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스페셜] 늘어나는 미등재 특허와 흔들리는 허특 제도①
트라젠타 미등재 특허 8개 이상…모두 극복해야 제네릭 발매 가능
제네릭사, 숨은 특허 찾기 진땀…"허특제도 도입 전으로 돌아간 듯"
[데일리팜=김진구 기자] 오리지널사들이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허목록집에 특허를 등재하지 않는 사례가 점차 빈번해지는 모습이다.
이미 DPP-4 억제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리나글립틴)'를 둘러싼 특허 분쟁에선 미등재 특허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제네릭사들은 식약처 목록집에는 없는 숨은 특허를 찾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제네릭사들을 중심으로 마치 허가-특허 연계제도(이하 허특제도) 도입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 허가와 특허가 사실상 연계되지 않으면서 미등재 특허에 대한 광범위한 침해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 매년 100건 내외 신규 등재…“최근 미등재 사례 많아졌다”
2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허특제도의 핵심은 특허 등재를 통한 오리지널 약물의 특허권 보호다. 한미FTA 체결 이후 2015년 본격 도입됐다.
오리지널사가 의약품 특허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특허목록집에 등재하면, 몇 가지 혜택을 제공한다. 제네릭 품목허가 신청 사실을 통지받을 수 있고, 이후 45일 안에 판매금지를 신청하면 9개월간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제네릭 진입을 9개월 늦출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구조.
도입 과정에서 우선판매품목허가(우판권) 제도도 함께 마련됐다. 제네릭사가 오리지널사를 상대로 특허 심판·소송을 제기하고, 여기서 승리하면 같은 성분 의약품의 시장진입 없이 9개월 간 독점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런 이유로 제도 도입 이후 꾸준히 오리지널사들은 의약품 특허를 목록집에 등재해왔다.
식약처 의뢰로 작년 11월 제출된 ‘2022년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 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연도별 신규 등재 특허권 수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꾸준히 100건 내외로 나타났다. 신규 등재 의약품 수도 매년 100건 내외로 일정하게 유지됐다.
▲ 연도별 신규 등재 특허권 수.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오리지널사의 특허 미등재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신규 특허 등재 자체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나, 오리지널사들이 분할 출원 등의 형태로 특허권 수를 늘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특허가 등재되지 않고 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통계 자료가 없어서 얼마나 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체감상 최근 특허를 등재하지 않는 사례가 부쩍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형식적으로 한두 특허만 등재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특허청에 등록만 하고 식약처 목록집에는 등재하지 않은 채 숨겨두는 식”이라고 말했다.
"마치 고구마 줄기 같다"…트라젠타, 미등재 특허만 8개 이상
오리지널사들의 특허 미등재 경향은 최근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를 둘러싼 특허 분쟁이 본격화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4일 기준 트라젠타로 식약처 특허목록집에 등재된 특허는 총 6건이다. 물질특허와 용도특허가 각 2건씩, 제제특허와 결정형특허 각 1건씩이다.
이 가운데 물질특허 1건과 용도특허 2건은 이미 만료됐다. 제제특허는 제네릭사들이 소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을 통해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결정형특허 역시 제네릭사들이 특허분쟁 1심에서 승리해 무효화한 상태다. 이로써 등재된 특허는 단 하나만 남았다. 2024년 6월 만료되는 물질특허다.
▲ 트라젠타의 등재/미등재 특허 현황.
트라젠타 특허에는 제뉴원사이언스를 비롯한 7개사가 도전 중이다. 이들은 내년 6월 물질특허 만료 시점에 맞춰 제네릭을 조기에 발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미등재 특허가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8건의 미등재 특허에 심판이 청구됐다. 미등재 특허의 경우 제네릭사가 회피 혹은 무효화하지 않아도 제품을 허가받는 데 문제가 없다. 다만 실제 제품 발매는 사정이 다르다. 오리지널사와 특허침해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만약 오리지널사가 특허침해 소송과 함께 제품 발매를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경우 제네릭 발매 시점이 늦춰질 우려가 있다. 본안 소송인 특허침해 소송에서 패소하면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제네릭사 입장에선 제품 발매를 위해 미등재 특허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트라젠타의 미등재 특허가 8개 이상으로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베링거인겔하임은 또 다른 제제특허 1건을 특허청에 출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특허가 등록될 경우 9번째 미등재 특허로서 제네릭사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허들이 된다.
제약업계에선 이 외에도 트라젠타 미등재 특허가 1~2건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마치 고구마 줄기 같다. 캐면 캘수록 새로운 미등재 특허가 나타난다"며 "이미 알려진 미등재 특허 외에도 1~2개는 더 숨어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특허를 극복해야 하는 입장에선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제네릭사들 '숨은 특허 찾기' 진땀…오리지널사 미등재특허 반격 사례도
제네릭사 입장에선 숨은 미등재 특허를 찾는 게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특허목록집에 별도로 등재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특허 정보를 검색하고 관련 특허가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허청에 출원된 특허는 제품명 혹은 성분명으로 기입되지 않아 찾아내기가 까다롭다. 트라젠타의 미등재 용도특허를 예로 들면 '경구 또는 비경구 당뇨병 치료제에 의한 요법에도 불구하고 혈당 조절이 불충분한 환자에 있어서의 당뇨병 치료'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식이다.
▲ 트라젠타 용도특허 공개전문 중 일부 발췌. 발명의 명칭에 제품명(트라젠타)과 상품명(리나글립틴)이 포함되지 않았다. (자료 특허청)
제네릭사는 미등재 특허가 몇 건이나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몇몇 특허를 놓칠 우려도 있다. 이 상태로 제품을 발매하면 특허침해 소지가 크다.
실제 오리지널사가 미등재 특허를 무기로 제네릭사에 반격하는 사례도 나왔다. 노바티스는 지난 6월 셀트리온을 상대로 졸레어 제제특허의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을 청구했다.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이란, 특허권자가 자신이 보유한 특허를 침해당했는지 특허심판원에 효력 범위의 정확한 판단을 요구하는 행위다. 즉, 노바티스는 셀트리온이 개발 중인 졸레어 바이오시밀러 'CT-P39'가 자신이 보유한 미등재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제약업계 일각에서 허특제도 도입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목록집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가 더 많기 때문에 모든 특허를 모두 극복하고 제네릭을 발매하기가 까다롭다. 숨어있던 특허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목록집만 보고 특허에 도전해선 낭패를 보기 쉽다. 마치 허특제도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