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급여 확대시 약가인하 지속…환급률 차등 적용
어윤호 기자: 똑같은 항암제인데, 위암이냐, 간암이냐, 혹은 폐암이냐에 따라 약의 가격이 달라 진다고 하면 우리 사회는 이를 수용할 수 있을까요?
다국적제약사들을 대표하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KRPIA를 비롯한 유관 업체들이 우리나라에서 '적응증별 약가'제도 도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얼핏 듣기에는 허무맹랑한 얘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만 첨단 신약의 트렌드와 보장성 확대 문제를 생각하면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이슈포커스에서는 제약산업팀 김진구 기자, 그리고 정새임 기자와 함께 적응증별 약가와 이를 둘러싼 현안에 대해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김진구 기자, 적응증별 약가를 도입하자는 말이 정확히 무슨 얘기인가요? 정말 약의 적응증마다 전부 약가를 다르게 달라는 얘기인가요?
김: 모든 약에 적응증에 따라 별도의 약가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시스템상 어려운 일입니다. KRPIA를 비롯한 다국적제약사들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구요.
업계가 우선적으로 건의하고 있는 적응증별 약가의 형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위험분담계약제, 즉 RSA 대상약제로 범위를 한정하고 해당약제의 보험급여 기준 확대 시에 추가 적응증에 대한 '환급률'을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RSA 유형중 가장 계약 건수가 많은 환급형은 이중약가가 핵심입니다. 제약사들의 글로벌 약가 수준을 위해 어느정도의 표시가를 맞춰 주고 실제가를 정해서 나중에 차액을 제약사가 환급하는 방식인데요. 여기서 환급률을 추가되는 적응증의 가치를 평가해서 차등 부여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환급률이 달라지면 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본인부담률 범위 내에서 환자가 부담하는 최종 금액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요.
어: 아니, 그러면 신약의 최초 등재 가격보다 추가된 적응증의 약가가 더 높아 질수도 있단 얘긴가요?
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 KRPIA는 지난달 진행된 데일리팜 40차 미래포럼에서 "적응증별 약가 도입을 통해 약가 인상을 요구하는 업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적응증 추가시 인하폭에 대한 상향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라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기허가된 의약품의 적응증이 추가될 해당 적응증으로 예상되는 추가 사용량을 고려해 약가를 유지하거나 인하하고 있습니다. 적응증이 늘어나면 사용량이 늘어나니, 그에 맞춰 약가를 인하하기 때문에 급여기준이 확대될수록 약가는 점점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의 항암제들의 적응증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장 이슈되고 있는 면역항암제들만 보더라도, 스무개가 넘는 적응증 추가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현 약가제도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는 판단을 내린 셈입니다. 실제 이미 국내에서 급여 확대를 포기한 항암제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코리아 패싱'인 것이죠. 이같은 경향이 강해지면 결국 환자들이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어: 인하폭을 줄여달라는 것이 핵심이군요. 정새임 기자, 그런데, 1개 항암제가 다수의 적응증을 갖게 된 지는 이미 꽤 오래되지 않았나요? 왜 이제서야 적응증별 약가를 도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인가요?
정새임 기자: KRPIA와 다국적사들이 적응증별 약가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RSA 제도개편이 있습니다. 업계는 올해 'RSA 후발약제 진입 허용'이라는 숙제를 해결했습니다. 선발약제와 치료적 위치가 동등하면서 비용효과적인 약제(후발약제)도 이제 RSA 계약이 가능해집니다. 그동안 RSA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사실상 '퍼스트 인 클래스'여야 했기 때문에 후발 약물들의 등재가 쉽지 않았는데, 이같은 진입장벽이 사라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다른 장치를 추가했습니다. 후발약제 진입을 풀어주면서 RSA 약제의 급여 확대시 추가 적응증이 위험분담제 적용대상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비용효과성(투약비용비교 또는 경제성평가)을 입증토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얼핏보면 적응증별 약가와 RSA 급여확대 약물의 비용효과성 입증 정례화는 무관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까지 RSA 약물의 급여확대는 비용효과성 자료 제출없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급여기준을 잡고 건강보험공단으로 넘어가 늘어나는 환자수, 사용량 등을 고려해 협상을 진행하고 환급률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비용효과성을 심평원 단계에서 필수로 본다는 것은 투약비용이건, 경평이건 자료를 토대로 대체약제와 비교해 최저가를 받는, 즉 최초 등재와 동일한 잣대로 약가인하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후발약제 허용과 겹쳐지면 시너지를 내게 됩니다. RSA 등재 후발약이 많아질수록, 등재 적응증이 늘어날수록 당연히 최저가격이 기존보다 더 내려가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어: 후발약제 진입을 열어주는 대신 약가 면에서는 더 타이트한 족쇄를 채웠다는 얘기네요. 그리고 그 족쇄를 다시 느슨하게 하기 위한 방책이 적응증별 약가군요. 치열한 두뇌싸움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적응증별 약가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나요?
정: 예상하셨겠지만, 신중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실 적응증별 약가는 '1개 의약품에 통일된 보험약가를 부여한다'는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대전제를 수정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또한 급여기준이 확대될 때마다 늘어나는 재정부담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정부 역시 "도입 여부를 떠나, 세밀한 논의와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는 일관된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정부도 현재의 제도가 신약의 환자 접근성 차원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일정부분 공감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 네. 잘 들었습니다. 적응증별 약가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분명 다양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벌써 비급여에 머무르고 있는 약제 적응증이 쌓여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존재하지만 쓸 수 없는 약이 늘어나면 언젠가 환자들의 분노는 정부와 제약사를 향하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하루빨리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논의가 시작됐으면 합니다. 이상 이슈포커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