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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데스크 시선] 7천개 약가인하의 찜찜한 민낯

  • 천승현
  • 2023-08-30 06:15:54

[데일리팜=천승현 기자] 오는 9월 5일부터 국내 제약업계에 대규모 약가인하가 시행된다. 제네릭 의약품 7387개 품목의 보험상한가가 최대 28.6% 인하되는 초유의 사건이다. 지난 3년 간 추진한 제네릭 약가재평가의 검토 결과 시행되는 약가인하다. 2020년 6월 보건복지부는 최고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제네릭은 올해 2월말까지 ‘생동성시험 수행’과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자료를 제출하면 종전 약가를 유지해주는 내용의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 계획 공고를 냈다.

제네릭 약가재평가는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새 약가제도를 기등재 제네릭에 적용하기 위한 정책이다. 개편 약가제도에서 제네릭 제품은 생동성시험 직접 수행과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최고가를 받을 수 있다. 한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상한가는 15%씩 내려간다. 2개 요건 모두 충족하지 못하면 27.75% 인하되는 구조다.

총 182개 업체의 제품이 약가인하 대상에 포함됐다. 사실상 국내제약사 대부분 약가인하를 감수한다는 얘기다. 100개 이상 약가가 인하되는 업체도 5곳에 달했다.

약가인하 의약품은 인하율을 보면 14~15%가 6374개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최고가 요건 1개를 충족하지 못해 약가가 내려가는 사례다. 약가인하 의약품 중 인하율이 20%를 상회하는 제품은 153개에 달했다. 이중 127개 품목은 약가인하율이 27%가 넘었다. 기준요건 2개 모두 충족하지 못해 인하율이 높아진 제품이 100개가 넘었다는 얘기다.

이미 유통업체와 약국가는 약가인하 제품의 반품을 두고 초비상이 걸렸다. 유례 없이 많은 의약품의 약가인하로 당분간 유통 현장은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무더기 약가인하로 인한 혼란의 책임은 정부가 가장 크다. 약가인하 방식이 너무 무모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생동성시험은 제네릭을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등성을 입증하기 위한 허가 용도의 임상시험이다. 단순히 생동성시험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가를 깎는 방식은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이다.

정부가 생동성시험을 약가 유지 요건에 포함하면서 이미 막대한 사회적 비용 낭비가 초래됐다. 제약사들은 약가 유지를 위해 적잖은 비용을 들여 생동성시험을 진행하면서 비용 지출도 크게 증가한 상태다. 제약업계는 이미 정부로부터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고 문제 없이 판매 중인데도 단지 약가 유지를 위해 또 다시 적잖은 비용을 들여 생동성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불만이 팽배하다.

하지만 제약사들도 수천개 약가인하로 인한 혼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보건당국은 오는 9월 약가인하로 연간 2978억원의 건강보험 절감 효과를 기대했다. 품목당 연간 4000만원 가량의 손실을 입는다는 의미다. 제약업계 입장에선 연간 2978억원의 영업이익이 증발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약가인하로 인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평균 약가인하율을 15%로 가정한다면 이번에 약가가 떨어지는 의약품의 연간 처방액은 약 2조원 가량으로 계산된다. 품목별 평균 처방액이 3억원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이번에 약가가 내려가는 제품 대부분은 매출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이번 약가인하 의약품 중 허가 받은 이후 판매 실적이 전혀 없는 제네릭은 1000개는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고가 요건 2개를 모두 충족하지 못해 약가인하율이 27%가 넘은 제품 중 상당수는 판매실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사들은 정부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팔 계획도 없는 제품을 무차별적으로 장착하는 ‘묻지마 허가’를 진행했다. 지난 5월 미생산 미청구 의약품 300여개 품목이 급여목록에서 삭제됐는데 2019년과 2020년 허가받은 제품이 70%에 육박했다. 허가받은 지 4년에도 못 미치는 신제품이 판매 실적 없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2019년과 2020년은 유례 없이 많은 제네릭 허가가 쏟아진 시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전문의약품 허가건수는 2018년 1562개에서 2019년에는 4195개로 2배 이상 급증했다. 2020년에는 2616개로 2년 전보다 67.5% 늘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1600개, 1118개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2019년과 2020년 전문의약품 허가 폭증은 정부의 규제 강화 움직임이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된다. 당시 불순물 발사르탄 의약품의 무더기 판매중지 이후 정부가 제네릭 규제 마련에 착수했고 이때 제약사들은 위탁 방식으로 제네릭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이후 팔지도 못한 제네릭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상당수 제품은 시장에서 팔리지도 않는데도 약가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팔지도 않을 의약품의 허가에 소요된 인력과 비용, 팔지도 않을 의약품의 허가 심사에 투입된 인력과 비용, 판매된 적이 없는 의약품의 약가인하를 위해 투입된 에너지 등 모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낭비다. 결국 전문성이 결여된 정부 정책이 근시안적인 제약사의 욕망을 만나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 낭비가 초래되는 이상한 현상이 연출됐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상이 너무나 이상하다. 국내 제약업계의 찜찜한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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