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스페셜] 정부 정책 방향 건기식 시장 확대에 방점…부작용 문제 대두
특정 질환자 건기식 복용 확대…약·질환과의 상호작용 가능
약사, 판매보다 안전 관리에 집중해야…약사회 차원 연구 필요
[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약보다 더 나은 건기식’이란 인식은 약의 주인인 약사들의 일반의약품에 대한 무관심과 건강기능식품 규제 완화에 방점을 찍은 정부 정책 방향이 낳은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 관리, 예방에 대한 국민 관심을 높아지는데 약사가 이를 부응하기에는 약국 안 일반약에 대한 관심과 정부, 제약사, 약사사회 관심과 지원이 부족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 니즈를 반영한 건기식 시장은 날로 팽창해 가고 있고, 결국 약사 고유 권한이자 무기인 일반약을 위협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주지해야 할 점은 건기식은 의약품도, 식품도 아니라는 것이다. 건기식은 치료제는 아니지만, 동시에 의약품 또는 건기식 간 상호작용,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팽창해가는 건기식 시장에 대해 규제 완화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관리, 감독과 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건기식 규제 더 풀려는 정부…부작용 사회적 이슈로
건기식 시장이 주목받고 팽창하는 데는 정부의 정책 방향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몇년 간 정부는 건기식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 혁신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며 시장 확대 지원에 방점을 찍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9년 정부는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건기식 시장 활성화를 위해 ▲대형마트 백화점 등의 자유판매 허용 ▲건기식 원료 범위를 일부 의약품 원료까지 확대 ▲일반 식품에도 기능성 표시 허용 ▲건기식 광고의 허용 범위 확대 등을 규제 개선 과제로 선정했다.
2022년에는 식약처 규제혁신 100대 과제 중 건기식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방안을 포함하고 ▲건기식 소분조합 판매 허용 ▲대형마트, 백화점 등 건기식 영업신고 제외 대상 확대 ▲건기식 GMP 연 1회 정기평가 면제 ▲건기식 판매업자 교육의무 완화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런 방침과는 달리 범람하는 건기식으로 인한 부작용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는 실정이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건기식 관리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비자 보호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강기윤 의원실이 발표한 최근 5년 간 식약처 건기식 단속 실적 자료에 따르면 기준 및 규격위반, 품목제조신고 위반, 자가품질검사 의무 위반 등으로 제조가 정지되거나 제품이 폐기된 건기식은 310건이었다. 2019년 53건이었던 것이 지난해 상반기 110건으로 2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더불어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 간 증상별 건기식 이상사례 접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상사례 신고 건수는 5562건, 이상 현상이 발생한 사례는 8894건으로 조사됐다.
남인순 의원은 국감 중 건기식 성분 중 쏘팔메토 열매 추출물 제품의 생산·판매량이 급증하면서 거짓‧과장광고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건기식 관련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안전, 품질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강기윤 의원은 “식약처는 건기식에 대한 더 철저한 안전 관리와 함께 안전한 구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대국민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약사사회에서도 건기식의 무분별한 홍보와 판매가 곧 국민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도, 국민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역의 한 약사는 “건기식은 건강의 관리, 예방을 위해 복용하는 기능성 식품이지만, 건강하지 않은, 즉 특정 질환이 있는 환자가 복용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며 “건기식, 약 모두 양 조절이 문제인데 상대적으로 약에 비해 건기식은 많이 먹어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과용량이 되면 특정 질환이나 의약품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약사는 “소비자조차 자신이 복용 중인 약과 건기식을 함께 복용해도 되는지 여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건기식 관련 정부 정책이 위험도 평가, 안전관리가 아닌 규제 완화에 치중돼 있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건기식 약과의 '상호작용' 위험…약사·약학계 연구 절실
건기식 시장이 확대되면서 허위·과장 광고로 실제 제품이 갖고 있는 기능을 확대하거나 속이는 경우도 있지만, 약과 동일한 성분이거나 나아가 약보다 더 용량이 큰 제품이 생산, 유통되기도 한다.
그만큼 기능성 제품인 건기식이 소비자,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약과 건기식의 상호작용이나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가 건기식을 복용했을 때 이상반응이 나타날 경향이 높아졌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연구나 관리는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건강한 사람도 안전하지만은 않다. 건기식을 지나치게 고용량으로 섭취하거나 다양한 종류를 복용하는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건기식의 위험도 평가를 진행하고, 소비자 리포트 등을 통해 관련 내용이 소비자들에 홍보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어떤 주체도 이 부분에 대한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약사사회가 이 부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약의 전문가인 약사와 약학계가 건기식, 의약품의 상호작용, 건기식의 위험도 평가 등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약사사회가 비전문가와 동일하게 건기식 판매와 활성화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안전 관리, 감시 기능에 더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성곤 약학박사는 “고지혈증 환자가 특정 성분 건기식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의약품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나아가 질환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건기식은 복용 이력 관리가 되지 않다 보니 의사는 이 부분을 알 수도 없다. 최근에는 약과 동일한 성분, 심지어 약보다 용량이 더 큰 건기식 제품도 있는 데다, 건기식의 경우 장기 복용 경향이 높기 때문에 질환 형태를 변형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이런 부분에 대해 연구하고 소비자, 정부에 적극적으로 알릴 주체는 약의 전문가인 약사”라며 “약사를 대표하는 약사회가 건기식 성분별로 위험도 평가, 약과의 상호작용 가능성 등을 연구해 환자 안전을 위한 근거 자료를 확보하고 소비자에 홍보하는 한편, 정부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최근 약사 대상 교육을 보면 일반약, 건기식 판매 기법에 지나치게 치중돼 있고, 약사회 기조도 건기식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약사의 주역할은 약물 안전 감시에 있다. 환자, 소비자가 약이나 건기식을 많이 복용하게 하는 게 약사 역할이 아닌 안전하게 복용하도록 감시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