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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령약사의 전직…그들은 '장그래'가 아니다

  • 조광연
  • 2015-03-13 06:14:52

"참 좋겠다, 넌. 나오는 월급 또박또박 받으니. 월말이 다가오면 잠이 안온다, 난. 직원들 월급, 이번 달엔 어떻게 넘기나 생각이 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먹다가도 입맛이 싹 달아난다." 대부분 직장인인 친구들 사이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대접 받아온 그의 말은 좀 헷갈린다. 자랑인지, 진심인지 분간할 재간이 없어서다. 종종 모임의 밥값을 계산했던데 은근 영향을 받았는지, 그의 상황에 공감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들곤 한다. 그러다가도 불쑥 "그럼 직장 다녀, 임마. 누가 시켰어?"라는 말을 돌려주고 싶기도 한데 의식적으로 입을 꼭 다물어 참는다. '친구라면, 마땅히 그 정도 투정은 들어줘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까지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상황에 놓인 타인보다 자신의 처지에 더 연민을 갖는다. '사장, 직원마음 몰라요, 직원, 사장 마음 몰라요.'

경영이 신통치 않은데다, 약국을 변신시켜 새로운 수익모델을 도모하기엔 나이들고 벅차다고 느끼는 나홀로약국의 고령 약사들이 최근들어 근무약사로 돌아서고 있다고 한다. '내 것, 내 사업장'을 중히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볼 때 'CEO 약사들'의 전직(轉職)은 일단 '문만 열면 평생직장'이라던 약국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는데다, 약국 숫자도 많아져 그 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처방조제가 약국의 주된 일이 되고, 관련한 정책 변경에 따른 후속조치를 빠르게 수행할 수 밖에 없는 환경도 고령의 약사들에겐 버거운 현실이다. IT에 기반한 일은 아예 손을 놓은지 오래다. 좋은 목을 차지하는 것 역시 움켜쥐고 있는 자본의 크기 만큼 기회가 주어지는 게 자본주의 시장의 이치여서 그만 그만하게 약국을 하며 세월을 보낸 고령의 약사들에겐 어찌해보기 힘든 장벽이다. 자칫 모아 놓은 돈 한번에 잃을까 요모조모 재볼 뿐이다. 다행인 건 국가가 준 면허를 가진 전문직업인인지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확실한 취업처가 그나마 열려있다는 점이다.

약국을 접고 직장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약사들과 이들을 받아들이는 곳의 외견상 이해관계는 찰떡궁합이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발길 뜸한 환자를 기다리고, 의약품 구입과 결제, 재고정리 및 반품 등 장시간 약국에 매여 점심한번 편히 못먹고 일하지만 정작 손에 쥐는 건 언제나 충분하지 못한 현실의 약사들이 정해진 시간 맡겨진 일만하고 퇴근하는 직장에 새삼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내 판단대로 하고 싶은 직장인들'의 자영업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처럼 말이다. 반면 총명하고 빠릿빠릿한 젊은 근무약사를 도저히 구하지 못하는 약국이나 지방 중소병원 약제부는 '오래된 고충'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고령 약사들을 고용하겠다며 나섰다. 약사를 의무적으로 1명 이상 둬야하는 요양병원들은 직장인이 되고 싶어하는 고령의 약사들에게 기회의 직장으로 떠올랐다. 모두 자기 약국 하기를 고집함으로써 나타났던 약사 취업시장의 경직성이 풀려 약사인력이 선순환되기 시작하는 징표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 현상이다.

변화엔 예기치 못한 일도 벌어진다. 취업에 나선 고령의 약사들이 누구인가. 평생 자기 약국 안에서 그들 만의 신념 또는 고집을 관철시켜온 사람들이다. 그의 지배공간에서 누구로부터도 이견이라곤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내 신념보다 공통의 목표를 우선하는 조직과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취약점을 그들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일까? 중소병원 약제부장이나, 약국들은 가급적 문제를 덜 유발시킨다고 판단하는 조제업무에 이들을 투입한다. 갈등 최소화를 통한 조직 안정화 조치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불편한 기운을 만든다고 푸념한다. 직장에 먼저 들어와 기득권이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근무자들도 전직 고령약사들이 조직의 문화나 위계 보다 나이를 앞세워 멋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불평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약사로서 경력이 풍부해도 낯선 조직에선 서툴 수 밖에 없고, 나이 어려도 특정 업무에선 그들이 더 전문가라는 점을 알고 이해하기에 그들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다. 그러면 해법은 또 소통이란 말인가? 추상적 용어인 소통이 실천적 소통으로 가는 첫 출발점은 고용자들이 고령약사를 조제업무에 한정하거나 그들을 '장그래'로 인식하는 편견부터 깨는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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