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약국과 약사, 이왕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
- 조광연
- 2012-05-07 12: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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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는 가끔 얼굴을 내미는 신통찮은 아들을 곁에 앉혀 두고 이런 저런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신다. 동네 대소사부터 심지어 어젯밤 꾸신 꿈이야기까지 안방 드라마 탤런트들처럼 실감나게 말씀하신다. 보통은 "네, 그러셨군요"하며 애써 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간 무심했던 아들의 죄를 덮으려 하곤 했었다. 묻혀버렸던 그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유독 부끄럽게 만들었던 '한편의 이야기'가 최근 뜬금없이 떠올랐다.
몇해 전 주부습진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는 진물나는 손을 보여주시며 "고무장갑을 껴도 설겆이를 못하겠다" "스치기만해도 쓰리다"고 하소연하셨다. 딱히 할말이 없던 차에 "병원엔 가보셨어요"라고 퉁명을 부렸으나 들으셨는지 못들으셨는지 어머니는 "약국에 갔었는데 이쁘게 생긴 약사님이 '얼마나 아프실까. 병원에 가셔야하는데'라면서 손을 덥썩 잡아 민망했다"고 하셨다. "옮으면 어쩌려구하며 손을 뺐더니 더 꼭 잡으며 곧 나으실테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하더란다. 신바람이 나신 어머니는 "글쎄, 그 약사님이 '점심 못하셨죠? 추어탕 사드릴게요' 해서 또 찡했다"고 하셨다. 민망했다.
짓무른 어머니 손을 잡아주었던 '그 약사님'
주말이나 휴일, 약국 문을 닫았을 때 소화제나 감기약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소비자 불만은 이명박 대통령의 감기약 발언과 대중매체를 통해 필요이상 증폭된 끝에 2일, 약국 밖에서 의약품을 팔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으로 관철됐다. 이름하여 가정상비약의 편의점 판매를 허용한 약사법이다. 약사법 개정과 관련한 논란의 한 가운데서는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해서는 어떤 의약품이든 약국 안에서, 전문가인 약사 아래서 관리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할수록 약국의 부정적인 모습도 비례해 폭로되다시피했다. 약국이 복약지도를 하지 않는다거나, 의약품관리료를 줄여야 한다거나 같은 이야기들이 부풀려짐으로써 약사 사회는 이중삼중 상처를 입었다. 반면 설날이나 추석같은 명절에 소비자들의 불편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겠다며 설날 차례상을 채 물리기도전부터 썰렁한 약국에 앉아 고군분투했던 약국의 노력과 '어머니의 짓무른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던 '이름없는 약사의 58년 헌신들'은 묻혀버렸다.
약국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매일 매순간 입이 부르터라 복약지도를 했던 약국이나, 온종일 문을 열어도 서너장의 처방전을 받기 힘든 동네약국들에게 이번 약사법 개정안 통과는 더 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대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기에 약사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인 의약품을 빼앗아 편의점에 넘기는지 당사자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약국들이 골목 골목 많은 나라에서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약을 먹여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인지 그 한계점마저 도무지 알길이 없는 상황이다. 가정상비약 편의점 판매를 허용한 약사법이 급히 상비약을 구입해야하는 상황만 소극적으로 커버하게 될 것인지, 이참에 돈벌이를 해보려는 유통업체의 감춰진 욕망에 따라 또 어떻게 춤을 추게 될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들다. 약사사회 스스로도 "처음이 어렵지 앞으로 더 빗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을 심히 우려한다"고 보고 있다.
어떤 종류의 분노와 우려가 상존하든 가정상비약 편의점 판매는 현실이 됐다. 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예정대로라면 11월께 법은 시행될 것이다. 당연히 가정상비약을 전국적으로 깔아놓은 정부라면, 이번 법의 관철을 위해 일로매진했던 정부라면 의약품 안전 대책 마련에도 그에 못지 않은 열과 성을 기울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의약품을 돈 되는 상품군으로 만들려는 유통자본의 요구가 나오지 못하도록 가정상비약을 최소화하려는 자세도 명확히 해야한다. "약사분들께서 대승적 결단을 해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했다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약사회도 마찬가지다. 100만인 서명운동을 비롯해 가정상비약 편의점 판매법을 막기위해 백방으로 뛰었다고는 하나 나타난 결과는 약사 회원들의 정서와 크게 다른 것이다. "어쩔수 없었다"는 상황논리를 더는 앞세우지 말고 석고대죄의 결심과 자세로 미래를 열어가는데 용감하게 앞장서야 한다. 우선 전문카운터, 면허대여 약국,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 등을 척결하는데 나서야 하며 대다수 약사회원들이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복약지도 등을 할 수 있도록 실무 지원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짓무른 손을 어루만지며 전문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했던 '그 따듯한 약손'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편의점은 할 수 없을 때만…제대로된 약은 약국에서"
개인 약사와 약사사회 공동체 역시 안전한 의약품의 파수꾼으로서 대반전의 꿈을 꾸어야 한다. 충분히 실천 가능한 꿈이라고 믿는다. 실제 일부 문제 약사들이 언론 등을 통해 집중 부각돼 그렇지 실상은 묵묵하게 약사 전문인으로서 역할에 헌신해 온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편의점의 역할을 줄여놓는 일이다. 그야말로 약국이 문을 닫는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만 가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거꾸로 의약품과 관련해 전문적인 정보를 얻는 등 의약품을 제대로 구입하려면 '약국 가야한다'는 통념이 일상화되도록 개별 약사는 물론 약사 사회 전반이 한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약사법이 제정된지 58년동안 약국에서만 약을 구입해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의식이 흐트러지기 전에 신속하게 이같은 트렌드를 완성시켜야 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가정상비약 편의점 판매 약사법 국회 통과를 계기로 그동안 해왔던 전반적인 약국 운영도 되짚어 보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듯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내 약국의 모습은 어떤지 밖에 나가 소비자의 눈으로 살펴보고, 고객이 약국을 방문했을 때 어떻게 맞이하고, 고객이 의약품을 요구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소비자를 길들이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편의점은 약국과 어떻게 다른지도 엿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명절이나 주말, 늦은 밤 더는 약국 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같은 고민은 이제는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차라리 휴식하면서 지금보다 한차원 높은 고품위서비스를 개발하고 실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편의점 서비스를 압도해 나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더 유용해보인다. 편의점은 눈에 띄기 쉬운지는 몰라도 짓무른 손을 잡아주지 못하며, 열나는 환자의 이마를 진심으로 짚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몇년간 흐르면 편의점은 고속도로 휴게소 상비약 코너처럼 최소한의 역할존으로 변모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오늘의 문제를 바라본다고 해도 약국에서만 약을 팔도록 했을 때 보다 닥쳐올 현실은 훨씬 무거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분노를 삼키고, 차갑게 반격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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