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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그 약사가 한말은 "뭐 필요하대요" 뿐

  • 김지은
  • 2017-01-05 06:14:51

새해 첫날 체기가 있어 집을 나섰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 문 연 약국이 있을까 싶어 당황하고 있을 즈음 반가운 불빛이 눈에 띄었다. 주말인데다 신정 연휴였던 만큼 기대치 않던 터에 왈칵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고마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뭐 필요하대요?" 늦은 시간 찾아온 불청객 때문이었을까. 약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한껏 귀찮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증상을 이야기하자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별다른 말없이 약장에서 약을 꺼내와 건넨 약사는 '식후 하루 세 번'이란 한마디에 곧바로 손을 내밀며 약의 가격을 불렀다. 약국을 들어서 나가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객이 '을'이 돼 버린 순간, 어찌보면 묻고 또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태를 이야기하고 그의 조언을 들으며 더 맞는 약, 더 많은 정보를 그의 입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이다. 손쉽게 휴대폰에 검색해 찾아볼수도 있었지만 전문가라는 약사에게서 듣는 그 어떤 '말', 그리고 '소통'이 당시는 절실했던 것이다.

좋지 않은 기억을 굳이 꺼낸 것은 최근 만났던 한 약사회장의 말을 들으면서였다. 그는 "요즘 환자는 약국에서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미디어와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을 통해 넘쳐나는 정보를 쉽게 접하면서 약국 안에서 약사와의 소통을 환자가 스스로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약국이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이 절실하다"고도 했다. 그의 말에 무조건 공감할 수 없다.

약국 안에서 약사와 고객 사이의 소통이 절실하다는 그의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원인을 약국이란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환자'로 불리는 고객에게만 돌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고객 이전에 그들을 맞는 약사들도 소통을 위한 마음가짐이 돼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지난 한해 어느 때보다 불통이 가져오는 참담한 결과를 보고 느꼈지 않나. 한 국가의 리더가 고수한 불통의 대가는 가혹했고, 국민 자존심은 심각하게 망가졌다. 한마디로 국가, 사회 전체가 불통의 틀에 갇혀 경청과 이해를 상실했던 2016년이다. 소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꼭 말이 아니어도 상대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눈빛, 손짓, 경청만으로도 통할 수 있는 게 곧 소통이다. 환자가 돼 보니 약사가 건네는 따뜻한 눈빛, 경청, 몸가짐, 그리고 진심어린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한지 비로소 나 역시 깨닫게 됐다.

"이러니 약사들이 욕을 먹지!" 약국가만 10년 넘게 출입하고 취재하며 누구보다 약사를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그런 믿음이 새해 첫날 무너졌다. 그 약사 오늘 안좋은 일이 있었을까? 공연히 여러 생각이 겉돌았다. 그날 밤 에피소드는 '그러면 너는 어때?'라는 자문에 이르고서야 흐릿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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