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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의료기기 해외진출, 허가보다 안착이 진짜 성적표

  • 황병우 기자
  • 2026-09-08 06:00:42
  • 요약

[데일리팜=황병우 기자]국내 의료기기 기업의 해외 진출 소식에는 어김없이 숫자가 따라붙는다. 

몇 개국에서 허가를 받았는지, 수출 지역을 얼마나 넓혔는지가 대표적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글로벌 사업도 순항하는 것처럼 읽힌다.

하지만 허가 국가는 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을 뜻할 뿐, 제품이 실제로 팔리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첫 공급이 이뤄졌다고 해도 현지에 안착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추가 주문과 장비 가동, 유지보수로 이어져야 비로소 지속 가능한 시장이 된다.

최근 미래컴퍼니의 반기보고서를 살펴보면서 이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수술로봇 레보아이는 해외 10개국에서 인허가를 확보했지만 실제 공급이 이뤄진 국가는 6개국이었다. 허가와 공급 사이에 아직 건너야 할 구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미래컴퍼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국내 의료기기 기업 대부분이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현지 허가를 받은 뒤 유통사를 선정하고 의료진을 교육해야 한다. 장비를 설치한 이후에는 유지보수와 임상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첫 계약보다 후속 공급이 더 어려운 이유다.

삼성메디슨이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에서 점유율 9%대로 글로벌 4위를 이어가는 것도 단순한 수출국 확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존 설치 기반과 제품군, 현지 영업·서비스망이 함께 작동해야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끌어올릴 수 있다.

디알텍 역시 수출 비중 확대와 함께 일본·중국보다 미국·유럽·중동·인도 등 전략 시장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해외 사업의 무게중심이 진입 자체에서 어느 시장에 자원을 투입하고 성과를 남길 것인지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기업의 해외 성과를 설명하는 지표는 여전히 허가 국가 수와 첫 수출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 공급 국가와 설치 대수, 추가 주문 여부, 현지 매출의 지속성은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업마다 계약상 공개하기 어려운 정보가 있겠지만, 허가와 공급을 구분하지 않으면 시장은 해외 진출의 가능성과 성과를 혼동할 수밖에 없다.

해외 허가는 분명 중요한 성과다. 까다로운 규제 절차를 통과했다는 의미이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허가증이 스스로 매출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지 의료진이 제품을 계속 사용하고 유통사가 다시 주문하며 기업이 사후관리까지 책임질 때 허가는 사업으로 이어진다.

이제 국내 의료기기 기업의 글로벌 성적표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몇 개국의 문을 열었는지를 넘어 그 가운데 몇 곳에서 제품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 첫 공급 이후 시장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허가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첫 공급은 출발을 알린다. 해외 진출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그 시장에 얼마나 오래 남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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