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젠·에자이 베타아밀로이드 항체, 긍정적인 탑라인 결과로 신약개발 기대감 고조
에자이와 바이오젠이 지난 5일(현지시각) 베타아밀로이드 항체 'BAN2401'의 2상임상 탑라인 결과를 공개했다.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856명을 18개월간 추적한 201 연구 결과, BAN2401 최고용량을 투여 받은 그룹의 질병진행 속도가 대조군 대비 유의하게 감소됐다는 긍정적인 결과다.
일라이 릴리, MSD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연달아 임상 실패를 경험하면서 존폐 위기에 처했던
아밀로이드 가설에 대한 기대감도 다시금 솟아나고 있다.
856명 참여한 2상연구, BAN2401 고용량 그룹 혜택 확인
201 연구는 경증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진단되거나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MCI)를 앓고 있는 환자 856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중맹검, 무작위배정, 위약대조 방식의 임상연구다. 연구진은 임상에서 알츠하이머병 평가척도로 사용되는 ADAS-Cog, CDR-SB, MMSE(간이정신상태평가)를 결합해 새로운 척도(ADCOMS)를 개발하고, 아밀로이드 PET 영상검사 판독 결과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피험자들의 증상변화를 평가했다.
BAN2401 5가지 용량(2.5mg/kg 격주·월간 5mg/kg·5mg/kg 격주·월간 10mg/kg·10mg/kg 격주)과 위약투여군을 18개월 동안 비교한 결과, BAN2401 최고용량(10mg/kg 격주)을 투여 받은 그룹의 ADCOMS 진행속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둔화됐고 아밀로이드-PET 영상에서 관찰된 뇌내 아밀로이드 축적량도 유의하게 감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투여 6개월 시점부터 12개월까지 유의미한 임상적 혜택을 나타냈으며, 내약성 프로파일도 유지됐던 것으로 보고된다. 약물투여 관련 이상반응은 대부분 경증~중등도 수준으로 안전성 문제는 확인되지 않았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루루보뇌건강센터의 창립자인 제프 커밍(Jeff Cummings) 박사는 "BAN2401 임상연구의 18개월 추적 결과는 매우 인상적이다. 아밀로이드 가설에 대한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며 "하루빨리 전체 분석 결과를 확인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번 연구의 세부적인 분석 결과를 향후 학술대회를 통해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통계방식 변화로 6개월만에 반전…"임상적 혜택 재입증"
탑라인에 불과한 이번 연구 결과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2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6개월 전 개발중단 위기에 처한 BAN2401을 포기하지 않고, 연구활동을 이어갔던 바이오젠과 에자이의 임기응변 전략이다. 지난해 말 공개된 BAN2401의 12개월 시점 데이터 판독 결과에 따르면, 주요평가변수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해당 결과를 접한 독립적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자 에자이와 바이오젠 주가는 급락했고,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대한 회의론마저 일었다. 앞서 일라이 릴리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겨냥하는 '솔라네주맙'의 3상임상 결과 경도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평가점수(ADAS-Cog)를 유의하게 개선하지 못했다고 밝힌 데다, MSD도 BACE 저해제 '베루베세스타트'의 2/3상임상 중단을 선언한 터라 아밀로이드 표적약물의 성공 가능성이 의심받기엔 충분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양사는 BAN2401 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에자이의 린 크래머(Lynn Kramer) 최고메디컬책임자(CMO)는 "베이시안(Bayesian) 통계를 사용해 통상적인 임상시험보다 빠르게 성공을 입증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효능을 평가하기에는 18개월이 적절하다"며 "18개월의 치료기간이 끝난 뒤 최종 분석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크래머 박사의 발언대로 통계방식을 바꾼지 6개월 여만에 6개월과 12개월, 18개월 시점 모두 고용량 투여군에서 임상적 혜택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바이오젠과 에자이의 알츠하이머병 치료후보물질이 치명적인 뇌손상질환의 진행을 늦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12개월 시점에 혜택이 없었지만 18개월 시점에는 동일한 연구 결과에 반전이 일어났다"며 "복잡한 임상시험 디자인이 알츠하이머 환자와 투자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고 보도했다.
아밀로이드 가설 회생 가능성…"아두카누맙 3상임상 기대감도 회복"
두 번째는 외면받던 아밀로이드 가설의 회생 가능성이다. 아밀로이드 가설은 1987년 독일인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정체를 밝혀낸 이래 30년 넘게 알츠하이머 치료 연구분야를 지배해 왔다. 아밀로이드 결합 항체부터 BACE 저해제, RAGE 저해제 등 뇌 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오랜 실패로 좌절했을 뿐, 아밀로이드 가설 자체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바이오젠과 에자이는 이번에 가능성을 보여준 BAN2401 외에도 항아밀로이드베타 단일클론항체(Aβ mAb) 계열 아두카누맙과 BACE1 억제제 계열 E2609을 3상임상까지 진행시켰다. 가장 큰 기대주는 아두카누맙이다.
2년 전 네이처에 발표된 전임상 및 초기임상 결과에 따르면 아두카누맙은 뇌의 실질세포 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과 결합해 베타아밀로이드 뭉침현상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진행 중인 3상임상 피험자를 510명 추가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위기를 맛봤지만, 바이오젠 측은 "처음부터 고려됐던 옵션이다. 올해 중순까지 환자등록이 마무리 될 것"이라며 "당초 예상보다 늦어진 2020년 초에는 3상임상 최종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두카누맙과 BAN2401의 후기임상 결과가 아밀로이드 가설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임은 물론이다. 아두카누맙이 상용화에 성공했을 때 시장가치는 수조원대로 평가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이벨류에이트파마(EvaluatePharma)는 아두카누맙의 현재 약물가치를 84억 달러로 평가하고, 임상시험이 성공할 경우 그 가치가 드라마틱하게 증가하리란 전망을 내놨다.
주식시장에선 벌써부터 첫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등장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는 분위기다. BAN2401의 긍정적인 2상 결과가 발표됐던 6일(현지시각) 바이오젠 주식 거래량은 19%, 에자이는 21% 이상 상승했다.
미국 금융계 시장조사기관 캐너코드 제뉴이티(Canaccord Genuity)의 수만트 쿨카미(Sumant Kulkami) 애널리스트는 "아밀로이드 가설에 반가운 소식이다. BAN2401과 아두카누맙을 비롯해 다양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 중인 바이오젠에겐 투자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모건 스탠리의 매튜 해리슨(Matthew Harrison)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아밀로이드 항체약물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감소키겨 인지능력을 개선시켰다는 소식은 관련 계열 약물에 긍정적인 신호다. 임상계획 변경 발표로 어려움을 겪었던 아두카누맙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신약개발의 어려움을 감안, 신중한 접근은 필수적이다. 바이오텍 전문 투자자로서 리얼머니(Real Money) 칼럼진으로 활동 중인 브렛 옌슨(Bret Jensen)은 "BAN2401의 탑라인 결과가 인상적이지만 아직까지 2상임상 단계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간 알츠하이머병 정복에 나서던 여러 회사들이 초기 단계에서 실패했다"고 조언했다.