로 사용된 녹천정, 1900년 대한제국 황제의 군통수권 상징인 장충단, 1934년 세워진 노기신사(노기 마레스케 일본 장군 제사단) 그리고 겨레의 꽃 무궁화동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남산은 옛 중앙정보부 등 근현대적 발자취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상흔의 역사를 더 많이 품고 있다.

저서의 제목 '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는 조선시대 문신 이덕우가 어명을 받고 규장각 문신들과 한양의 모습을 그린 '성시전도시(城市全圖詩)' 중 남산을 묘사한 구절을 인용했다.& 160;

책은 △남산 역사 탐방의 시작 △조선 시대의 목멱산 △대한제국 시대의 남산 △일제 강점기의 남산 △광복 후의 남산 △군사정권 시대의 남산 △오늘날의 남산으로 구성됐다.저자는 남산에 얽힌 어두운 역사를 하나 둘 씩 찾아보고 알게 된 것을 3년에 걸쳐 살뜰히 정리, 실제 탐방을 할 때처럼 독자에게 직접 들려주듯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간다.

과거 남산에 있던 시설이나 건축물이 어떤 이유로 지어졌는지, 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변천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당대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외에도 현재 남산에 있는 시설물과 도로를 표시한 지도, 시설물과 권역의 변천을 정리한 연대표를 수록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남산타워, 케이블카, 야외식물원…. 이처럼 남산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많지만 정작 남산에 감춰진 역사적 진면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진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산의 조선총독관저 전경을 담은 조선명소 사진엽서, 박문사 전경, 무궁화동산에 핀 겨레꽃 무궁화, 조선신궁 표참도 계단에서 신궁 입구 쪽을 내려다본 풍경.
"어느 순간부터 남산은 서울을 상징하는 명소가 됐다. 과거 서울 구경을 하러 온 시골 사람들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남산타워를 꼽았던 것처럼,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인정하는 관광 명소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의 남산이 되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것이 바로 제가 남산에 대한 책을 쓰게 된 이유다."

고요하기만 하던 남산이 수난의 시대로 접어든 시기는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조선이 문호 개방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일본은 통감부, 총독부, 신사, 신궁 등 주요 행정기관과 종교시설을 곳곳에 세웠고 강제 병합 후에는 기존에 조선이 세웠던 시설물을 없애거나 용도 변경하길 서슴지 않았다.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묘지였던 장충단을 강제 병합이 되자마자 폐사하고 공원화한 다음 병합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딴 박문사라는 사찰을 세운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해방 후에도 남산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가 남기고 간 시설을 전용했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불타버린 자리에는 여러 권력기관이 다시 들어섰다.

그 밖에도 전쟁 후 살 곳을 찾아 몰려드는 피난민에게 점유되고, 정권에 따라 권력의 상징물이 들어서거나 경제 개발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훼손되는 사태도 벌어지면서 남산은 점점 망가져 갔다.

다행히 50여 년 전에 시작된 산림녹화사업을 시작으로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 남산은 이제 서울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관광지이자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를 이야기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차분하고 냉정하거나, 쉽게 흥분하고 뜨겁거나. 저자는 후자에 속한다.

남산 탐방로 전도.
책 속에서 저자는 남산의 역사를 설명하던 중 암울했던 부분을 이야기하다가 울분에 가득 차기도 하고, 관광지 개발에만 역점을 둔 탓에 그 이외 부분에서는 관리가 소홀하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바로 이뤄지기 어려운 남산의 보전계획안을 과감하게 제안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민족의 역사, 즉 뿌리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신조를 설파하면서, 아주 오래전부터 보고 살아온 남산이 잘 보존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산의 관리나 역사 알리기가 좀 더 발전하기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희망을 논한다. 푸르른 남산이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이라도 뿌리를 내리고, 그 산을 마음에 품은 젊은이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약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의 인생 1막은 대학병원 교수였고, 2막은 기업인으로 일해 왔다. 이제 70에 즈음해 남은 인생 3막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뿌리를 알리는데 열정을 쏟고 싶다."

한편 윤도준 회장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동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 경희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 정신과 과장 역임했다. 현재 동화약품 회장,& 160;가송재단 이사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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